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그럼에도 부산의 가을을 기다리며
2020-10-02
글 : 장영엽 (편집장)

지난 9월 18일, 전주국제영화제가 폐막했다. 무려 114일 만의 폐막 선언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세계 영화제 역사상 앞으로도 없을 가장 긴 영화제가 아니었나 싶다”라는 이준동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한국 관객은 봄에 시작해 가을에 끝나는 영화제를 올해 처음으로 경험하게 됐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5개월간 온라인과 서울, 전주의 다양한 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선보인 전주국제영화제의 사례는 오랜 기간에 걸쳐 관객의 일상 속으로 찾아가는 영화 축제였다는 점에서 영화제 운영의 역사에 의미심장한 선례로 남을듯하다. ‘공동체가 기념하는 특별한 날 또는 기간’이라는 페스티벌(festival)의 정의처럼, 그동안 전세계 각국의 영화제(film festival)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한정된 기간 동안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은 ‘한정된 기간’과 ‘특별한 영화적 체험’이라는 영화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일시적으로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코로나19 시대의 변화는 장기상영을 택한 전주국제영화제,토크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영화 상영은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병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사례처럼 영화제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결정과 운영의 묘를 이끌어내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것임이 분명함에도 지난 몇 개월간 다양한 영화제에 참석하며 국내 영화제 스탭들의 임기응변과 기지에 감탄한 적이 많다. 특히 방역에 대한 대비와 코로나19 시대에 최적화한 각종 행사 진행은 매뉴얼을 만들어 세계 영화제 관계자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고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시대의 국내 영화제 운영에 대한 리포트는 추후에 더 긴 지면을 할애해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영화 관계자들에게 단연 최근의 화두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운영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이다. 예정보다 2주 연기된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개·폐막식은 물론 무대 인사, 오픈 토크를 비롯한 일체의 야외 행사를 취소하고 오롯이 영화 상영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을 지난 9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올해 끝내 열리지 못한 칸국제영화제의 공식 선정작 56편 중 23편을 ‘칸2020’ 섹션에서 선보이는 등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라인업은 풍성해 보인다. 이번호 표지를 장식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를 비롯해 특집 기사에서 소개한 추천작 23편의 면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추석 연휴라는 거대한 변수가 영화제 개막일 이전에 놓여 있는 만큼 원활한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상영관을 영화의전당 5개관으로 한정하고, 각 영화의 상영횟수를 1회로 제한함으로써 치열한 예매 전쟁 또한 불가피해졌다. <씨네21> 또한 매년 추석 연휴를 전후로 부산국제영화제 프리뷰룸에서 상영작을 미리 관람하며 국내외 게스트와의 만남을 준비해왔던 만큼 어떤 취재도 기약할 수 없는 추석 명절 전후가 낯설기만 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올 가을 영화제의 순조로운 개최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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