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재 검사 지금 살아 있어요?” 배우 이준혁을 만나자마자 묻고 싶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양측 전부 날을 세운 상황에서, 사건의 키를 쥔 서동재 검사의 행방이 몇회째 묘연하기 때문이다. 그가 미움받던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1을 상기해보면 ‘우리 동재’라며 모두가 서동재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이 순간이 무척이나 생경하게 다가온다. 시즌2에 들어서며 배우 이준혁은 더 능글맞고 민첩해진 서동재의 ‘뻔뻔함’에 집중했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후, 이곳저곳을 살피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서동재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정부지검 서동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배우 이준혁이 가장 공을 들인 시즌2 첫 등장 신의 첫 대사 이후, 그의 간절함과 뻔뻔함은 결국 뒤돌아서 있던 시청자까지 돌려세웠다. ‘우리 동재’에게 모두의 이목이 쏠린 지금, 배우 이준혁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 <비밀의 숲2> 본방 사수는 하고 있나? 모니터링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 맞다. 당장엔 내가 한 걸 잘 못 보고 한참 시간이 지나야 보곤 한다. 쑥스럽기도 하고. 시즌2도 슬쩍 슬쩍 보는 정도. 그래도 최근의 두화 정도 빼고는 다 봤다. 시즌2 첫화 시청률이 예상보다 잘 나와서 ‘어, 뭐지?’ 싶었다. (웃음) 좋은 의미로 부담이 되더라.
- 서동재 검사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 코로나 2.5단계라서 지금 동재 집에 있다. (웃음)
- 시즌2의 관건 중 하나는 서동재 검사의 변화 여부였다. 확실히 시즌1에 비해 동재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됐고 동재 스스로도 더 능글맞게 구는 느낌이 있었다. 배우로서도 조금 다르게 접근했을 것 같은데.
= 시즌1은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출발했고 중반까진 동재가 악역으로 활용된 면이 있어서 나도 분위기를 어둡게 가져갔다. 역할상 밋밋하게 가면 안되니까 날도 세웠고. 사실 나는 동재가 시즌1에서 완결된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시즌2에선 그간 잘 보이지 않았던 사적인 면들이 나왔으면 했는데 마침 대본도 그렇더라. 시즌2의 동재는 허세랄까, ‘내가 검사야!’ 하고 어깨에 힘주던 것들이 없어졌다. 그래서 시즌1 후반부의 밝은 면들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또 현재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무척 뻔뻔해졌는데, 그런 뻔뻔함을 잘 표현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웃음)
- 대사량도 엄청 늘었더라. 특히 우태하 부장검사와 처음 만난 신에선 8분가량을 쉼 없이 이어갔다. 1분에 123마디를 했다던데, 준비하기 쉽지 않았겠다.
=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뭐야, 영업사원이야?’ 하고 놀랐다. (웃음) 스스로를 상품이라 여기고 뭘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정확히 알더라. 평소처럼 대사를 읽었을 땐 20분 가까이 나와서 일단 속도를 올리는 데 집중했다. 사실 나는 단기 기억이 좋은 편이라 그 덕을 많이 봤고, (웃음) 기본적으로 시간을 많이 들였다. 촬영하며 가장 어려웠고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이다.
- 비하인드 영상을 보니 황시목(조승우)에게 “너 팥 좋아하지?”라고 건넨 대사가 애드리브더라. 평소에도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인가.
= 캐릭터에 따라 다른데 동재는 선을 좀 넘어도 괜찮은 캐릭터라서 다방면으로 시도를 해봤다. 그리고 내가 실제로 팥빵을 싫어한다.애드리브는 진심을 담아서 해야 하니까. (웃음) 알고 보니 소보로빵이랑 딸기우유는 조승우 배우가 따로 부탁을 한 거더라. 그걸 내가 집으니 당황한 거지. 심지어 다음 대사가 “빵인데 짜네요”였는데. (웃음) 그래도 소보로 겉부분만 뗴어 먹으며 표정도 찡그리고, 잘 받아주더라.
- 조승우 배우와 합이 잘 맞았나보다.
= 맞다. 내가 시선을 던지면 그 시선을 확실히 받아주는 배우다. 그래서 애드리브도 편하게 할 수 있었고. 공간을 잘 메워주는데 예를 들어 내가 20을 던지면 80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그런 점이 잘 느껴져서 같이 연기할 때 재밌고 무엇보다 편하다.
- 서동재 외에도 영화 <신과 함께>의 박 중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오영석 등 여러 차례 악역을 연기해왔다. 이런 악역들의 상황을 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연기하나. 동재의 경우는 “악역이 아니라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 만약 나도 동재의 악행만 단적으로 봤다면 ‘나쁜 놈이네’ 하고 끝났을 거다. 하지만 동재가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했고, 또 시스템상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보게 됐다. 동재는 학벌상의 이유로 사내에서 은근히 밀려난 인물이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성공하려 애쓰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물론 실제 옆에 있으면 얄미울 캐릭터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응원하게 되더라. 오영석 같은 경우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다든지 그런 극한의 악은 아니다. 현재의 시대 흐름에 반할 뿐 다른 시대에서는 또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나름의 매력을 지닌 인물이라 생각한다.
- 최근 스릴러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했고 그중에도 검사, 국회의원, 경찰 등 주로 냉철한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맡았다. 실제 본인과 겹치는 지점이 있다고 보나.
= 전혀 없다. (웃음) 정장을 자주 입는 직업을 갖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동재를 통해 경험해보게 됐다. 그러고 보면 실제 나와 비슷한 역할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 영화 <야구소녀>의 최진태는 그간 연기한 인물들과 결이 다르다. 프로 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때문에 영화 초반, 같은 꿈을 꾸는 수인(이주영)에게 포기를 권한다.
= 진태는 상황적으로 나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엄청난 대스타가 아니고 신인도 기성세대도 아닌, 아직은 계속 도전해도 괜찮은 중간 단계의 배우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결국 수인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도록 힘을 보태는 진태를 내가 잘 연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택하나.
= 심플하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 영화 소비력이 높은 편이라 기시감이 들면 바로 질린다. 항상 배우와 관객의 시선이 동시적으로 작용하는데, 관객의 입장이 더 크게 작용한다. 말하자면 내가 택할 수 있는 영화의 폭이 넓어졌으면 하는 거다. <야구소녀>를 택한 이유도 한동안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많았으니 좀더 따뜻한 작품을 보고 싶어서다. 패션에 비유하면 유행에 따라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싫다. 그게 전부라면, 나는 다른 걸 찾고 싶다.
- 지난해까지 영화를 2천편 봤다던데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있다면. <미드소마>를 두고 “참 따뜻한 이야기”라고 평한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극히 주관적인 해석인데 <미드소마>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 상대를 지워가는 과정을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드니까 잔인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담담히 표현하는 게 더 무섭지 않나. (웃음)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정말 많지만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면서 정말 마음 아팠고 그 순간 나라면 손을 잡아줄 수 있었을까 싶었다.
- 한때 감독의 길을 걷고 싶어 했다고. 어떻게 배우로 전향하게 됐나.
= 연출을 배우고 단편을 만들던 시기에 연기를 너무 모르니 디렉팅을 할 수 없더라. 그래서 아카데미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때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 일을 할 떈 정말 미치겠더라. 연기가 너무 좋은데 너무 모르니까. 알고 싶다는 오기로 몇년을 버텼다. 현재는 그런 시기는 지났고, 연기와 배우란 직업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됐다.
- 한 인터뷰에서 “나이가 성공보다 비싸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지금을 살겠다”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 가끔 조깅을 하다가 몸이 가벼울 때, 그럴 때 비싸다는 느낌이 든다. (웃음) 그때그때 다르지만 현재를 중요시하는 건 맞다. 과거를 잘 돌아보지 않고 기본적으로 현재에 충실해야 미래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이 소중하다. <씨네21>과 인터뷰를 하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씨네21>과 처음 하는 인터뷰는 아니지만 어릴 때 매번 사서 모아두던 잡지에 내가 나온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지금 드라마 한편 찍은 거다. (웃음)
- <씨네21>에 대한 추억이 많나.
= 나에게는 오랜 친구 같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니까 <씨네21> 기사들을 열심히 읽었고 별점도 여전히 챙겨 본다. 지금도 내가 몰래 팔로하던 친구가 자신의 집에 초대해준 느낌이 든다. (웃음) 오늘은 피자를 먹어야겠다. 나는 드라마 촬영이 끝났을 때라든지 행복하고 기분 좋은 날에 피자를 먹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웃음)
필모그래피
영화
2020 <야구소녀> 2019 <언니> 2018 <신과 함께-인과 연> 2017 <신과 함께-죄와 벌>
드라마
2020 <비밀의 숲2> 2020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2019 <모두의 거짓말> 2019 <60일, 지정생존자> 2018 <너도 인간이니?> 2018 <시를 잊은 그대에게> 2017 <한여름의 추억> 2017 <비밀의 숲> 2017 <맨몸의 소방관> 2015 <파랑새의 집> 2012 <적도의 남자> 2011 <수상한 삼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