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덕·남종석·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여성감독의 신작, SF 장르영화가 대세다"
2020-07-17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모은영, 남종석, 김영덕 프로그래머(왼쪽부터).

국내외 게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대야를 가볍게 날리는 부천의 한여름 밤 풍경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심야상영이 없어진 탓에 밤새 영화를 보고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시네필들의 모습도 올해는 만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7월 9일 개막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온라인(왓챠)과 오프라인(CGV소풍)으로 일주일 동안 열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된 탓에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그 어느 때보다 라인업 확보가 쉽지 않았다. 영화제 개막 3일을 앞둔 지난 7월 6일,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김영덕, 영어권과 산업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남종석, 한국영화를 맡은 모은영 등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3인을 만나 올해 영화제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들었다. 아쉽게도 유럽 지역을 담당하는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바쁜 일정 탓에 함께 자리하지 못해 추천작 리스트만 따로 받아 덧붙였다. 영화제는 7월 9일부터 16일까지 열린다.

-온오프라인을 병행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김영덕 예전에는 주객이 전도될 만큼 행사를 어떻게 하면 화려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강제적으로 행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영화제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됐다. 영화제가 한시적으로 관객, 시민들과 유대감과 공동체의식을 주고받는 자리라고 할 때, 사람들이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함께 영화를 보면서 연대감을 느끼고 젊은 영화인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

남종석 산업 담당 프로그래머로서 해외 게스트들이 부천을 찾지 못하는 상황은 아쉽다. 온라인 플랫폼이 가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영상 마스터클래스도 온라인이기에 진행이 가능해졌다. 86살인 감독님이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오시는 것도, 무대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말씀하시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온라인을 통한 상영과 행사 진행은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대안이나 가능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영덕 게스트들이 부천을 찾아 개막식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어울리는 시간을 올해는 가질 수 없게 됐다. 자비를 들여 부천까지 오는 해외 게스트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이제는 개막식부터 원점으로 돌아가 예전과 다른 형식을 고민하게 됐고, 회의를 할 때도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졌다. 행사 규모는 작아지고 영화제를 찾는 사람들 또한 줄어들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하다.

-프로그래머들이 해외 게스트들을 이끌고 네온사인이 가득한 부천의 밤을 주도하는 풍경을 볼 수 없게됐다.

김영덕 가라오케를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하나. 해외 게스트 100여명이 온라인에서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웃음)

남종석 시차가 있어서. (웃음)

모은영 내가 담당한 한국영화의 경우, 어떻게하면 영화를 관객에게 잘 소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상영작의 감독이나 제작자를 일일이 만나 그들의 의사를 확인했는데, 그들 상당수가 온라인 상영을 원하지 않았다. 생각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오프라인 상영도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동의한 작품에 한해 온라인에서 상영하되, 그렇지 않은 작품들은 방역을 철저하게 해 극장에서 관객을 최대한 만날 수 있게 해야겠다 싶었다.

남종석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산업 프로그램(B.I.G)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 게스트 초청비로 책정된 예산을 한국과 아시아 영화인들에게 좀더 지원하기로 했다. C-47, SBA 등 후반작업 업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전체 제작 지원 규모를 7억원으로 늘렸다. 그중에서 ‘잇 프로젝트’ 상금은 기존의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후반작업 지원 규모 또한 3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까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프로젝트 미팅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창작자가 자신의 집이나 작업실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전주국제영화제나 칸·베니스·베를린국제영화제 등 20개 영화제가 참여한 ‘위 아 원’(We Are One: A Global Film Festival) 등 먼저 열린 영화제들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김영덕 지난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칸 버추얼 마켓’은 온라인인데도 실제 칸 마켓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매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영화를 보았는데 우리는 프랑스와 시차가 커 항상 늦은 밤이나 새벽에 감상했다. 차라리 칸에 출장 가서 열흘 동안 고생하는 게 더 나을 뻔했다. 이러한 방식은 시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누군가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종석 올해 부천 프로젝트 마켓에 참여하는 팀들에게 사전에 5분 내외의 소개 영상을 제작하라고 알렸다. 라이브로 진행하면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영상이 끊기는 경우를 대비해서다. 산업프로그램에서 이런 방식을 시도한 건 부천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모은영 우리뿐만 아니라 이후에 열릴 영화제들도 먼저 치른 영화제들이 운영하는 방식을 지켜보면서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는 것 같다.

-해외 영화제나 마켓에 나가지 못해서 라인업을 확보하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김영덕 이 기회를 빌려 페이스북에 정말 감사를 전한다. (웃음) 전세계 영화인, 프로그래머들과 친구로 맺어진 까닭에 수시로 그들의 작업과 관련된 진행 내용과 정보들이 올라와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전세계 영화제 집행위원장들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영화제를 운영할 지 알려주었다. 영화제에 출장 간 것과 비슷한 정도의 정보들은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파악이 가능한 것 같다. 다만 친밀하게 관계를 쌓을 만한 기회가 없는 건 아쉽다. 그럼에도 온라인으로나마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새벽에도 벌떡 일어날 만큼 혼자서 흥분하고…. (웃음)

남종석 영어권의 경우 ‘링크드인’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인들을 포함해 사용자들의 회사나 직책 같은 정보가 바뀌면 업데이트된 내용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다. 오프라인 상영은 철저한 방역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어떤 대비책들을 준비했나.

모은영 좌석 띄어앉기를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전체 좌석 숫자를 1/10로 줄였고, 부천 시내 곳곳에 흩어진 상영관을 CGV소풍 하나로 통일했다. 상영 횟수는 기존의 하루 5회에서 4회로 줄였다. 또 마스크 쓰기, 체온 재기 등 엄격한 방역 절차에 따라 관객에게 안전한 관람 환경을 마련할 것이다.

남종석 올해는 심야상영이 없다.

모은영 관객이 왓챠에 모여 함께 밤을 새우는 이벤트 같은 게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미 알려졌듯이 온라인 상영은 왓챠에서 진행되는데, 프로그래머로서 왓챠라는 플랫폼에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

김영덕 가입자의 취향이나 관심사가 부천의 프로그램과 잘 맞는 것 같다. 그들의 별점 시스템도 매력적이다. 한국영화 상영작을 보고 왓챠에서 별점을 매기면 관객이 어떤 상영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영화제가 끝나면 온라인 상영작 전부 별점이 어떻게 나왔는지, 관객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영화 관람에 참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년 영화제에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것 같다.

모은영 관객이 어떤 영화를 좋아했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왓챠에서 상영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고 있다.

김영덕 왓챠의 알고리즘을 통해 관객의 취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왓챠는 단순한 온라인 플랫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6월 30일 온라인 예매가 시작됐는데 올해 상영작 경향이 어떤가. 추천작도 함께 꼽아달라.

남종석 내가 담당한 영어권 지역의 상영작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신인 여성감독들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공포감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80, 90년대 액션영화에 오마주를 바친 영화들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영화는 치매와 호러를 연결한, 내털리 에리카 제임스 감독의 <유물의 저주>와 종교로 인한 광기와 정신병을 그린 로즈글래스 감독의 <세인트 모드>다. 후자의 경우 조베고스 감독의 <VFW>는 존 카펜터의 <분노의 13번가>에 오마주를 바치는 영화고, 앤드루 토머스헌트 감독의 <혈투의 여전사>는 여성배우들이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액션들을 직접 선보인다.

김영덕 동명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에구치간 감독의 <페이블>이라는 일본 상업영화가 있다. 오카다 준이치와 야기라 유야가 출연하는데, 야기라 유야가 예상하지 못한 ‘양아치’ 모습을 인상적으로 선보인다. 인도네시아의 ‘마블’ 같은 영화인 <군달라: 슈퍼히어로의 탄생>은 500개가 넘는 만화 캐릭터를 보유한 인도네시아의 부미랑잇시네 마틱유니버스의 포문을 여는 히어로 무비다. 사부 감독의 <댄싱 메리>나 여성감독인 아마노 지히로의 <미세스 노이지>도 추천하고 싶다. 나, 일본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웃음) 평소 영화를너무 많이 본 주인공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자신이 본 영화들을 참고 삼아 경찰의 수사를 피해가는 이야기인 <무죄가족>과 중국의 로우예 감독이 만든 <살인연극>도 함께 챙겨 보면 좋겠다.

모은영 코로나19 때문에 영화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장르적으로는 SF가 꽤 많았다. 백승기 감독의 <인천스텔라>가 그중 대표적이다. 서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고백>은 범죄스릴러인데 이야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국내 최초의 BL 드라마로 알려진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8부작 드라마를 영화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엇보다 <여고괴담>의 새로운 시리즈 <여고괴담 리부트: 母敎>를 부천에서 개막작으로 소개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또 장현상 감독의 <좀비크러쉬: 헤이리>는 코로나19 시대를 발빠르게 반영해 만든 영화로, 파주 헤이리마을에서 좀비 사태가 일어나면서 세명의 여성이 위기에 맞서는 이야기다.

박진형 <배드 테일즈>는 파비오와 다미아노 디노첸조 쌍둥이 형제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로, 다양한 영화와 문학, 미술, 사진 등 폭넓은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신선한 언어를 구사한다. <세기의 도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 집>에 영감을 주기도 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대범한 은행강도 사건을 스크린에 펼쳐낸 작품으로 스피디한 연출과 능청맞은 개그가 시종일관 재미를 준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티무르 투리스베코프가 각본과 주연을 맡은 <저스티스 총알을 받아라>는 근미래 디스토피아 슈퍼히어로 SF 영화를 표방하는 올해 금지구역 섹션 최고의 괴작이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행사는 <소서러> <프렌치 커넥션> <엑소시스트>를 연출한 윌리엄 프리드킨의 마스터클래스다.

남종석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걸작 <싸이코>의 샤워 장면을 분석한 다큐멘터리 <78/52> 등을 만든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의 신작 <윌리엄 프리드킨, 엑소시스트를 말하다>가 부천에서 상영된다.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이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을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그가 이번에 환상영화학교의 강사진으로도 참여하기에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마스터클래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게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좋다고 답해 성사됐다.

-영화제 개막이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모은영 영화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제도, 상영관도 방역을 철저하게 할 것이고, 관객 또한 안전하게 잘 준비해서 부천을 찾을 거라고 믿는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내내 코로나19를 계기로 영화제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고민을 했다. 어떻게하면 창작자, 관객과 함께 영화제를 만들어갈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논의했던 것 같다.

남종석 나 또한 영화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모든 동영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부천의 산업 프로그램들 또한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김영덕 앞으로 이러한 형태로 영화제가 운영될 것 같은데 그 점에서 변화를 고민하는 첫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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