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침입자' 송지효 - 익숙하지만 낯선
2020-06-04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과소평가된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배우라면 좀더 애틋한 면이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송지효의 얼굴을 마주쳤지만 그의 재능까지 제대로 인지했던 것은 아니다. 배우로서나 방송인으로서나 늘 성실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그간 거쳐온 작품과 캐릭터의 면면들, 역할의 크기를 둘러볼 때 그의 그릇에 비해 덜 활용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만 해도 그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자연스럽고, 매사에 열정적이지만 그에서 오는 경직됨이 없는 탁월한 매력을 10년째 한결같이 뽐내고 있다. 이는 대중의 호감을 구하는 연예인이자 관객에게 캐릭터를 설득해야 하는 배우가 지닌 최고의 재능임에도 불구하고 송지효가 작품을 통해 이러한 재능을 충만히 보여줄 기회는 많진 않았다. 요컨대 <침입자>는 송지효가 너무 늦게 만난 작품이다. 25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와 미스터리의 축이 되는 유진은 때론 섬뜩하게, 이따금 낯설게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송지효가 늘 지니고 있었지만 간과되어왔던 서늘하고 그늘진 얼굴, 안정적이고 밀도 높은 그의 연기가 탁월하게 만나 <침입자>의 장르를 단단히 건축한다. 요즘 일주일에 5일은 드라마, 2일은 <런닝맨>을 촬영하고 있다는 송지효는 저녁 늦게 시작된 <씨네21> 표지 촬영에서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성실하게 현장을 책임졌다. “<런닝맨> 촬영 끝나고 거품으로 잔뜩 목욕하고 왔다”고 쿨하게 말하는 그는 <성난황소>(2018)를 비롯한 현장에서 너무 열심히 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에 대해서도 “시나리오에 있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여고괴담3: 여우계단>(2003, 이하 <여고괴담3>)으로 데뷔해 장윤현 감독의 <썸>(2004) 같은 스릴러로 초창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장르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되고 반복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모험하고 반대의 것을 지향하는 성향이 강하다. 장르영화로 데뷔하니 계속 장르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이를 벗어나고 싶어서 정반대의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그렇게 작품을 해오다보니 필모그래피가 일관성 없이 들쭉날쭉 천방지축. (웃음) 밝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고 예능도 하다보니 데뷔 초에 했던 영화들이 그리워졌나 보다. <침입자> 시나리오를 읽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지문이나 대사에 쓰인 단어가 굉장히 오묘했다. 가까우면서도 멀고,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욕심이 생기게 만들고, 차가우면서도 뜨거웠다. <성난황소>를 함께한 장원석 BA 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이 시나리오를 줬다는 것도, 감독님이 여성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무지 상태로 맞닥뜨렸음에도 완전히 사로잡힌 작품이었다.

-장르 면에서는 <여고괴담3>나 <썸>이 연상될 수 있지만, 포지션이 사뭇 다르다. 전작에서 혼란과 공포, 두려움을 겪는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이번엔 다른 이들이 당신의 캐릭터에 그런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것 또한 나에게 상당한 모험이었다. 예전에는 수비형이었다면 이번에는 공격형으로 바뀌다보니 더 예민해지고 생각을 더 많이 했다. 내가 가진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장에 대해, 그 수위를 조절하는 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촬영 내내 무거운 숙제였다. 캐릭터상 친해지기 어려운 관계라, 일부러 촬영하는 동안 (김)무열씨와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개인 감정과 연기를 분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렇게 분리하는 과정 자체도 빼고 싶었다.

-일상적인 공간, 가족 같은 키워드는 미스터리와 정반대에 있다. 전혀 다른 영역의 접점에서 연기한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일이 너무 가까운 가족에게 벌어진다. 일부러 현실에서 실제 벌어지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까 ASMR 영상(<씨네21>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곧 만날 수 있다.-편집자)을 찍을 때도 그랬는데, 내가 믿고 익숙했던 모든 것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때가 오더라. 편했던 공간이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러다가도 다시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송지효라는 배우는 과소평가됐다고 늘 생각했다. 배우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는,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간절했을 듯하다.

=솔직히 이번 영화가 굉장히 욕심났다.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잘한다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싶었다. 남이 하면 안돼, 이 캐릭터는 무조건 내 거라고도 생각했다. 당시에는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더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분명히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사실 늘 끝나면 조금 더 잘할걸 하는 후회가 든다. 음, 지금 다시 찍으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3천여명이 오디션을 봐 화제가 된 <여고괴담3> 주연으로 밭탁됐다. 서늘한 이미지는 그때도 이미 송지효라는 배우가 가진 강점 아니었나.

=태어나서 오디션이라는 걸 처음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오디션에서 한 게 없어서, 도대체 내가 왜 뽑혔냐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님에게 물었더니 “정말 한 게 없어서 뽑았다”고 하더라. 다들 엄청 준비해와서 보여주는데 나는 자기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그래서 뭔가 시키면 잘할 것 같았다고.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연기 전공을 한 게 아니라서 현장에서 연기를 배우며 했다. 내가 남들보다 많이 느리다는 것을 그때 알았고, 그렇게 나를 찾아갔다. 당시 <씨네21>에서 촬영 현장 취재도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손발 오그라드는 인터뷰를…. (웃음) <여고괴담3> 현장은 정말 날 것이었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되게 많다. 잠이 들어 콧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특수분장도 해봤다.

-드라마에서는 서늘한 이미지를 보여준 것은 거의 없지만, 묘하게 공통점은 읽히더라. 가령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다든지.

=<우리, 사랑했을까>를 찍다가 “몇년 전에도 시나리오 들고 영화 만들겠다고 뛰어다니는 PD를 연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구여친클럽>에서도 PD를 연기했다. <러블리 호러블리>에서는 작가였다. 내가 PD처럼 보이는 걸까?

-그보다는 모태솔로 직장인 여성을 연기한 단막극 <드라마 스테이지-B주임과 러브레터>까지 함께 놓고 보면, 같은 나이대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많이 재현해왔다는 인상이 있다. 웹드라마부터 단막극, 중국영화나 예능까지 출연하는 등 활동 영역이 매우 유연하면서 왠지 늘 성실한 태도와도 이어지고.

=아, 일하는 걸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내가 노는 인상은 아니다. (웃음) 기회가 왔을 때 원래 스타일만 고집하는 편은 아니다.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 무언가 얻을 때의 희열이 너무 좋다. MC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 패널로 나가고 게스트로도 나가고, 일중독이지만 그래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가 좀 단순해서 계획적이지 못하다. 계획을 짜서 차곡차곡 해나가며 얻는 것보단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얻는 게 나한테 크다.

-그렇게 데뷔 18년차가 된 송지효가 아직 가보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무엇일까.

=음…. 센 캐릭터를 많이 했으니 이제 좀 여리여리한 캐릭터를….(주변에서 관계자들이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리자) 이건 비웃음인 거 같은데!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의 캐릭터도 해보고 싶은데 다른 분들 생각은 전혀 다른가 보다. (웃음)

-올해 마흔이 됐다. 사실 내 경우는 20대보다 30대인 지금이 훨씬 즐거운 여성인데….

=나도 그 느낌 뭔지 안다.(웃음)

-그래서 송지효 배우가 여전히 도전하고 새로운 걸 배워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내 40대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너무 재밌다.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아진다. 솔직히 체력이 달리는 면이 없지 않은데도 40대가 너무 기대된다. 왜냐하면 난 10대보다 20대가, 20대보다 30대가 재밌었다. 아는 폭도, 보는 눈도, 할 수 있는 것도 넓어져왔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다 받아들이고 좋게 헤쳐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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