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트롤: 월드투어' 목소리 연기한 로운
2020-08-20
글 : 남선우
사진 : 오계옥
어바웃 로운

순정만화 속 세상에서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엑스트라로 살아가던 소년은 첫사랑을 만나 비로소 자아를 찾는다.‘13번’에서 하루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는 묵묵히 페이지 한구석에서 도약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쩌다 발견한 하루>). 배우로서의 로운도 그런 소년이었다. 2016년 SF9으로 데뷔해 다른 8명의 친구들과 함께 무대를 채워가는 동안, 그는 야구부의 까칠한 에이스 투수(<클릭 유어 하트>의 로운), 인기 없는 아이돌 그룹 멤버(<학교 2017>의 이슈), 누나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취업준비생(<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 타임>의 위진), 입사 동기를 짝사랑하는 인천공항 직원(<여우각시별>의 은섭)을 연기하며 조용히 그러나 성실히 자신만의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 끝에 로운은 지난 2019년 가을 방영된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출연하며 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을 시절을 지나 더 많은 팬들의 마음속 주인공이 되었다. 이 드라마로 배우 로운을 처음 만난 팬들은 그들이 지나쳤던 페이지마다 다시 찾아와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그동안 참 열심히 했다’고 한마디씩 적고 갔다. 이제 로운이 배우로서 지나온 시간이 아닌,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트롤: 월드투어>에서 팝 트롤 브랜치의 목소리를 맡으며 처음 영화에 도전한 그를 만나 첫 더빙 도전과 그동안의 연기 경험에 관해 물었다. 어느새 5년차 배우라는 기자의 말에 어쩔 줄 모르고 웃던 그와의 대화를 옮긴다.

-포근한 겨울을 보냈을 것 같다.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로 2019 M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지난 1월 <Good Guy>로 SF9이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했다. 봄이 오기까지 어떻게 지냈나.

=SF9으로서의 활동도 준비하고, 대본도 살피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집에서 영화와 드라마도 많이 봤고. 요즘엔 거의 하루에 한편씩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혼자서 넷플릭스를 많이 본다. (웃음)

-좋은 기세가 첫 영화 도전으로 이어졌다. <트롤: 월드투어> 목소리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감사하게도 출연 제의를 먼저 받았는데,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대충하기는 싫었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그래도 내 연기에 도움이 될 도전이라 판단해 용기를 냈다.

-<트롤: 월드투어>의 첫인상은 어땠나.

=음악과 이야기가 어우러질 때의 에너지가 훅 다가왔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말도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보다,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가수 레드벨벳의 모습을 딴 K팝 트롤들이 <러시안 룰렛>을 부르며 등장해 많은 관객이 반가워할 것 같다. SF9이 K팝 트롤로 등장한다면 어떤 곡을 부를지 상상해보았나.

=그동안 여러 장르와 컨셉에 도전했는데, <질렀어>를 꼽고 싶다. 우리 노래 중 가장 팝의 느낌이 나는 노래라서 영화 톤에 맞는 K팝 트롤의 노래로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트롤: 월드투어>에는 K팝뿐만 아니라 팝, 록, 클래식, 컨트리, 펑크, 테크노 등 여러 음악 장르를 대표하는 트롤들이 나와 경합을 펼친다. 평소 자주 듣는 장르가 있나.

=한번 꽂힌 음악을 계속 듣는 편이다. 곡에 꽂히기도, 장르에 꽂히기도 하는데 요즘엔 발라드에 꽂혔다. 권진아, 백예린의 노래같이 슬로 미디엄 템포의 곡들에 빠져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영화를 많이 보는 요즘 특별히 꽂힌 작품도 있나.

=TV를 돌리다가 <업>을 다시 봤는데,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 생기더라. 어렸을 때는 아이의 입장에서 봤다면 이제는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은 어린 나이에도 가볍게 접근할 수 있지만 10살, 15살, 20살, 25살에 볼 때의 감정이 다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트롤: 월드투어>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다. 영화에서 파피의 곁을 지키며 모험을 함께하는 사려 깊은 트롤 브랜치를 연기했는데,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더빙에 임했는지 궁금하다.

=하나는 분명했다. 브랜치가 파피를 좋아한다는 것. 파피를 챙겨줄 때나 파피에게 충고할 때나 브랜치의 모든 행동에는 파피를 좋아하는 마음이 항상 있다.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연기했던 것 같다.

-연기는 물론 노래도 불러야 했다.

=노래를 할 때는 캐릭터에 집중하기보다 하모니를 많이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파피 역의 웬디 선배와 내 목소리가 섞일 때의 합이 어떨까 생각하면서.

-영어판에서는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브랜치를 연기했다. 그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작은 호흡에서도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더라. 그걸 흉내내려다 보면 실수할 것 같아서 참고는 하되 대사와 캐릭터를 내가 이해한 대로 연기하려고 했다. 현장에서 더빙감독님이 여러 톤을 예로 들어주면서 감을 잡을 수 있게 끌어주셨고, 무엇보다 처음 더빙을 하는 내가 긴장을 풀 수 있게끔 많이 도와주셨다.

-더빙은 처음이지만 2016년부터 연기를 해왔다. 평소 무대에 올라갈 때는 ‘내가 가장 멋있다’라고, 연기할 때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이 마음가짐의 차이에 대해 좀더 설명해줄 수 있나.

=무대 위에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적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더 촉박하게 느껴진다. 그에 반해 연기를 할 때는 내가 인물에 점점 젖어가는 시간이 생긴다. 촉촉해지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나와 전혀 결이 다른, 동떨어졌다고 생각되던 인물을 이해하게 되는 신기한 순간들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정해놓고 연기하기보다 비워놓고 들어가야 인물을 채울 수 있다고 느낀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찍으면서 그걸 정말 크게 느낀 것 같다. 내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연기자 로운의 존재를 널리 알린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로운의 연기를 본 이들이 첫 드라마 <클릭 유어 하트>부터 <학교2017> <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 타임> <여우각시별> 영상 아래 이런 댓글을 많이 남겼더라. ‘그동안 열심히 살았구나!’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모이면 선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말이 내게 큰 위로가 된다. 내가 잘되고 안되고를 떠나 내 가능성을 봐준 분들로 인해 생긴 기회들이기 때문에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통해 지난 드라마들까지 찾아봐주고 좋게 봐준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웃음) 그럴수록 더 실수하지 않아야겠다고,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평가하는가.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다. 열심히 했다고 선을 그어버리면 이것보다 더 열심히 못할 것 같다. 물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아등바등 기를 쓴 적도 있지만, 어떤 숫자나 수치로 열심의 정도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연기했을 때 어땠나.

=<클릭 유어 하트>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보면 된다. (웃음) <학교 2017> 때는 단역이었기 때문에 내 신이 몇 없었는데, 분노든 슬픔이든 극적인 감정을 한번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에 마음먹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그런데 감독님이 오시더니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시는 거다. (웃음)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그런 식으로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 내가 연기에 대해 하는 생각들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내년엔 어떨지, 또 그다음엔 어떨지 많이 궁금하다.

-연기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

=지금은 특정한 작품이나 캐릭터를 생각하기보다는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역할이라면 뭐든지 해보고 싶다. 사실 모든 캐릭터가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나와 아주 닮아 있는 캐릭터조차 그렇다.

-고민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건가.

=물론 고민을 할 때는 너무 힘들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몰라 누구한테 물어도 보고, 의견을 들어도 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게 된다. 그런데 고민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며 내 연기가 캐릭터와 딱 맞닿는 순간의 짜릿한 희열이 있다. 그 희열이 찾아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고민을 많이 하되, 현장에서는 재미있게 촬영하려고 한다.

-캐릭터와 만나는 순간의 희열은 스스로 느끼는 건가, 감독이나 동료의 평가로 알게 되는 건가.

=내 희열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무대 위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과는 다른 종류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계속 연기를 한다.

-차기작 소식도 들을 수 있을까.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앞으로 도전도 많이 하고 싶고, 그에 따라 욕먹을 각오도 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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