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은 사인할 때 원래의 밝을 랑(朗) 대신 늑대 랑(狼)을 쓴다.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인 엑토플라즘을 볼 수 있고 퇴치할 수 있는 히어로 이름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필명 같은 본명을 가진 소설가 정세랑은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의 말’을 이렇게 시작한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주인공 안은영의 이름과 별명(아는 형)은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의 마케팅팀 대학생 인턴에게 빌렸다. 한문 선생 홍인표는 처음 이 이야기를 단편으로 썼을 때 자문해준 친한 선배 홍승표의 동생 이름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생 혜현은 바로 전 책의 표지를 그려준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으로, 정말 얼굴이 투명해 작중 인물의 별명처럼 젤리 피시(해파리) 같은 면이 있다. 등장인물과 이름 주인과의 매칭이 이렇게 몇번 더 이어진다. 정세랑이 살아온 세계가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판타지 소설로 화한 셈이다. 서울 시내 평범한 고등학교에 있는 기기괴괴한 존재들과 알고 보면 퇴마사인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야기로.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의 공개일인 9월 25일을 앞두고, 정세랑 작가와 인터뷰를 했다. 이경미 감독이 연출하고 정유미 배우가 주인공 안은영을, 남주혁 배우가 홍인표를 연기하는 이 작품의 대본 작업에 그도 참여했기 때문이다. “대본을 쓰기도 했지만, 세계관 설정과 캐릭터, 에피소드 취사선택을 하는 데 주로 참여했다. 감독님부터 의상팀까지 다른 전문가 분들이 ‘이건 뭐예요’ 물어보시면 대답하고, 어떤 해석에 대해서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대본으로 따지면 절반 약간 넘게 내가 쓴 듯하고, 감독님이 쓰셔서 완성된 셈이다. 내가 썼다고 너무 화제가 되는 것 같은데, 사실 8명 정도의 협업의 결과다. 기획 PD, 보조작가와 넷플릭스 관계자까지.”
*<보건교사 안은영> 원작자 정세랑 작가와 이다혜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 전문은 씨네21 추석합본호 1274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