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11번째 영화 <테넷>은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을 선사하는 놀란의 작품 세계를 집약하는 영화다. 개봉을 며칠 앞둔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시놉시스 한 줄조차 공개되지 않은 탓에 영화와 관련해 여러 추측이 오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흘러나온 제작진의 인터뷰와 사진 자료 등에 기반한 정보를 종합하면, <테넷>은 굉장히 복잡한 구조의 영화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덩케르크>나 <인터스텔라>가 그랬듯, 복잡한 이야기 구조 변화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고 보려면 몇 가지 사전 정보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씨네21 1269호에 실린 기획기사 ‘<테넷> 제작자 에마 토머스가 말하는 로케이션부터 극장 개봉까지. 주연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 인터뷰’와 국내 출간 예정인 ‘<테넷> 메이킹 필름북 - 크리스토퍼 놀란이 펼치는 양자역학 냉전의 뒷이야기(문학수첩 출간)’에 실린 정보를 중심으로 관람 전에 알고 가면 좋을 키워드들을 소개한다.
1. <테넷>은 특정 영화의 속편이 아니다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특정 영화의 속편이라거나 혹은 연결되어 있다는 식의 소문과 거리가 먼 영화다. 그의 전작들과 이야기 구조, 즉 영화에서 플롯을 구성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우선 <테넷>은 관객이 가장 집중해서 보게 될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달리는 기차로 비유하면 정방향과 역방향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을 것이라는 것.
2. 가제 ‘회전목마’의 의미
<테넷>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주인공 ‘안타고니스트’를 연기하는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데 4시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워낙 복잡한 이야기라 읽던 도중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기 때문. 프로덕션 진행 과정에서 제작진이 내세웠던 가짜 제목 <회전목마(merry-go-round)>(흔히 할리우드 영화는 제작과정에서 보안상 가짜 제목을 만들어 진행하곤 한다.)의 함의를 느낄 수 있는 대목. 물론 그런 의도로 지은 가짜 제목은 아니었을 거다. 영화를 보면 충분히 다른 의도를 상상해볼 수 있지만 그에 대해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된다.
3. <인셉션>의 아이디어+스파이 장르= <테넷>
<테넷>의 공식적인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미래의 공격에 맞서 현재 진행 중인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다. 여기에 ‘인버전’이라는 영화 상의 중요한 개념이 끼어드는데 인물들은 시간을 거스르는 ‘인버전’을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에서 동시에 협공을 펼치는, 미래 세력에 맞서 시간을 이용하는 작전을 펼치게 된다고. 영화의 모든 장면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한 장면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놀란 감독의 소개에 의하면, “<테넷>은 기존에 없던 시간의 개념에 SF와 첩보영화의 요소를 섞은 작품”이라고. <인셉션>의 아이디어에 스파이 영화의 요소를 첨가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덩케르크> 이후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예전부터 구상했던 스파이 장르가 제격이었다. 스파이 장르는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장르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하지만 기존의 장르를 답습하긴 싫었다.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고 싶었다.”
4. <인터스텔라>의 자문을 맡았던 물리학자 킵 손과 또다시 협업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시간에 관한 고정관념 중에서, ‘시간은 바꿀 수 없는 개념’을 뒤틀어서 시간도 구부려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 즉 ‘인버전’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이 영화의 구상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현대 물리학에서 시간을 ‘인버전’하는 것, 즉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라 여길까. 이에 대해서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가 직접 대본을 검토하며 오류를 바로잡아 주었다는 후문. 킵 손은 이 영화의 초고가 완성도 되기 전에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알게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놀란 감독은 또 <테넷>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모든 물리학은 대칭적이다. 시간은 순행하기도 하고, 거꾸로 가기도 하고, 동시간일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어떤 사물의 엔트로피 흐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사물에 작용하는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
5. 그래서 <테넷>은 시간여행에 관한 영화?
모든 힌트는 몇 편의 예고편에 다 담겨 있다.
6. 프로타고니스트와 닐, 영웅과 그림자
놀란 감독은 <테넷>의 인물들을 캐스팅할 때 톱스타를 주인공 주변부에 배치하는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HBO 코미디 드라마 <볼러스(ballers)>에 출연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연기를 보고는 그의 카리스마에 반해 오디션을 제안했고 스파이크 리 감독의 초대로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블랙 클랜스맨>에서 백인 우월집단 KKK단에 잠복해 비밀정보를 수집하는 흑인 형사 론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캐스팅에 확신을 얻었다고. 존 데이비드 워싱턴에 따르면, 그가 연기하는 프로타고니스트는 한 마디로 “지구를 구하려는 한 남자”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서 “과거 네이비실에서 일했으며 주어진 작전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어떤 희생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란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할 닐은 프로타고니스트의 곁을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인물이다. 놀란 감독은 사프디 형제의 <굿타임>에서 로버트 패틴슨이 보여준 연기를 보고 빠져들었다고.
7. 빌런, 페르소나, 뉴페이스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하는 ‘안드레이 사토르’는 러시아 집권층으로 무기밀매에도 참여하는 악역이다. 엘리자베스 데비키가 연기하는 ‘캣’은 사토르의 아내로 사토르와는 끔찍한 관계로 얽혀 있다고. 마이클 케인이 연기하는 ‘마이클 크로스비’는 예고편에서는 영국의 초호화 사교 클럽 ‘리폼 클럽’에 출몰하는데 어느 편의 인물일지는 미지수. 클레망스 포에지가 연기하는 과학자 ‘로라 or 바바라’는 프로타고니스트에게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아론 테일러 존슨이 연기하는 ‘이브스’는 무장 단체의 부사관으로 인버전의 전문가다. 피오나 듀리프가 연기하는 이브스의 부사령관 휠러는 물리학자 존아치볼드 휠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8. <테넷>의 각종 TMI
영화에서 엄청난 테러가 일어나는 오페라 하우스 장면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만 3,300여명에 달했다. 이들의 분장을 담당하는 스태프는 15명이었다고. 전체 촬영된 65밀리 필름의 길이는 487킬로미터 분량으로 제작진은 세계 신기록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편집감독은 <결혼 이야기>, <유전>,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작업한 제니퍼 레임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헬기 착륙이 가능한 90미터 길이의 메가 요트는 보험비만 10억달러에 달하는 초호화 요트다. 호이테 판 호이테마 촬영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서 아이맥스 카메라에 플레이백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 테이크를 찍은 뒤 버튼 하나만 누르면 24프레임으로 역방향 재생을 할 수 있다고. 또한 <테넷>만을 위해 아이맥스 카메라에 장착할 80mm매크로렌즈도 개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