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꽤 고민하겠지만, 결국은 <에이리언> 시리즈를 고를 것 같다. 아니, 고를 것이다. 나는 이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감독들의 각기 다른 개성이 묻어나는 4편까지의 이야기도 좋아하고, <프로메테우스> 이후 다시 시작된 ‘리들리 스콧’ 의 새 시리즈도 좋아한다. 조금 더 고백하자면, 나는 리들리 스콧이 이 세계관을 계속 만들고 있는 사실이 너무 신난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가 개봉했을 때 잔뜩 기대하며 극장에 들어갔고, 마음껏 열광했다. 비명을 질렀다. 나는 이 세계관이 계속되면 좋겠고, 그래서 지금도 혹시나 다음 편이 언제쯤 나올지 종종 찾아보며 기다리는 중이다. 그때는 부디, 마음 놓고 극장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한편 고르라고 한다면, 역시 <에이리언>을 고를 것이다. <에이리언>은 지금까지 몇번을 반복해서 봤을지 모를 정도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특히 나는 이 영화의 전반부, 에일리언과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심심할 때는 이 부분만 돌려서 보기도 한다. 승무원들이 잠든 사이 함선의 항로가 일방적으로 변경되고, 신호를 조사해야 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밖에 나간 승무원들이 에일리언의 알을 발견하는 바로 그 부분 말이다. 전개는 아주 느리고 고요하게 진행된다. 함선이 행성에 다가가는 과정, 우주선 문이 열리는 순간, 승무원들의 조심스런 발걸음, 신호음을 듣는 표정, 모두 꼼꼼하게 묘사된다.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이 없는건 아니지만 별로 자극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여유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건 놀랄 만한 장면이 아니야. 진짜는 아직 나오지 않았어. 기다려.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가다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승무원들이 버려진 외계 우주선을 목도하는 장면. 광활한 우주와 거대한 비행선. 화석이 된 외계 생명체. 공동묘지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터전. 그곳에 깃든 알 수 없는 생명체. 나는 이 부분에서 매번 압도된다. 우아하고, 아름답고, 공포스럽다. 등장인물 중 한명인 램버트가 말하듯 “여기서 벗어나” 고 싶지만, 다른 인물들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무덤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걸 멈출 수 없다. 그리고 그들처럼 나는 무엇도 알아내지 못한다.
우주선은 무엇이며, 케인이 발견한 외계 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이며, 화석이 된 외계인은 어느 행성의 누구인가. 무엇도 알 수 없다. 영화는 어느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비밀스러운 분위기만 계속 이어질 뿐이다.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고, 그만큼 궁금하다. 그렇게 충분히 뜸을 들인 나지막한 전개의 끝에서 에일리언이 깨어난다. 사람들을 공격한다.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그 이유 역시 알 수 없다. 오직 인간의 무력한 비명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봤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약간 당황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때 나는 내가 매료될 그 전반부를 보는 내내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시고니 위버’ 가 주연이라고 해서 비디오를 빌려왔는데(그렇다. 나는 이 영화를 비디오로 봤다. 사실 <에이리언> 시리즈를 모두 비디오로 봤다. 이 시리즈에 대한 나의 내밀한 애착은 어쩌면 그 경험에 기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대체 언제 뭘 어떻게 하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나는 기대했던 시고니 위버의 ‘액션’ 을 구경하는 대신, 영화가 비추는 승무원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유심히 봐야 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하고 있었지만 신뢰하지는 않는 듯했다. 각기 생각이 다르고 그래서 원하는 것도 다르고, 입장과 지위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낯선 우주를 배회하고 있었기에 무척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긴장해 있었다. 그 갈등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느낌 때문에 나는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좋은 서사가 그렇듯, 에일리언의 존재에 가까워 질수록, 그 실체가 드러날수록 그들의 갈등 역시 수면 위로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사이에 경고가 없었나? 징조가 없었나? 아니, 다 있었다. 그 과정이 어린 마음에도 매우 리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은 우주였지만 그 내용은 결코 이질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그 말없는 침묵과 외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사이 갑작스레 벌어지는 어떤 일들. 매우 사소하게 시작했다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사건, 사고….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상황을 통제하려 하고, 누군가는 회피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이익만을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그저 남들이 하는 말에 ‘그래’ 라는 대답만 한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에일리언이 인간의 몸을 찢고 나온다.
충격적이었다.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서사 구조와 디테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최초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 굳이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풍부하게 엮을 수 있다는 걸 배웠던 것 같다. 그걸 당장 어딘가에 적용하거나, 뭔가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럴 능력도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걸 배웠다는 것 자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 깨달음은 이후 내가 글을 쓰는 데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가 가지는 균형과 풍부함에 대해서,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서 계속 의식하게 되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에이리언>을 볼 때마다 그걸 배운다. 여전히 그 광고 문구를 생각한다.
“우주에서는 아무도 당신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 비명이 결코 ‘당신만의 것’ 이라고 느껴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나는 우주선의 함장도, 과학 장교도, 엔지니어도 아니었고, 심지어 인조인간도 아니었다. 그런 경험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 비명을 이해했고, 더불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를 또 봤을 리가 없겠지.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시고니 위버’ 주연이라는 홍보에 실망할 일은 없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녀가 연기하는 리플리는 아주 정확히, 뭔가를 확실히 한다. 나는 <에이리언>의 그 장면들 역시 매우 사랑한다. 그녀가 고양이를 끌어안는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에이리언> 시리즈를 꾸준히 찾아본 이유는 리플리 때문이기도 했다. 캐릭터들을 향한 영화의 균등한 시선이 무너지고, 에일리언과 리플리만 남았을 때의 그 쾌감은, 그 어디서도 겪지 못했던 역시 충격적인 경험이었으니까. 정말이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