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액터] '국도극장' 이동휘 - 새로운 얼굴을 찾아서
2020-06-18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이동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코믹한 캐릭터와 달리 너무 진지한 모습에 놀랐다고들 한다. 정확히는, 그런 반응이 수년간 이어진 까닭에 이제는 ‘예상한 것과 이미지가 많이 다른 배우’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가 <국도극장>으로 관객을 만났을 때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법고시 장수생 기태가 원치 않게 고향에 내려오면서 얻은 직장, ‘국도극장’을 배경으로 소소한 일상을 느리게 밟아가는 이 작품은 이동휘의 심드렁한 무표정이 곧 영화의 룩을 완성한다. 이동휘는 6개월 넘게 일을 쉬고 있던 시절, 먼저 시나리오를 받은 동료 배우가 이 작품을 못하게 되자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만나보고 싶다고 청하며 적극적으로 쟁취했다고 고백했다.

-<국도극장>에 욕심을 많이 냈다고 들었다. 왜 그렇게 시나리오에 끌렸나.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고 화려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들도 많지만, 그냥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늘 궁금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역시 이쪽이다. 반년 이상 일을 안 하던 때라 기태의 공허함과 외로움이 좀더 다가왔다. 더 과거로 돌아가면 재수생 시절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삶의 반복을 통해 살아오기도 했고.

-혹시 비주얼 면에서 캐릭터를 준비한 부분이 있다면.

=어렸을 때 책가방을 한쪽으로 오래 메서 그런지 지금도 오른쪽 어깨가 좀 내려가 있어서 촬영할 때 바로잡는 편이다. 이번엔 일부러 찌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혼자 있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지친 나머지 혼자 있을 때도 감정이 터져나오지 못하는 응축된 슬픔을 담고 싶었다. 전작에서도 밥 먹으면서 우는 신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더 발산하기보다 압축해서 보여주면 어떨까 하고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며 연기했다. 결과물을 보니 적절하게 구워진 고등어 덕분에 먹먹함이 느껴지더라. 고등어가 다 했다. 난 한 게 없다. (웃음)

-<국도극장> 때부터 안경을 벗고 나온 것 같다.

=수염이랑 똑같다. 있다가 없으면 너무 허전한데 연기할 때는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 캐릭터상 굳이 안경을 쓸 필요가 없어서 벗어봤는데, 생경한 내 얼굴을 보면서 오히려 참 좋았다. 그래서 못 알아보는 분들도 계신다. 사전정보 없이 <극한직업>을 보러 온 관객은 초중반까지 “저 수염난 사람은 누구지?” 하기도 했다더라. (웃음)

-<국도극장>은 새삼스럽게 이동휘의 얼굴을 집중해서 관찰할 수 있는 영화다. 본인의 마스크가 어떤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나.

=<드라마 스페셜-빨간 선생님>을 함께한 유종선 감독님이 “크게 기대하지 않는 듯 보이는 얼굴”이라고 한 적이 있다. 내가 만성피로 때문에 뭘 해도 심드렁해 보이는데(웃음), 잘 보이려고 하는 거 같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관심사가 나오면 눈이 빛나는 모습이 좋아서 같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더라. 마인드가 부정적이진 않지만 연기할 때 에너지를 쏟아내고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다.

-그런 배우가 연기해서일까, 기태의 상황은 좋지 않지만 영화가 자기연민에 빠지진 않는다.

=주인공이라고 비극 속에서만 살고 핏대 세워 감정을 토해내듯이 연기하면 너무 일차원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내 마음대로만 살 수 없으니까 속내를 감추고 애써 미소 지으며 사는 사람이 더 많다. 슬픔을 드러내기보다는 속에 담아두는 연기를 하려고 했다. 감독님이 편집을 잘해주셔서 그 먹먹함이 잘 드러났던 것 같다.

-영화광으로 유명하다. 시네필로서 극장을 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찍으니 어땠나.

=<국도극장>을 찍을 땐 촬영지였던 광주극장의 그림 간판을 보며 ‘과거엔 이랬구나’ 생각했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영화 보며 위로받던 사람으로서 코로나 시대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이런 곳이 사라져서 과거가 될 수 있겠다는, 해본 적 없던 생각을 하게 됐다. 마음이 좋지 않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IPTV를 통해서도 좋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지만 다른 짓을 하지 못하게 자리에 붙들어놓고 온전히 시청각적인 경험을 하게 하는, 극장만이 주는 가치가 있다. 특히 <국도극장>처럼 정적으로 흘러가는 영화일수록, 이 여백을 제대로 즐기려면 더욱 극장에서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극장이 있나.

=어렸을 때부터 광화문 씨네큐브에 진짜 많이 갔다. 그 주황색 의자가 너무 좋다. 서울아트시네마도 너무 좋아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붉은 살의> 등을 전부 그곳에서 봤다. 그땐 그냥 연기과 학생이었는데 상영 끝나고 남아 있다가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감독님들과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있다.(웃음) 그 당시 봤던 영화들이 연기적 가치관을 성립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가령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나오는 연기가 진짜 연기이자 삶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처럼.

-요즘엔 어떤 영화에 매료됐고, 배움을 얻고 있나.

=원래 코언 형제 영화를 좋아했고 최근엔 페드로 알모도바르에게 빠졌다. 히치콕은 숏 하나하나가 그림이다. 그리고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를 너무 보고 싶어 미칠 거 같다. ‘지금까지 이런 배우진은 없었다’ 아닌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빌 머레이, 프랜시스 맥도먼드, 티모시 샬라메…. 이들이 돌아가면서 영화에 나온다니, 너무 좋아서 계속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웃음) 프랜시스 맥도먼드나 빌 머레이 모두 강렬함을 과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특유의 심드렁한 얼굴로 엄청난 연기를 한다. 최근에 빌 머레이의 작품을 돌려 보다 진짜 웃긴 점을 발견했는데, 어떤 작품을 찍든 운전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장면이 꼭 하나씩 있다. 혼자만의 발견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꼭 확인해보시라. (웃음) 나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는 배우는 메릴 스트립이다. 나노 단위로 쪼개서 봐도 완벽한 연기를 한다.

-영화 <부라더>와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이후 긴 공백기를 가졌다.

=배우는 자기가 선택하기보다는 선택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너무 감사한 기회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것을 하다 보니 갈피를 못 잡는 순간들이 생기더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그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6개월째 됐을 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는 걸까 하며 이불킥을 시작했다. (웃음) 수동적으로 살지 말고 능동적으로 움직여보자며 찾은 시나리오가 <국도극장>이었다. 지금은 자의라기보다는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쉬고 있지만 기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단편영화 작업으로 창출되는 기회도 있다. 그쪽 신에 있는 분들이 이동휘가 이런 곳에도 관심이 있구나 하면서 또 다른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시나리오만 좋다면 작품의 규모나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매해 <국도극장>과 같은 작업을 하고 싶다.

-배우 남궁민이 연출한 <라이트 마이 파이어>, 10년 지기 친구이자 배우 이기혁이 연출한 <출국심사>에도 출연했다.

=배우의 입장을 잘 아니까 대화가 좀더 잘 통한다. 배려를 많이 받으면서 촬영했다. 매해 단편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이기혁이 연출한 <메소드 연기>는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나가게 됐다. 그 친구와 마인드가 잘 맞아서 세 번째 작품도 구상 중이다. 황정민 선배님이 영화를 찍다가 다시 연극 무대에 오래 서고 다시 영화를 하시지 않나. 나에겐 그런 작업이 단편영화나 독립영화다. 나의 새로운 얼굴을 찾고 배우로서 환기가 되는 부분이 있다.

-배우가 받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려면 입지를 다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있다. 이동휘의 가장 성공한 두 작품들이 코미디쪽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나.

=대학교 연기 커리큘럼에서 가장 마지막에 배우는 하이클래스 과정이 코미디 연기였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내 코미디 연기를 사람들이 좋아해준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에 꽃을 사러 갔는데 꽃가게 사장님이 아직도 ‘도룡뇽’ 얘기를 하시더라. 몇년 전 작품을 아직도 사랑해주시고 그 관심 덕분에 내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거다. 안주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노력을 할 뿐이지 코미디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반년 넘게 쉬고 <국도극장> 다음에 선택한 작품이 <극한직업>이었다. 코미디도 하다 보면 또 다른 결이 있고 캐릭터가 있다. 우물을 깊게 파다 보면 맑은 물이 나온다는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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