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채드윅 보스먼의 부고 소식이 알려진 지난 8월 28일은 첫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의 업적을 기리는 날이었다. ‘재키 로빈슨 데이’는 본래 4월 15일이지만, 코로나19로 메이저리그시즌 개막과 함께 8월로 밀린 것이다. 영화 <42>에서 재키 로빈슨을 연기하며 스타덤에 오른 채드윅 보스먼은, 공교롭게도 재키 로빈슨 데이에 눈을 감았다. 채드윅 보스먼은 유달리 흑인 전통과 문화를 사랑하고 인종차별 반대 목소리를 부단히 내온 배우였다. 각자의 영역에서 정상에 오른 흑인 인물들을 연기하며 그는 미디어 속 흑인 캐릭터에 대한 편견에 맞섰다.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는 오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블랙팬서가 건넨 말을 상기해보자. “와칸다에선 죽음이 끝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는 채드윅 보스먼을 애도하며 그의 영화적 순간들을 되짚어보았다.
“그는 진정한 전사였다.” 지난 8월 28일, 채드윅 보스먼의 가족은 공식 SNS를 통해 그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올해 4월, 코로나19로 직격타를 맞은 병원에 장비를 지원했음을 알리는 영상에서도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등장해 우려의 목소리가 불거지던 차였다. 팬들에겐 갑작스러운 비보였으나 채드윅 보스먼은 이미 2016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수많은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음에도 예후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을 포기하는 대신 사망 일주일 전까지 <블랙팬서2>를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아온 그였다.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과 최초로 흑인 대법관이 된 변호사 서굿 마셜, 그리고 와칸다 왕국의 왕 티찰라. 채드윅 보스먼은 흑인 문화의 상징적인 인물들과 최초의 흑인 히어로 블랙팬서를 연기하며 흑인 팬들에게 자부심과 희망을 불어넣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대로 “자신의 힘을 통해 우리에게 우러러볼 영웅을 선사”한 배우, 투병 중에도 <블랙팬서> <어벤져스> 등에서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한‘진정한 전사’였다. 마블은 채드윅 보스먼의 헌정 영상에서 그가“우리의 영원한 왕”임을 밝혔고, DC 코믹스는 그가 “세계관을 초월한 영웅”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블랙팬서2>로 왕이 귀환하기를 기다렸던 팬들에게, 채드윅 보스먼은 너무나 빨리 작별을 고했다.
작가이자 배우였던 예술가
배우로서의 성과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채드윅 보스먼은 꾸준히 각본가, 연출가로서 경력을 다져왔다.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댄서인 형 케빈의 영향이 컸다. 리허설에서 자기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케빈을 보며, 채드윅 보스먼은 본인만의 예술을 추구하는 자신감과 태도를 배웠다고 한다.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던 채드윅 보스먼은 친구가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고2 때 쓴 첫 희곡의 제목은 <크로스 로즈>. 채드윅 보스먼은 이 희곡을 완성해 무대에 올렸고 이것이 연출가로서의 첫 도약이었다. 2008년 LA로 건너가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전까지, 채드윅 보스먼은 스스로를 각본가, 연출가로서의 욕심이 더 큰 “뉴욕의 예술가”였다고 지칭한다.
하워드대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한 채드윅은 배우들을 좀더 잘 이해할 요량으로 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는 영국 브리티시 아메리칸 드라마 아카데미 교환학생으로 선발된 후 장학금을 지원받아 영국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훗날 그 장학금의 출처가 배우 덴젤 워싱턴임을 안 채드윅 보스먼은, 덴젤 워싱턴이 미국영화연구소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때 “그가 아니었다면 <블랙팬서>는 있을 수 없었다”며 경의를 표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디지털 필름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전공한 채드윅 보스먼은, 강사로 일하면서도 계속 희곡을 썼다. 그중 <딥 애저>는 2006년 조셉 제퍼슨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며 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채드윅 보스먼은 2008년 <더 익스프레스>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뒤 <퍼슨스 언노운> <킬 홀>등에 주연으로 참여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42>의 브라이언 헬걸런드 감독이 연락하기 전까지, 그는 연기를 그만두고 오롯이 연출자의 길을 걷는 것을 고민 중이었다. 때문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와중에도 맨해튼에서 꾸준히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을 연출했다. 영화 <42>로 명성을 얻은 후 <어벤져스> 시리즈와 <블랙팬서>로 바쁜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희곡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익스페트리어트>라는 미완성 희곡의 공동 저자로, <마셜>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같은 작품의 제작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2018년, 그는 하워드 대학교 연설에서 “회사에서 당분간 작품을 맡기 어렵겠다고 말했을 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나는 작가나 감독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할리우드의 몽상을 좇는 대신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전한다. 요컨대 긴 무명 생활에서도 그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 극 작업으로 형성된 자신의 예술 세계 덕분이었다. 작가와 제작자를 겸해온 채드윅 보스먼은, 작품을 통해 어떻게 자기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명확히 아는 배우로 거듭났다.
흑인의 역사에 자긍심을 가지고 부당함에 맞서다
희생자, 건달 같은 전형적인 흑인 캐릭터. 채드윅 보스먼의 필모그래피에서 부재한 인물상이다. 막 단역을 맡기 시작한 시절부터 그는 이러한 흑인 캐릭터의 전형성을 지적해왔다. 때로 부당한 처사도 뒤따랐다. 2003년 불량한 10대 역을 맡았던 <올 마이 칠드런>에선 해당 역할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결국 작품에서 제외됐다. 그럼에도 채드윅 보스먼은 굴하지 않고 미국 역사 속 성공한 흑인들을 다양하게 조명하는 데 주력했다. 자기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남긴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과“차별할 때마다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변호사 서굿 마셜, 솔 음악의 대부인 제임스 브라운까지. 이들은 모두 인종차별에 굴하지 않고 ‘최초’, ‘최고’의 타이틀을 따낸 사람들이다. 욕설을 참고 들어야 하는 극중 상황들이 녹록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채드윅 보스먼은 이 작품이 관객에게 미칠 영향을 가늠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재키 로빈슨의 내적인 강인함을, 제임스 브라운의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영화산업 시스템에 도전하고, 뚜렷한 역사적 배경이나 희망이 없는 인물들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에겐 다른 길이 열렸다. <제임스 브라운>을 홍보하던 와중 오디션도 없이 전화 한통으로 <블랙팬서>에 캐스팅된 것이다. 흑인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도 관심이 많던 채드윅 보스먼에게 “내가 속한 문화와 내가 좋아하는 슈퍼히어로를 한 편의 영화에 담아낸” <블랙팬서>는 가히 최고의 프로젝트였다. 때문에 그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이 영화가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될지 고민했다. 그는 <블랙팬서>에 관한 인터뷰에서, 화려한 액션이나 CG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통문화와 최근의 흑인 문화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블랙팬서> 공개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에선 전통의상을 입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등장했고 극빈층의 아이들이 <블랙팬서>를 관람할 수 있도록 돕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흑인 관객에게 <블랙팬서>는 힘과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이를 토대로 보면 채드윅 보스먼의 최근작 <Da 5 블러드>가 흑인 역사를 은유하는 작품이며, 그가 마지막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업로드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 작품 내에서의 역할, 그리고 작품 밖의 사회적 활동까지. 채드윅 보스먼은 그의 삶을 통틀어 올곧게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해왔다. 흑인으로서 역사와 문화에 자긍심을 갖고 부당함과 편견에 맞서는 것. 그 하나의 목적이 이어져 현재의 배우 채드윅 보스먼을 만들었다.
채드윅 보스먼은 아주 어릴 때부터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팬이었고 그의 포스터를 자신의 방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그가 무하마드 알리를 바라보듯, 아이들은 이제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며 채드윅 보스먼을 자신의 영웅으로 여긴다. 그렇게, 채드윅 보스먼의 자리는 그 자신의 족적으로 인해 더욱 선명해진다. 죽음으로 그의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배우 마크 러팔로의 말대로, “당신의 위대함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채드윅 보스먼의 주요 필모그래피]
메이저리거부터 슈퍼히어로까지, 성공한 흑인의 얼굴이 되다
<42> 편견은 홈런으로 날린다
“세상에 두 가지를 알리면 우리가 승리하는 거야. 자네가 훌륭한 선수이자 위대한 야구 선수라는 것.” <42>는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의 브루클린 다저스 입성기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본래 재키 로빈슨은 인종차별을 좌시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자신을 공격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어떤 욕설과 차별에도 대응하지 않는다. 재키 로빈슨은 깜둥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상대편 감독을 무시하려 애쓰고, 뒤편에서 소리를 지르며 야구 배트를 부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한다. 이후 “새 배트가 필요하다”며 유유히 필드로 나가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 이 영화의 명장면.
<제임스 브라운> 불행과 행복 사이에서
솔 음악의 대부이자 천재 뮤지션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하기 전, 채드윅 보스먼은 제임스 브라운 유가족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영화가 제임스 브라운의 유년기부터 노년 시절까지의 명과 암을 전부 담고있기 때문이다. “그의 어두운 면도 전부 표현해달라”는 가족의 전언과 함께, 그는 제임스 브라운의 폭력적인 행동들도 가감 없이 묘사했다. 영화에 나오는 춤과 노래도 대부분 대역 없이 직접 했다. 채드윅 보스먼의 허스키한 보이스는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를 표현하기에 제격이었다.
<마셜> “차별할 때마다 이의를 제기해야 해요”
영화 <마셜>에서 변호사 서굿 마셜은 백인 여성 강간 혐의로 구금된 흑인 운전기사 조셉 스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해당 주 출신 변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는 재판정에서 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다. 법원을 빠져나가던 서굿 마셜에게 한 기자가 “흑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피고인이 지목한 변호사를 거부했는데 공정한 재판일 수 있나요?”라고 되물으며“헌법은 우리를 위해 작성되지 않았지만, 적용되게 할 것”이라고 공표한다. 이 순간, 채드윅 보스먼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난다.
<블랙팬서> “와칸다에선 죽음이 끝이 아니다”
비브라늄이라는 희귀 금속으로 성장과 부를 이룩한 와칸다 왕국. ‘블랙팬서’의 힘을 이어받은 왕 티찰라는 전왕들과 달리 다른 종족들과 화합을 꾀하는 사려 깊은 왕이다. 개봉 이후 화려한 액션과 CG 외에도 아프리카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영화에 잘 녹여냈다는 평을 받았고 과학자 슈리와 오코예 장군과 같은 여성 캐릭터의 활약도 돋보였다. 채드윅 보스먼은 이 영화의 문화적 영향력에 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고. 인물들이 외치는 ‘와칸다 포에버!’란 대사는 블랙팬서의 상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