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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소녀' 최윤태 감독, “10대부터 50대까지, 시대의 여성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2020-06-18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최윤태 감독은 <야구소녀>를 완벽히 수인(이주영)만의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자 유일한 여성 야구부선수인 수인은 최고구속 134km를 던지며 ‘천재 야구소녀’로 불리지만, 곧 글러브를 벗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여성이란 이유로 프로야구 신인 선수 선발 과정에 참여할 기회도 잡지 못하고, 엄마 해숙(염혜란)은 그만큼 했으면 포기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새로 부임한 최 코치(이준혁) 역시 처음에는 수인을 곧 야구를 그만둘 아이로만 보다가 서서히 그를 돕기 시작한다. 최윤태 감독은 “자칫 잘못하면 최 코치가 수인을 이끌어준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 고민이 많았다”며 “어떻게 하면 수인이가 가장 주체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를 배우 이주영과 함께 고민했다”고 한다.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으로, 전 좌석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야구하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2017년 7월 즈음 운전 중에 아내가 야구하는 초등학교 여학생에 대한 인터뷰를 보고 내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내는 어차피 여성은 프로야구를 할 수도 없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여성도 프로야구에 출전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는데, 아내가 깜짝 놀라더라.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는구나 싶었다. 마침 미국 NBA가 드래프트 시즌이어서 한참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야구하는 소녀가 프로야구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면 의미도 있고 재밌겠다 싶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제작을 결심했을때, 야구하겠다는 수인처럼 반대하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알았나. (웃음) 아카데미에 서류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영화사 여러 곳에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여성이 주인공이라서 상업적인 가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6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18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에 들어갔는데, 첫 심사 자리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지원해주는 예산으로는 찍을 수 없다는 평가까지 들었다. 그래서 “상업영화로도 안되고 독립영화에서도 안되면 어디서 만드냐”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아서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에 선발돼 1억 2천만원의 제작비를 받았다. 그럼에도 스포츠영화를 찍기에는 부족한 돈이었다.(웃음)

-저예산이라고 하지만 배우진이 정말 화려하다.

=운이 좋았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배우 염혜란을 인상 깊게 봤고 제일 먼저 수인 엄마 역에 캐스팅하고 싶었다. 염혜란 선배가 결정되자 다른 배역들은 순조롭게 캐스팅됐다.

-직접 공을 던져야 했던 배우 이주영에게 특별히 주문한 게 있는지 궁금하다.

=한 독립 야구단에 부탁해 배우 이주영이 선수들과 같이 훈련할 수있게 했다.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하는 엘리트 선수들이 프로 입단을 준비하다가 실패하는 경우 독립 구단에 들어가 준비한다. 배우가 이런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 수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주영은 야구하는 것 자체가 연기라고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다. 45일 동안 일주일에 5~6일씩,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수인에게는 무능력한 아빠, 생활력 강한 엄마, 그리고 어린 여동생이 있다. 수인의 가족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시대의 여성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10대를 대표하는 여성은 주수인이고, 20, 30대를 대표하는 여성은 교사이면서 핸드볼 국가대표인 김 선생(이채은)이었다. 40, 50대 여성을 대표하는 건 엄마 신해숙이었다. 강한 의지를 가진 10대 수인이 있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20, 30대는 수인이를 응원하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40, 50대는 수인이 가는 길을 반대했으면 했다. 이런 캐릭터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아빠 주귀남(송영규)은 엄마보다 생활력이 떨어지는 캐릭터가 되어야 했다. 여동생 캐릭터는 원래 없었는데, 엄마를 좀더 힘들게 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동생이란 존재가있어서 수인도 더 압박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수인이 야구하는 걸 찬성하고 엄마는 반대한다. 배우 이주영이 찬반을 바꿔보자고 제안했다고 들었다.

=여성영화니까 여성이 응원을 보내는 방식으로 극을 진행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배우를 포함해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엄마가 딸을 사랑하고 딸을 더알기 때문에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여성으로서 수인과 같은 상황을 과거에 겪어봤을 것이다. 반면 아빠는 수인의 상황을 겪지 않아서 막연하게 응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장편영화 <야구소녀>를 찍기 전까지 여러 영화에서 편집자로 활동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서 지방 대학 연극영화과를 갔는데 장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영화를 찍으려고 대학을 간 거였는데 촬영하려면 서울 렌털숍에 가서 장비를 빌려와야 했다. 차라리 그 돈을 가지고 서울에서 일하면서 영화를 찍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21살 때부터 영화 현장에서 일했고, 남들보다 이른 26살 때 <죽어도 해피엔딩>의 조감독을 경험했다. 그런데 조감독으로 일해보니 조감독은 프로듀서의 역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편집 일은 연출력에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고 이름을 올리지 않은 작품까지 하면 20편 이상의 영화에 편집자로 참여했다.

-<야구소녀>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이었다. 부산에서의 경험은 어땠나.

=배우 이주영이 첫 미팅 할 때 “이 영화 찍으면 부산국제영화제 갈 수 있는 건가요, 감독님?”이라고 물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발표된 날, 이주영과의 통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주영이 “감독님 왜 이제 전화하는 거예요! 부산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다급하게 물었다. (웃음) 이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수인이가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완성되어 부산에서 상영되자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장편영화 극장 상영도 처음인데 매진도 경험해봤고, 영화제 기간 내내 어딜 가든 같이 사진 찍자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도 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등이 무관객 영화제로 진행됐다. 신인감독들이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전주국제영화제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팠다. 영화를 본 관객이 좋아해주면 감독에게 엄청난 위로가 된다. 영화제가 아니면 감독한테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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