그럴 리가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명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견디질 못해서 스스로 명쾌하다고 주장하는 의견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복잡한 세상에서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더 복잡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정답이라고 믿는다. 잘못된 이야기를 정답으로 여기거나, 어느 정도 옳은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 믿음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경우, 어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1995년 옴진리교 교주의 주도하에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그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고있는 르포르타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에 이어 옴진리교에 속해 있었던 신자들을 인터뷰한 <약속된 장소에서>를 출간했는데, 이렇게 방대한 작업을 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범행을 저지른 범인 중 한명에게 쓴 말은 다음과 같다. “현실이란 본래 혼란과 모순을 내포하고 성립되는 것이며,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혼란과 모순을 초월하는 이야기, 확실한 정답, 반박을 허락하지 않는 진리에는 함정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해서는 안된다는 최소한의 윤리가 아닌 이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답’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정답이 있다고 여기는 과학마저도 반증 가능성에 의해 정당화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발견을 통해 내용이 업데이트된다. 대학교에 들어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지식의 체계가 무너져내리는 충격적인 경험을 해본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단순한 지식은 대학원에 이르러 복잡한 조건을 꽁무니에 줄줄 달게 된다. 삶은 원래 불안정하고, 세상은 원래 불확실하며, 설명은 원래 복잡하다. 그렇지 않다면야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이렇게 많은 종교에 오랜 시간 의지했을 리가 없다.
조용하고 깔끔한 세상, 한 가지 진리가 영구히 통하는 세상, 복잡한 설명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은 위험하다. 그러한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파시즘의 모습을 하게 된다. 나치가 집권했을 때, 어쨌든 한동안은 독일이 조용했다. 그 조용함을 기뻐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 혹은 결함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죽어나갈 때도 그것을 후련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신념, 나의 정의, 나의 미감을 한번씩 돌아보고, 그와 다른 신념, 다른 정의, 다른 미감을 보고, 듣고, 견뎌야 한다. <데미안>이 알을 깨라고 했을 때 소설적으로 그 알은 개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이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의미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정말 깨야 할 알은 단순화의 알이다. 옴진리교 신자들도 옴진리교에 귀의하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지겹고 지난한 자신의 서사를 폐기하고 그 자리에 구원의 찬란한 서사를 집어넣은 것뿐이었다. 모든 것이 명쾌해졌을 때, 많은 것이 잘못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