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영화의 성평등 지수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에서 여러 삶을 다루다 보면 이런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것들이 이 시대에 영화 안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 잡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저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배우 겸 감독 문소리)
여성영화인모임이 기획한 인터뷰집 <영화하는 여자들>은 2020년 현역으로 활동하는 여성 영화인들을 고루 인터뷰한 책이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나누어 인터뷰이를 배분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영화산업이 숨가쁘게 성장한 시간을 중계한다. <씨네21> 독자들에게는 수많은 인터뷰 기사들로 친숙할 얼굴을 ‘여성 영화인’이라는 키워드로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인터뷰이로는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로 시작해, <씨네21> 전 편집장 안정숙, 영화감독 임순례, 편집감독 박곡지, 영화 마케터 채윤희, 배우 전도연이 나섰다. 영화 현장에서 여성 영화인이 (지금보다 더) 드물던 시절부터 활동해온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영화하는 여자들>은 여성들의 영화 현장 생존이 녹록지 않았던 시간을 말하는 순간에도 위인이나 피해자라는 식으로 단순화하지않고자 노력하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한국영화가 급속도로 파이를 키워가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풍요를 간접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2000년대를 다루는 2부의 제목은 ‘더 넓고 더 깊게, 전문가들의 시대’다. 배우 겸 감독인 문소리로 시작해 프로덕션 디자이너 류성희, 제작자 강혜정, 음향편집기사 최은아와 조명감독 겸 촬영감독인 남진아 등의 목소리가 여기 실린다. <영화하는 여자들>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재 여성 영화인이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경력을 쌓아온 결과를 담아내는 동시에,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 영화 제작부터 홍보까지 어떤 변화의 파고를 겪었는지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촬영감독 엄혜정, 다큐멘터리 감독 김일란, 감독 윤가은과 전고운, 배우 천우희 등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예술작품이 아니라 노동현장으로서의 영화산업이 무엇을 개선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젊은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진다. 이 책이 더 많은 여성 영화인들의 미래를 비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