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작가주의 인장과 장르적 경제성을 동시에 성취한 '하녀'
2020-09-21
글 :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하녀(이은심)는 발코니 문을 통해 동식(김진규)과 경희(엄앵란)를 훔쳐본다.

<하녀> 제작 김기영프로덕션 / 감독 김기영 / 상영시간 108분 / 제작연도 1960년

1960년 4월 혁명은 한국의 정치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에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61년 5월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 시민혁명의 의미가 순식간에 퇴색되기까지 약 1년간, 한국영화계는 자유로운 영화 창작에 대한 희망과 이러한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불안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이러한 시대적 공기가 이전의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1960년 초반 일간지 기사에 의하면, 영화인들은 자본이 아닌 그들이 직접 주체가 된 동인제 프로덕션을 결성하고 한국영화의 전환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1961년을 기점으로 훗날 한국영화사의 대표작으로 기록되는 작품들이 일거에 등장했다. 1960년 12월에 개봉한 <표류도>(감독 권영순, 1960)부터 <마부>(감독 강대진, 1961), <오발탄>(감독 유현목, 1961), <삼등과장>(감독 이봉래, 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감독 신상옥, 1961), <현해탄은 알고 있다>(감독 김기영, 1961) 등이 연이어 관객과 만났다. 이 영화들이 정치적 감각으로 그리고 영화적 감각으로 한국영화의 현대성을 획득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그 맨 앞자리에 놓아야 할 작품은 바로 1960년 11월에 공개된 김기영 감독의 <하녀>일 것이다.

한국영화가 시작된 해인 1919년에 태어난 김기영은 평양고보 시절 문학, 연극,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940년 졸업 후에는 일본 교토로 건너가 독학으로 연극과 영화를 공부하며 ‘문화방랑객’으로 살았다. 그의 창작 세계에 일본 문화의 감수성 혹은 일본 영화가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었을 가능성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한편 김기영이 해방 후 서울대 최초의 연극반을 이끌며 연극 연출을 시작했던 것은 그의 영화에서 추출되는 연극적 방법론의 기원을 짐작게 한다. 김기영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알린 것은 경북 김천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하녀>에서다. 이때 그의 프로덕션에는 촬영기사 김덕진, 조명기사 고해진, 영화음악가 한상기 등이 합류했다.

자막 ‘김기영푸로덕슌’의 의미

김기영 감독은 본인의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제작과 연출을 겸했으며, 촬영, 조명, 미술뿐만 아니라 편집까지 영화의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견고한 영화 세계를 유지하는 작가주의 감독이었지만, 대중성과 상업성을 철두철미하게 설계하는 제작자의 마인드까지 확보한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김기영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서 볼 수 있는 ‘김기영푸로덕슌’이라는 자막은 그의 예술가로서의 인장과 제작자로서의 야심이 모두 반영된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그의 영화들에서 ‘김기영프로덕션’이라는 제작 주체가 처음 확인되는 작품은 바로 <하녀>다. 김기영 감독의 아홉 번째 작품 <하녀>와 열 번째 작품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한국문예영화주식회사와 김기영프로덕션이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는데, 전자 역시 그의 회사였다. 이 시기 김기영은, 지금으로 치면 투자·배급사의 역할과 실제 제작을 진행하는 프로덕션의 역할을 모두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이 각본과 연출뿐만 아니라 직접 제작까지 맡았다는 사실은 그가 예산 대비 최고의 영화적 효과가 담긴 장면들을 뽑아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을 것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하녀>에서 그는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두개의 위치에 카메라를 놓았다. 먼저 음악실 전체 공간의 관객쪽(제4의 벽)과 부부의 집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이 프레임 중간에 위치하도록 잡는 1층의 관객쪽 공간이다. 사실 음악실의 경우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주름진 벽체 같은 장식적요소에도 불구하고 트랙인과 트랙아웃을 반복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단조로움을 극복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부의 이층집 내부 장면은 관객의 시선을 시종일관 잡아두면서도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다채로운 느낌을 주는 데 성공한다.

인물의 욕망을 이식한 카메라워크

영화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계단이 보이는 1층 공간의 미장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계단의 난간이 중앙을 가르는 프레임에서, 왼쪽 후경으로는 현관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는 계단이 자리잡고 있다. 관객 쪽 공간의 약간 오른쪽에 위치한 카메라는 끊임없이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이층집으로 이사해 행복을 만끽하려는 가족의 일상과 그들에게 침입해온 혹은 그들 스스로 불러들인 여성들로 인해 파국을 맞는 과정을 관찰한다. 계단을 향했다가 물러나는 것을 반복하는 트래킹숏은 이 영화가 활용하는 가장 핵심적인 카메라 움직임이다.

사실 카메라의 자리는 집 구조상 부인(주증녀)의 재봉틀이 돌아가는 거실 공간인데, 카메라 뒤로 공간이 더 있음을 드러내는 순간도 무척 흥미롭다. 아들 창순이 라이스 카레를 들고 안방으로 오는 장면에서 처음 보이는 카메라 뒤 공간은, 창순이 하녀(이은심)의 담배를 뺏어 거실로 가는 장면에서 그 구조가 완전히 노출된다. 물론 트랙인/아웃이 활용되는 것은 두 공간뿐만이 아니다. 피아노 방과 하녀 방 등 영화 속 공간에서 인물들의 동선과 결합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는 이 영화가 리얼리티를 구축하고 이를 관객에게 설득하는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파국의 순간 계단에 조준된 트랙인/아웃 움직임은 더욱 과감해지며 격앙된 인물들 사이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2층 발코니 세트 공간과 결합한 수평 트래킹숏도 김기영 특유의 스타일적 인장을 만들어낸다. 수평 트래킹이 처음 사용된 장면은 하녀가 2층의 자기 방에서 발코니쪽으로 나와 피아노 방에서 동식(김진규)이 경희(엄앵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장면을 엿볼 때다. 이때 카메라는 발코니 난간 밖으로 나온 완전한 외부에서 2층 공간 전체를 처음으로 노출시킨다. 2층 발코니 공간과 수평 트래킹이 결합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동식과 경희가 선영의 장례식에 다녀온 직후다. 혼자 피아노 방에서 피아노를 만지다 발코니쪽 벽으로 숨는 하녀, 그녀를 전경에 두고 동식과 경희가 피아노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카메라의 수평 이동으로 포착된다. 경희가 집을 나간 다음 하녀가 다시 피아노 방으로 돌아와 담배를 들고 자기 방으로 가자 그 뒤를 동식이 따라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앞서 좌에서 우로 수평 이동한 카메라는 이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며 동식이 하녀를 따라 처음 그녀 방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잡아낸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시작되고 중산층에 막 진입하려는 가정은 파탄을 맞는다.

결국 하녀와 동식은 동반 자살을 결심해 쥐약을 먹고, 그는 생의 마지막만은 부인과 함께 하겠다며 1층으로 내려간다. 하녀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계단에 머리를 부딪치며 내려오는 잔혹한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부감과 앙각숏이 가장 극적으로 사용된 순간일 것이다. 동식은 기어서 재봉틀 앞에 잠들어 있는 부인에게 다가간다. 카메라 역시 처음으로 바닥에 내려오고, 그의 시선으로 넋이 나간 부인의 얼굴이 보인다. 행복한 중산층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그녀는 계속 재봉틀을 돌릴 수밖에 없다. 고전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김기영만의 것으로 소화한 <하녀>는, 서구에서 시작된 영화 매체가 한국영화에서 드디어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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