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이하 <셰이프 오브 뮤직>)는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삶과 음악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다큐 제작 당시 데스플라는 조지 클루니 감독의 <모뉴먼츠 맨>을 위한 음악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부드럽게 흐르는 선율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데스플라의 열정적인 모습을 1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엿볼 수 있다. 2007년부터 거장 음악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시리즈로 만들고 있는 파스칼 쾨노 감독은 2014년 <셰이프 오브 뮤직>을 완성하면서 데스플라를 새로운 거장 리스트에 올렸다. 뒤늦게 한국 관객을 찾은 다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정보를 정리해 소개한다.
플루트 부는 소년
1961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데스플라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플루트와 트럼펫을 수준급으로 연주하고 작곡을 배웠다. 비록 음악만큼은 아니지만 영화를 사랑했던 데스플라가 어린 시절부터 영화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스타워즈>의 음악 덕분이다. 1986년 26살에 프랑스영화 <르 수플레>를 위한 영화음악을 만든 이후로 그는 여러 프랑스 감독들과의 협업을 이어왔다. 그를 할리우드로 이끈 작품은 피터 웨버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당시 사람들은 그를 이제 막 나타난 음악감독으로 생각했지만 “이미 50번째 영화를 기념하는 샴페인을 터트린 뒤”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후 조너선 글레이저 <탄생>, 웨스 앤더슨 <판타스틱 Mr. 폭스>, 스티븐 개건 <시리아나>, 데이비드 핀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톰 후퍼 <킹스 스피치>, 데이비드 예이츠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등 여러 작품에서 음악을 책임졌다.
아카데미 2관왕
데스플라가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 후보에 오른 건 2007년 스티븐 프리어스의 <더 퀸>을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뒤인 2015년 데스플라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아카데미 음악상 트로피를 거머쥔다. 당시 함께 경쟁한 이 중에는 <인터스텔라>의 한스 짐머도 있었지만,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또 다른 지명을 받은 자기 자신도 있었다. 서로 다른 작품으로 음악상 후보에 두번 지명된 영화음악가는 데스플라를 포함해 존 윌리엄스, 버나드 허먼 등 역사상 단 7명뿐이다. 이후 데스플라는 총 7번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두 번째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데스플라의 다음 작품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프렌치 디스패치>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피노키오>다. 그에게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겨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감독과 다시 뭉쳤으니, 그 선율이 기대된다.
다작의 음악감독
평균 1년에 영화 6편. 지난 20년 동안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모두 129편으로, 데스플라 감독은 평균 1년에 6.45편의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한 작품을 위해 여러 스코어를 작곡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그가 참여해 완성시킨 곡의 수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정말 놀라운 해가 많다. 2012년의 경우 데스플라 감독은 <제로 다크 서티> <아르고> <러스트 앤 본> <문라이즈 킹덤> 등 10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맡았다. 2014년에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모뉴먼츠 맨> <이미테이션 게임>을 완성시키면서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다(참고로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영화감독이 아닌 음악감독에게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긴 건 데스플라가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작은 아씨들>을 비롯해 4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맡았는데, 이는 그의 왕성한 작업 속도에 비하면 평균 이하라고 할 수 있다.
자크 오디아르와의 인연
데스플라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전 활발하게 협업을 이어온 프랑스 감독은 자크 오디아르였다. 각본가로 활동하던 오디아르의 1994년 감독 데뷔작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라>에서부터 시작해서 데스플라는 단 한편을 제외하고, 오디아르 감독의 모든 필모그래피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데스플라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하지 못한 유일한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는 <디판>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총 7편의 작품을 함께했으며, 특히 2005년 데스플라는 오디아르 감독의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으로 제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영화음악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음악적 동지이자 반려자, 솔레이
데스플라의 녹음 현장을 지휘하는 예술감독은 그의 아내 도미니크 르모니에다. 데스플라는 그녀를 솔레이라는 이름으로 즐겨 부른다. 데스플라가 솔레이를 만난 건 그의 첫 장편영화를 위한 녹음 현장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솔레이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으며, 그의 음악을 책임지는 프로듀서이자 음악적 동지가 되었다. 데스플라가 작곡한 음악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이 솔레이이며, 그녀는 데스플라와 함께 작업하는 현악오중주단 ‘트래픽 퀸텟’을 결성해 일반 관중을 위한 콘서트도 열고 있다. 데스플라 감독은 201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첫 수상했을 당시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당신이 만든 것이다. 이 상은 당신의 것이다”라면서 솔레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셰이프 오브 뮤직>에서 솔레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