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언택트 시대의 바캉스
2020-06-26
글 : 장영엽 (편집장)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다른 방이구나.” “아르노강이 보일 줄 알았어요.” 지난 6월11일 재개봉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전망 좋은 방>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을 떠난 두 여성, 루시와 샬롯의 대화로 시작한다. 서신으로 접한 숙소 정보- 편지로 숙소를 예약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와 사뭇 다른 방의 투박한 풍경에 실망하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앳된 모습이 소소한 웃음을 준다. 꿈꿔왔던 ‘전망 좋은 방’은 이미 다른 사람의 차지지만, 루시와 샬롯이 머무르는 피렌체의 아담한 숙소엔 일상으로 돌아간 뒤 오랫동안 회자될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낯선 소도시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있는 베테랑 여행자, 수레국화를 좋아한다는 손님의 말을 기억했다가 방 한구석에 슬며시 꽃을 놓아두는 호텔리어, 타인의 저녁식사에 함부로 훈수를 두는 무뢰한, 객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무룩한 숙녀들을 위해 선뜻 방을 내어주겠다는 친절한 타인이 그곳에 있다.

언택트 시대의 관객에게 <전망 좋은 방>의 서사는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익숙한 장소를 벗어나 이국의 공간에서 완벽한 타인이 되고, 새로운 인연과 모험에 기꺼이 자신을 노출할 자유는 코로나19 이후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절실하게 그리워할 무엇이다. 휴가철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습관적으로 계획하던 독자에게 어쩌면 올해 여름은 선택지가 사라진 주관식 문항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리면 즐길 거리는 도처에 있다. 올여름 예정된 각종 영화제 소식부터 OTT 플랫폼에서 소개될 화제의 신작, 김태성·달파란·방준석 음악감독이 추천하는 영화음악, 장르소설 추천작을 엄선한 1262호 바캉스 특집이 하나의 대안이 되었으면 한다.

먼저 <여고괴담>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인 <여고괴담 리부트: 母校>를 개막작으로 선보이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9~16일)는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중 최초로 오프라인 영화제와 온라인 상영관을 운영해 눈길을 끈다. 이 밖에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실천을 모색하는 서울환경영화제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에 주목한 코로나19 인권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 소식을 담았다. 국내에 든든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킬링 이브>의 세 번째 시즌, 부천국제영화제와 웨이브, MBC에서 순차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웨이브의 오리지널 시리즈 <에스 에프 에잇> 등 OTT에서 선보이게 될 화제의 작품도 엄선해 소개했다. 제작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 김보라·김일란 감독 등이 강연자로 나설 ‘릴레이 토크: 여성영화인을 만나다’ 행사는 향후 <씨네21> 지면에서 더욱 긴 호흡으로 만날 수 있을 거다. 영화음악감독들의 플레이리스트와 이다혜 기자가 추천하는 장르소설 목록은 독자 여러분의 귀와 눈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이국의 ‘전망 좋은 방’에서 누릴 수 있는 풍경 대신 즐길 거리가 이만큼이나 많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즐거운 여름날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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