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주국제영화제]
'갈매기' 김미조 감독 - 외로운 갈매기 같은 성폭력 생존자 여성
2020-05-31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김미조 감독

“자기네 아들은 등록금만 내면 개나 소나 다 나오는 데 나온 주제에.” 상견례 장소에 먼저 도착한 엄마 오복(정애화)은 가족들 앞에서 예비 사위를 깎아내린다. 하지만 막상 예비 사돈까지 모두 모이자 그는 “듬직하니 참 좋네요”라며 상찬만 늘어놓는다. 가족들 앞에서는 한없이 괄괄하지만, 타인 앞에서는 그저 좋은 의견만 표현할 수 있는 여성. <갈매기>는 어머니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진실한 이중성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복은 상견례를 마치고 기분 좋게 시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성폭력 사건에 휘말려 피해자가 된다. 오복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하고 가족들도 동요한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지겨운 현실을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계속 육지 주변에 살아야 하는 존재”처럼 보였다는 김미조 감독은 그래서 영화의 제목을 <갈매기>라고 지었다. 첫 번째 장편 작품으로 전주영화제 한국경쟁에 초청된 김미조 감독을 만나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 어머니에 관해, 영화 <갈매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미조 감독

-중년 여성의 미투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영화로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찰나에 우연히 20대 남성분이 내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졸졸 따라가는 모습을 봤다. 한낮 천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살면서 지하철이나 길에서 성추행을 겪은 적 있기 때문에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이상한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그분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떡할까, 내 어머니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할까, 또 나는 어떡할까 싶었다. 처음에는 딸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당사자인 엄마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영화의 주체가 딸이 아니라 엄마 오복에게 넘어갔다.

-오복의 이름이 여러 차례 호명된다. 중년 여성들은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많이 불리는데 <갈매기>는 오복의 이름을 분명하게 불러준다.

=오복이란 이름이 주는 묘한 아이러니가 정말 좋다. ‘다섯 가지 복’이란 뜻이지만 정작 오복은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한 가정의 생계를 건사하거나 시장 동료 중 한 명으로 존재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머니 초등학교 친구 중 오복이란 이름을 가진 분이 있다. 주인공 이름을 고민하다가 어머니께 주변 친구들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연속해서 아는 이름들을 읊어줬는데 어머니가 “오복이란 친구도 있고”라면서 그와 관련한 일화도 말씀해주셨다. 너무 재밌었고, 마음에 들었다.

-오복 역의 배우 정애화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연기를 부탁할까 했지만, 배우가 아닌 어머니가 소화하기엔 많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단국대 영상대학원 동기의 단편 촬영 현장에 갔다가 주인공 역의 배우 정애화 선생님을 봤다. 처음에 생각했던 오복 캐릭터는 몸집이 있고 우락부락하고 괄괄한 느낌이어서 애화 선생님과 달랐다. 그런데도 자꾸 애화 선생님이 생각났다. 애화 선생님은 몸집이 작지만 다부지고 야무지다. 발도 굉장히 빨라서 정말 빠르게 걸으신다.(웃음) 애화 선생님의 캐릭터를 오복에게 불어넣어도 좋겠다 싶었다.

-돈을 아끼려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고 누워있는 오복을 비추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성폭력 생존자가 된 어머니라는 서사를 다루지만, 동시에 가장 일상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내가 주로 봐왔던 엄마의 모습은 정확히 그러했다. 전기료 아깝다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고, 아파도 딸내미 밥을 차려주시는 모습들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일상을 멈출 수 없는 존재, 어떻게든 살아가고 일을 계속해야 하는 존재처럼 생각되어지더라. 오복은 사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엄마였을 뿐인데 성폭력 사건을 겪고 나서 각성을 한다.

-오복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다. 엄마를 돕고자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딸, 엄마에게 도움만을 요구하는 딸, 엄마에게 관심 없는 딸. 세 가지 특성은 한 명의 딸에게서 모두 나타날 수 있는 면인 것 같기도 하다. 오복에게 이런 딸들을 준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딸만 넷인 집에서 막내딸이다. 딸들만 있는 집에서 오는 묘한 유대감과 동질감과 애증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느꼈던 건, 엄마를 정말로 사랑하면서도 본인들의 일이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세 딸이 오복을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 딸이 특별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첫째 인애(고서희)가 상견례에서 엄마가 기죽지 않도록 비싼 옷을 해준다던가. 셋째 지애(김가빈)가 언니 대신 운전대를 잡고 엄마를 태우고 다닌다. 왜 하필 딸이 셋이냐고 묻는다면, 그게 매력적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딸들만 있는 집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모습들이 있다.(웃음) 참고로 셋째 지애로 등장한 배우 김가빈은 친언니다. 셋째 언니다.

-결혼을 막 하려는 인애의 고뇌도 돋보인다. 중년 여성에 대한 성폭력만큼이나 답답한 상황인데 영화에서 이 두 가지 갈등을 엮어서 보여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의 첫 장면은 상견례다. 오복이 스스로를 챙길 겨를 없이 주변 상황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엄마에게는 권리가 없다. 자식의 아픔보다 자신의 아픔을 보듬을 권리, 밥을 차려주지 않을 권리”라는 글귀를 읽었는데 많이 와 닿았다. 오복의 아픔을 보듬을 권리가 자식의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상황과 맞물리게 하고 싶었다.

김미조 감독

-직접 각본을 썼는데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는 무엇인가.

=“뭐? 꼬막이 먹고 잡다고?”라는 대사.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데가 없는 오복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한테 전화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온전치 않아 오복이 하는 말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촬영할 때도 이상하게 이 대사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제목을 <갈매기>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오복이 갈매기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복은 지겨운 현실을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계속 육지 주변에 살아야 하는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현실에서 두 발 버티고 살아야 하는 처지와 닮았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모녀복수극을 생각하고 있다. 시놉시스를 완성하고 트리트먼트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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