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베를린]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운디네' 개봉
2020-08-18
글 :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
동화 같은 사랑 속으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사진제공 SHUTTERSTOCK

3월 개봉예정이었던 독일 극장가의 화제작 <운디네>가 코로나19 사태로 7월 초에 개봉했다. 올해 2월 말 열렸던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운디네>는 베를린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상을 받았고, 배우 파울라 베어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내로라하는 작가주의 감독이다. 90년대 중반 독일영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감독들의 영화적 흐름을 일컫는 베를린파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그는 사실 베를린영화제의 단골 초대 손님이다. 그의 작품 <옐라>(2007), <바바라>(2012), <트랜짓>(2018)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고, 그중 <바바라>는 은곰상(감독상)과 저널리스트 특별상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운디네’는 유럽 설화에 나오는 물의 정령이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 프리드리히 데 라 모테푸케는 19세기 초 설화를 바탕으로 운디네와 관계를 맺은 뒤 배신한 남자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내용의 동화 <운디네>를 썼다. 페촐트의 <운디네>는 그의 전작을 관통하는 주제인 사랑, 비극,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깔려 있다.

영화는 이별을 통보하는 남자친구와 카페에 마주 앉아 있는 운디네(파울라 베어)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운디네는 “떠난다면 너는 죽을 수밖에 없어”라고 내뱉으며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녀는 베를린 방문객에게 도시 형성에 관한 역사, 건축사를 설명하는 안내원으로, 박사학위를 가지고 시청에 소속되어 프리랜서로 일하고있다. 지적이고 유려한 말솜씨로 청중에게 도시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는 운디네에게 반한 잠수부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브슈키)는 그녀를 따라 카페에 들어간다. 그 순간 어항이 깨지며 물이 쏟아지고,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페촐트 감독은 설화 속 물의 정령인 운디네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 곳곳에 물의 이미지를 채워놓았다. 저수지의 산업 잠수부인 크리스토프가 잠수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수영장과 저수지, 호수, 강가 등 신비한 물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특히 크리스토프가 수중작업 중에 여러 번 만나는 ‘군터’라는 거대 메기가 신비함을 더한다.

<운디네>는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지만 몽환적인 세계가 현실에 매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품이다. 운디네의 동화 같은 사랑과 함께 그녀가 청중에게 들려주는 베를린에 관한 흥미로운 역사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매끈하게 달라붙어 영화의 두축을 이룬다. 특히 파울라 베어와 프란츠 로고브슈키 두 배우의 연기가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 당시 페촐트 감독은 “신화나 설화는 오랜 시간을 거쳐 회자되며 집단적으로 수많은 이들이 함께 쓴 텍스트다. 나에게 영화는 신화나 동화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라고 말하면서 독일 낭만주의의 맥을 잇는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디네>는 그의 낭만주의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서구 낭만주의의 본고장 독일에서 만들어질 페촐트 감독의 후속 작품들이 기대된다.

사진제공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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