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기화>에서 부자(父子)의 로드무비를 그렸던 문정윤 감독이 또 다른 길 위로 떠난다. 이번에는 길의 폭이 더욱 넓어져 삶과 죽음의 여정에 오른 스승과 제자가 주인공이다. 큰스님을 모시는 행자의 부름을 듣고 흩어져 지내던 네 승려가 산속 암자를 찾는다. 급격하게 변해버린 스승의 모습에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맏상좌인 혜진(김명곤)은 떠나보냈던 먼 기억들과 하나씩 마주친다.
감독 특유의 넉넉한 유머가 자리한 <구르는 수레바퀴>는 종교를 두고 진득한 농담을 건네는 와중에 수많은 불가의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인연과 삶의 길을 동시에 아우르는 어렵지 않은 설법 같은 이야기이다. 스승은 네 제자에게 공히 ‘혜’(慧)라는 이름을 붙였다. 깨달음(覺) 대신 지혜를 썼음은 답보다 도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뜻일까? 냉소가 도시의 신화가 된 시대에 산사를 감돌아 든 질문은 두텁기 그지없다. “너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이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멈추지 않고 귓가에 머문다.
문정윤은 투박하고 남성적인 터치를 지닌 감독이다. 즉 섬세하고 세련된 영화는 아니다. 연필을 들고 종이에 꾹꾹 눌러 글씨를 쓰듯이, 카메라를 동반하고 한국 산천의 사계절을 채워넣은 데서 그의 끈질긴 정성이 향을 흩뿌린다. 거기엔 아름다움을 넘어 진한 인간애가 묻어난다. 어쩔 수 없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에 빚진 게 많은 영화인데, 감독은 촬영을 마친 뒤에야 배용균 감독의 영화와 여러 공간을 나눠 썼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 또한 인연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