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x cross]
<팬텀싱어> 시즌3 우승 사중창단 라포엠의 카운터테너 최성훈 - 선을 넘는 소리
2020-07-29
글 : 김혜리
사진 : 오계옥

4인용 병실의 금요일 밤이었다. 누군가 끄기를 잊은 TV에서 한 남자가 <She>의 도입부 네 마디를 노래하는 순간, 각자 노트북을 만지고 과일을 먹던 네 환자는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다. <팬텀싱어> 시즌3(이하 <팬텀싱어3>)를 통해 대중 앞에 나선 카운터테너 최성훈의 사운드는 그렇게 사뿐히 무감동의 벽을 뛰어넘어 폐부를 찌른다. 카운터테너는, 어원상 주선율을 끌고 가는 테너(tenor, ‘잡다’라는 의미가 있다)의 위나 아래에 배치되는 성부를 뜻한다. 카운터테너 가수들은, 가성대(假聲帶)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명과 두성으로 여성 음역에 속하는 소리를 강하게 더 멀리까지 보낸다. 카운터테너의 소리는 단순히 남자가 내는 신기한 고음이 아니라 고유한 발성법과 성질의 소리다. 8개월의 TV 경연에서 최성훈이 만든 무대들은, 남성의 사운드는 어떠해야 한다는 관념은 물론 인간과 자연, 유기체와 기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카운터테너 성부의 매력을 시연했다. 그리하여 다른 ‘마이너리티’ 참가자인 국악 뮤지션 고영열의 소리와 더불어 남성 중창의 외연을 확장했다. 최성훈은 <팬텀싱어3> 최고의 ‘배우’이기도 했다. 카메라에게 말 거는 눈, 미간부터 발뒤꿈치까지 감정과 악상을 실어나르는 퍼포먼스는 “성악가의 몸은 악기”라는 명제의 부가적 의미를 일깨웠다. 소속한 크로스오버 4중창팀 라포엠(83쪽 박스참조)의 <팬텀싱어3> 우승 여파로 바쁜 최성훈을 비 오는 아침에 만났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는 세상 누구도 무엇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조용히 움직였고, 단어 하나도 음정인 양 대답에 신중했다.

-변성기 이전에 성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나.

=변성기가 정확하지 않다. 음성이 확 허스키해지거나 굵어지는 일은 없었고 “쉽게 내던 음이 좀 어렵게 나네?” 하는 느낌 정도였다. 변성 기간에도 소년소녀 합창단에서 가장 높은 성부인 ‘소프라노1’에서 노래했다. 음악하는 가족은 없는데 네 다섯살 무렵 피아노를 시작했고 집보다 피아노가 있는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아 태권도, 미술학원을 그만뒀다. 그러다 합창단에 들어갔고 이후로 삶에 음악이 없었던 적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진로였다.

-성악 전공자로서 성부를 선택하는 시점에 고려한 카운터테너의 장단점이 무엇이었나.

=장단점은 생각지 않았다. 예고 진학을 결정한 중학교 3학년 당시에도 소년소녀 합창단에서 활동 중이었고 내게 친숙하고 편한 보이소프라노 발성으로 노래하는 카운터테너가 됐다. 순전히 내 결정이었다. 부모님은 늘 내 선택을 존중하고 곁을 지켜주시는 편이다.

-“세상에 없던 소리”, “신이 내린 소리” 등 카운터테너의 발성을 신비화하는 표현도 있지만, 모든 남성이 훈련을 거치면 기술적으로 낼 수 있는 소리라고도 한다. 타고난 자질과 수련의 비율이 테너나 바리톤, 베이스와 다른가.

=성부 막론하고 성악가에게 요구되는 타고난 자질은 성대의 생김새보다 음악적 재능이다. 얼마나 클래식 음악을 꾸준히 듣고 연주하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지, 한곡의 노래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재능의 척도다. 나는 타고난 편은 아닌 것 같다. 노력하고 연구했다. (생각) 단지 타고나서 잘된다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마음 아프지 않을까?

-국내 카운터테너는 테너나 소프라노에게 사사하는 예가 많더라.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7년 이상 유학하며 활동했는데 보다 본격적인 카운터테너 수련이 동기였나.

=그것도 있지만 20대 후반과 30대의 삶을 새로운 장에서 열고 싶었다.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며 대구에서 서울로 환경이 바뀌었는데 20대를 새 장소에서 시작했다는 게 좋았다. 그러다 학부를 마치고 “이제 또 다른 세상을 찾아가볼까?” 결심한 것이 유학이었다. 한 공간에서 시간이 많이 흐르면 안주하기도 하고 중요한 것을 지나치기도 한다. 그럴 때 장소의 변화가 시간이 해결해줄 수 없는 것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팬텀싱어3>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 여행의 시절은 끝난 건가.

=내가 떠난 곳과 돌아온 곳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달라졌기 때문에 공부할 대상, 처한 환경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프랑스로, 스위스로 옮겨갔듯이 돌아온 한국은 다시 새로운 장소다.

-두 번째 유학지 스위스는 바젤에 유명한 카운터테너 학교가 있는데, 지휘자 겸 여성 콘트랄토인 제네바국립고등음악원의 나탈리 슈투츠만 교수를 스승으로 택했다.

=학교보다 내겐 슈투츠만 선생님이 중요했다. 원래 굉장한 팬이어서 늘 선생님 음악을 찾아들었다. 파리의 학업이 끝나갈 즈음 시도도 않고 귀국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매니저를 통해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음악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클래스에 받아줄지 오디션을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제자가 됐다.

-슈투츠만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클래식 거장의 권위와 다른 종류의 카리스마를 가졌다.

=대형 공연장에서도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끌어가는데, 좁은 레슨실에서도 선생님의 웅장한 기운을 느꼈다. 처음엔 긴장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동양인 카운터테너로서 내가 고민하는 부분, 유학생의 경제적 어려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먼저 의논해주셨다.

-오디션 이전에 마이크를 써서 무대에서 노래한 경험이 있나.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에서는 무대 전체 마이크나 천장 마이크만 사용한다. <팬텀싱어3>에서 쓰는 핸드 마이크는 처음이다. 성악가는 본래 몸 안의 빈 공간을 확장시켜 울림을 만드는데, 마이크를 사용하려면 새로운 공부가 필요했다. 이전 시즌 영상, 유튜브의 노래 영상을 보면서 마이크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얼굴에서 많은 공명이 이뤄지니 인이어도 부담되겠다.

=경연 중 한번 경험했는데 안 써본 물건에 대한 두려움일 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리가 조금 막히는 기분이지만 몸 안에서 느끼는 압력으로 음정을 가늠할 수 있다.

-30년 가까이 매진한 클래식 성악의 소양, 유럽에서 어렵게 쌓은 경력을 등지고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스위스에 돌아갈 구실을 남겨두면 믿는 구석이 생겨 경연에 게을러질까봐 모두 정리하고왔다. 내가 쌓아온 것들은 버리는 게 아니라 갖고 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카운터테너의 기교인 멜리스마(melisma, 가사 한 음절에 붙여진 여러 음의 멜로디), 카덴차 작법 등을 크로스오버의 아이디어로 경연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

-과연 크로스오버 음악은, 상대적으로 바로크 시대에 몰려 있는 카운터테너의 레퍼토리를 확장시킬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바로크음악은, 후대의 신고전기, 낭만음악보다 즉흥연주가 자유롭고 모던한 면이 있다.

=카운터테너는 바로크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지식과 해석, 아이디어를 공부한다. 벨칸토시대의 음악을 거기 접목하긴 어렵지만 훨씬 후대인 현대음악과 결합하는 일은 가능하다. 장르를 합친 음악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시대의 음악을 합치는 것도 크로스오버라고 생각하면, 가능한 음악적 방식이 다양해진다. 예컨대 헨델의 아리아에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만들어 넣을 때 (당대 규범에 맞는) 음정과 코드를 연구했다면, 크로스오버에서는 제약이 적다. 이렇게 전개하려면 코드를 바꾸면 되고, 저기서는 전조(轉調,transposition)하면 된다는 식으로 구상할 수 있다.

-오디션으로 돌아가자. 특수 성부라 일단 중창 경연이 시작되면 본인이 모종의 청사진을 갖고 다른 참가자에게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을 것 같다.

=성부 이전에 원래 성격도 그렇다. 성악과를 졸업했다고 해도 카운터테너를 만난 적이 없는 참가자가 많다. 카운터테너의 장단점과 합주 가능성을 나 아닌 다른 분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카운터테너인 내가 먼저 움직여야 다른 참가자의 그림도 살리며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초반 강자로 지목된 경연자 중에서도 국악인 고영열이나 최성훈씨가 동료들을 열심히 듣고 연구한 기색이었다.

=매 라운드 정말 열심히 지켜봤다. 다른 친구들의 음색, 음악적 스타일, 해석의 방법, 성격을 관찰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내 그림은 내 그림이었을 뿐이다.

-집단예술이 애초 개인의 구상대로만 완성된다면 약간 실패다.

=솔리스트의 삶에 없는 중창의 매력이다. 내 그림은 온전히 내 머릿속에 머물러야 맞고, 다른 아티스트를 만나면 그가 그려놓은 그림에 내가 뛰어들기도 해야 한다. 막상 불러보면 다른 색이 계발되기도 한다. 사중창까지 오면서 얻은 가장 흥미로운 배움이었다.

-카운터테너들의 소리도 다양하다. 안드레아스 숄처럼 숨쉬듯 부드럽게 노래하는 가수도 있고 데이비드 대니얼스처럼 힘찬 카운터테너도 있다. 기성 카운터테너나 관악기, 현악기에 음색이 비교된 경험이 있나.

=카운터테너는 가성대를 기반으로 비강공명 등 다양한 공명과 두성을 써서 발성하기 때문에 성대에서 바로 나는 소리보다는 음정이 흔들리기 쉽다. 그러다보니 정확한 피치감과 사운드를 내기 위해 오랫동안 훈련하고 결과적으로 음정이 정확해져서 기악에 비교되는 것 같다. 내 음색이 특정 악기와 비슷하다는 말은 못 들어봤고 어떤 선생님이 프랑코 파지올리와 소리가 닮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기자가 데이비드 한센과 비슷하다고 하자) 한센은 무척 좋아하는 카운터테너다. 그의 공연을 보려고 빈까지 가기도 했다.

-김문정 심사위원이 1차 오디션에서 말했듯이 비애감이 서린 음색이다. 흐느끼는 슬픔이 아니라 앎에서 비롯된 슬픔이랄까. 무엇인가 더 아는 사람의 그늘이 목소리에 있다. 그래서 솔 감성이 강한 소코, 담담한 바리톤 강동훈과 만난 ‘최강황소’팀의 사중창이 조화로웠던 것 같다.

=특히 소코는 내가 결과를 향해 달려가느라 놓친 부분을 포착해서 모두와 나눴다. 무대에서 결국 이런 걸 보여줘야 하니 맞춰서 저런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게, 어쨌든 부르는 우리가 행복하고 감정을 이해해야 듣는 사람도 느낀다고 상기시켰다. 완성도에 매달리느라 내가 음악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를 놓친 거다. 소코의 그런 점이 굉장히 좋았고 애틋한 정이 들었다.

-오랜 성악가 생활이 퍼스낼리티에 미친 영향이 있나.

=음악을 해서 성격이 예민한지 원래 예민한데 음악을 해서 잘된 건지 알 수 없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고 변화를 빨리 깨우치는 편이다. 유학 초엔 다른 사람이 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혹시 놓칠까 생각만 해도 싫어서 녹음기를 켜놓고 다니기도 했고, 내가 언어가 부족하니 메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TV를 보면서 뮤지컬이나 오페라의 무대연기와 다른 스케일의 카메라에 적합한 연기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많은 카메라 앞에서 노래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페라 무대에서 어느 자리에서나 청중이 나를 보고 있다는 전제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다.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가 극중 캐릭터로서 노래하면, 가창력이 가수보다 좋다기보다 그 인물로서 노래하기 때문에 설득된다. 반대로 성악가의 연기는 곡 해석의 일부로 보면 될까.

=노래하는 사람이 100 크기의 감정을 전해야 청중이 그나마 감정선을 전달받는다고 생각한다. 노래는 방 안에서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무대를 같이하는 멤버, 오케스트라 주자, 청중과 공유해야 한다. 100의 감정이란 센 표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래의 감정을 완벽히 정리한 다음 집중한다는 의미다. 행복하게 노래하겠다는 의지보다 노래하는 내가 행복한 순간에 들어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극고음을 낼 때도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는다.

=극고음, 극저음을 낼 때도 편안하게 보이려고 성악가들은 신경 쓴다. 사실은 힘들다. 엄청난 압력이 들고 등 근육과 횡격막의 모양을 상상하며 집중하고, 호흡을 받치고, 자음과 모음을 어떻게 낼지 생각한다. 이 수많은 요소가 한순간 맞아떨어져야 모나지 않은 소리가 난다.

-카운터테너의 특성상 감정을 동일시하는 음악 속 주체가 반드시 남성이 아닐 수도 있고 자연의 현상을 묘사할 때도 있을 것이다.

=<Requiem>을 부를 때에는 죽은 자의 역이었는데 그의 성별은 우리끼리 이야기한 바 없다. <바람이 되어>에서 순간적으로 바람을 표현한 대목이 있었다. 카운터테너의 소리가 두드러질 뿐, 다른 성부 가수들도 악기가 될 수 있다.

-세 시즌이 쌓이면서 여성 중창단을 뽑는 오디션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대하는 쪽은 남성 중창보다 음악적으로 단조롭고 팬층이 얇다는 이유를 든다.

=음악적 단조로움은 성별 차이가 아니라 연주자의 차이인 것 같다. 재미있는 오디션이 될거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소리는 어떤 소리라고 정의하는지.

=누군가의 감정을 만질 수 있는 소리, 기억을 끌어낼 수 있는 소리.

라포엠

사진제공 JTBC <팬텀싱어> 시즌3

테너 유채훈과 박기훈, 카운터테너 최성훈, 바리톤 정민성으로 이루어진 4중창팀으로 <팬텀싱어3>의 12인 최종 결승에서 가수들의 의사와 심사위원의 조정을 반영해 결성된 세팀 중 하나다. <팬텀싱어> 최초 전원 성악가로 이뤄진 팀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Nelle Tue Mani> 등 4곡을 노래한 결승에서 시청자의 큰 지지에 힘입어 역전 최종 우승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뮤지션은 경연 이후 기량 유지와 레퍼토리 확충이 관건인데 든든한 기본기가 강점. 개인의 색과 매력을 꺾어 전체를 맞추기보다, 클래식 뿌리 위에서 4인의 개성을 유지한 채 시너지를 내는 음악, 팀 활동만으로도 개인의 역량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는 품 넓은 팀을 추구한다. 바쁜 요즘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노래를 부른다.

사진제공 JTBC <팬텀싱어> 시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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