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블루 아워' 하코타 유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2020-07-21
글 : 박정원 (영화평론가)

도쿄에 살고 있는 CF감독 스나다(가호)는 일과 인간관계 모두에서 권태를 느끼고 있다. 남편과의 사이는 미지근하고, 직장에선 지루한 감정싸움이 반복되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지속된다. 열정도 잃고 여유도 사라진 스나다는 말 그대로 ‘번아웃’ 상태다. 스나다의 친구 기요우라(심은경)가 그런 스나다를 이끌고 갑작스러운 여행을 시작하며 영화 <블루 아워>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들의 목적지는 스나다의 고향인 이바라키현으로, 그곳은 스나다의 표현에 의하면 ‘촌구석’에 가까운 시골이다. 자신의 고향을 좋아하지 않는 스나다는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이바라키에 도착한다. 아이처럼 밝고 명랑한 기요우라가 이바라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스나다는 엄마, 아빠, 할머니 등의 가족을 차례로 만나며 잊었던 과거와 묵혀뒀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기요우라는 스나다에게 빌린 비디오카메라로 두 사람의 여행의 순간을 조금씩 기록한다. 웃음과 눈물과 꿈과 기억이 이리저리 뒤섞인 고향 방문이 끝나갈 즈음, 스나다는 기요우라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발견한다.

<블루 아워>는 하코타 유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 스나다와 같은 CF감독 출신의 하코타 유코 감독은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연출과 각본을 도맡아 재능을 발휘했다. 주인공이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에서 가족과 보내는 소탈한 시간을 다룬다는 것에서 예상할 수 있듯 영화는 일본 슬로 라이프 무비 특유의 차분한 흐름과 따듯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코타 감독의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은 음악이 활용되는 방식이다. CF감독 출신임을 입증하듯 때로는 시의적절하게 때로는 엇박자의 리듬으로 배경음악을 삽입해 영화에 청량감을 더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요시다 다이하치 등의 감독들과 협업해온 곤도 류토 촬영감독과의 호흡 또한 안정적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블루 아워’, 새벽녘의 시간대는 영화의 전반적 무드를 조성하는 주요한 요소다. 아침도 밤도 아닌 새벽, 희미한 빛이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몽롱한 시간대가 주인공 스나다의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불만족스러운 과거와 불안정한 미래 사이, 혼란스러운 현재를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스나다는 선잠에서 깨어나 밤을 뒤로한 채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상황이다. 실제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이 맞닥뜨리는 것은 푸르스름한 빛 속의 한 소녀가 어딘가로 힘껏 뛰어가는 모습이며, 이는 영화가 끝나갈 때 다시 만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장면이기도 하다. 웃는 듯 우는 듯한 스나다의 마지막 모습 또한 희비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회를 자아낸다. 영화는 무엇도 명확히 해결되거나 결정된 것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의 시원섭섭함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말하자면 <블루 아워>에는 뚜렷한 문제의식이나 빈틈없는 기승전결의 서사가 마련돼있지는 않지만, 언어만으로는 완전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분위기의 섬세한 시청각적 표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블루 아워>는 여름의 생생한 공기, 새벽녘의 고요한 기운, 가족, 친구, 이웃간의 개성 뚜렷한 대화를 두루 섞어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나아간다는 것, 죽음을 앞둔 가족을 만나 체온을 나누는 것,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불가능을 깨닫는 것 등 막연한 희망과 막막한 불안 사이에 위치한 삶의 메시지를 담담하게 전달한다. 잔잔한 흐름의 영화를 집중력 있게 끌고 나가는 것은 배우들의 역량인데, 주연배우 두명을 포함한 배우들의 조화가 영화를 보다 밀도 있게 만들었다. 시니컬하면서도 여린 스나다 역의 가호와 맑고 자유로운 영혼의 기요우라 역의 심은경은 정반대의 성향 덕분에 오히려 잘 맞는 친구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소화했다. 그 밖에 어딘가 괴짜 같은 면이 있는 스나다의 가족을 연기한 미나미 가호, 덴덴, 구로다 다이스케 등의 배우들도 각자의 역할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CHECK POINT

공동 주연상

<블루 아워>의 두 주역인 가호와 심은경은 지난 3월 일본 군마현에서 열린 지역 영화제, 제34회 다카사키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앞서 열렸던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신문기자>로 한국인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심은경은 <블루 아워>를 통해 다시 한번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손녀와 할머니

주인공 스나다는 고향을 방문해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의 병문안을 간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을 사고, 할머니와 소박한 대화를 나누고, 할머니의 손톱을 깎아주는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온기를 품고 있다. 스나다가 할머니,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것 또한 여운을 남긴다.

하코타 유코 감독

<블루 아워>는 하코타 유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스나다의 고향으로 나오는 이바라키현은 감독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가 일본 쓰타야 서점에서 지원하는 공모전(쓰타야 크리에이터스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영화가 제작되었다. 감독은 이 영화로 제22회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신인 부문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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