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2002) 이래 드라마 속에 검은 우의를 걸친 연쇄살인범이 수없이 등장했다. tvN <악의 꽃>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캐릭터 도현수(이준기)도 우의를 입었다. 아버지가 저지른 연쇄살인의 공범 혐의로 수배 중인 그는 자신을 알아본 기자 김무진(서현우)을 지하실에 감금한다. 비가 퍼붓던 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의를 입은 채 그는 사지가 묶인 김무진의 입에 김밥을 하나씩 떼어 넣어준다. “입맛에 맞을 거야. 너희 집 근처까지 가서 사왔거든.”
무슨 사이코패스가 김밥을 사다 먹이나! 김무진의 위장에 김밥을 남겨 경찰 부검에 대비하려 했다는데 말은 무시무시해도 도현수의 실제 수고는 산 사람과 협상하는 쪽에 쓰인다. 서스펜스에 엮어내는 괴이한 유머는 유정희 작가의 장기. 도현수는 김무진이 포털사이트 지식인에 올렸던 질문, 자기 과거가 드러나면 기자직에 영향이 있을지 묻던 내용을 본인 입으로 읽게 한다. 36살 남성의 목소리로 낭독하는 글의 시작은 이렇다. “시나리오작가가 되고 싶은 여고생입니다.” 도현수는 신분 위장에 훨씬 철저하다. 백희성이란 이름으로 강력계 경사 차지원(문채원)과 결혼해 딸을 키우는 그는 보통 사람처럼 보이려 부단히 애쓴다. 매일 표정 연습을 하고 육아와 살림을 도맡는다. 김치냉장고에는 깍두기, 오이소박이, 열무김치까지 챙겨둔다. 이렇게 구체적인 일상 삽화는 의심의 씨앗으로 활용된다. 차지원은 살인사건 현장인 중국집에서 남편이 만든 음식과 똑같이 생긴 메뉴를 발견하고 멈춰 선다. 도현수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것은 맞지만, 그가 살인자인지는 증명되지 않은 채 의혹에 싸여 있다. 타인의 고통에서 짜릿한 재미를 찾고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삶도 있다고 평하는 장면들은 극중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통해 재현된다. 인간은 모두 악한 면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되물었을 텐데. <악의 꽃>은 사람을 해치는 일을 실행에 옮긴 쪽과 그 일을 하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이를 가른다.
VIEWPOINT
괴물의 심연
김무진 기자의 연쇄살인사건 기사에는‘사이코패스는 유전되는가’ 등의 댓글이 달린다. 현재의 연구는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소양을 일부 가지고 태어나지만, 폭력 요소의 발현에는 유년기 학대나 전쟁 경험 같은 후천적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뇌가 사이코패스의 뇌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한 신경과학자 제임스 팰런(사진)은 저서 <괴물의 심연>에서 자신을 범죄 성향을 갖지 않은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라고 설명한다. 조상 중에 살인을 한이가 7명이지만, 유년기의 좋은 환경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