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학생운동을 하다가 대기업에 입사해 재벌가 사위가 되고, 장인 대신 4년간 감옥에 갔던 한재현(유지태). 그는 대학 시절 첫사랑이었던 윤지수(이보영)를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상대방측 부모로 만나게 된다. 기차역엔 눈이 펑펑 내리고 재현은 20년도 더 지나 나란히 선 지수를 향해 입을 뗀다. “설국이네요. 여긴….” 대한제국 황제가 정7품 애마에게 “왜 그래 맥시무스”라고 말하는 장면보다 천배쯤 버겁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입이 트인 재현은 학부모 입장으로 존대를 하다가 이내 20년 전 허물 없던 사이의 말투를 오가며 혼자 한참을 떠든다. 그가 말하는 동안 지수의 얼굴은 울음을 참느라 서서히 일그러진다. 할 말이 너무 많이 쌓이면 헛돌게 마련이고,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잃기도 한다. 당신들은 무슨 세월을 살았길래.
tvN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은 연희대 93학번 신입생 지수(전소니)와 91학번 운동권 재현(진영)이 사랑하던 93년부터 95년까지의 시간과 현재 시점을 교차시킨다. “온 국민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시대도 아니”었던 학생운동의 끝물. 내가 반응하는 리얼리티는 레트로 로맨스의 양념이 되는 당시 학생운동쪽보다 운전사가 차 문을 여닫아주는 의전에 익숙해진 몸으로 과거 철거민과 투쟁하던 동네를 지나며 “여기 어디쯤인데. 내 마지막 양심이 있던 자리” 따위의 대사를 뱉는 장면이다. 이런 부류가 널리고 널렸다.20대 초반 뜨겁게 사랑하다 모종의 이유로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던 남녀가 중년에 다시 만나 가진 것 모두 버리고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이야기도 널렸다.
지수와 재회한 재현은 지수를 ‘지키고 싶다’고 거듭 말한다. 무엇으로부터?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은 노동운동을 하던 지식을 활용해 사람을 잘라온 재현이 지수와 이웃들의 인생에 짐을 더했음을 빼놓지 않는다. 재현과 지수의 20대 청춘과 현재를 엇갈려 보여주었으니, 이제 그들이 헤어져서 각자 살아온 20년을 풀어낼 차례다.
VIEWPOINT
속았다?
“홍콩영환데 영화 같지도 않고.”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살짝 눈가가 젖어 있는 지수(전소니) 옆으로 관객이 빠져나가며‘총 쏘는 윤발이 형’을 찾는다. 90년 개봉 당시관객의 환불 요구가 속출했다는 이야기를 드라마상에 녹였다. 아무리 그 정도일까 싶어서 당시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를 찾아보았다.“우정은 약속이고 사랑은 믿음이다”, “어깨 결어 굳게 맹세한 청춘의 피울음!!”이라는 홍보문구를 보았다면, 나 같아도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등의 홍콩 누아르를 기대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