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보건교사 안은영'이 남긴 질문들
2020-10-09
글 : 장영엽 (편집장)

“이 시리즈를 방송국에 가져갔다면 ‘진심이냐?’라는 눈빛을 받았을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제작한 신연주 프로듀서의 말이다. 이 작품을 시청한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얘기다. 비비탄총과 무지갯빛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사악한 기운과 싸우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학생의 겨드랑이 털을 (잠자리 모양의 매듭으로) 묶을 준비가 되어 있는 보건교사 캐릭터는 대중매체가 수용할 수 있는 서사의 범위 저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 추석 연휴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의 사례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로 이어지는 이경미 감독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본 관객으로서 이 작품을 둘러싼 국내외의 열띤 반응이 흥미로웠다. 개봉 2주차, 매체 인터뷰도 본격적으로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IPTV로 직행해야 했던 <비밀은 없다>의 사례와 같이 그동안 이경미 감독의 영화는 대중과 긴 호흡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부여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이경미감독의 뚜렷한 개성과 스타일을 새롭게 발견한 관객층이 생겨났다는 것, 이들이 창작자에 관한 호기심으로 아쉽게 잊혀진 전작들을 관람 목록에 추가하고 있다는 점은 자신의 인장을 고수하면서도 보다 폭넓은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는 창작자들에게 긍정적인 선례가 되어줄 것 같다.

한편 <보건교사 안은영>은 명절 특수가 사라진 올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만날 수 있었던 국내 신작 영상 콘텐츠 중 가장 영화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주성림 촬영감독, 홍주희 미술감독, 장영규 음악감독 등 이경미 감독과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춘 베테랑 영화 스탭들이 참여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인 드라마의 문법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복합적인 레이어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한데 여기에 대해서는 송경원 기자가 이번호 특집 기사에서 ‘이상한 것, 이경미스러운 것, 영화적인 것’이라는 글을 통해 잘 정리해놓았다. 음험하고 칙칙한 현실의 풍경을 극중 대사처럼 “달리는 모험 만화”로 변모시킨 프로덕션의 비밀은 임수연, 김성훈, 김소미 기자가 취재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한 텍스트가 고팠던 분들이라면 총천연색 젤리의 컨셉부터 주요 촬영지, 중독성 강한 사운드트랙, 원작과 차별화되는 설정인 일광소독의 탄생기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표지를 장식한 ‘목련고 4인방’ 박혜은, 박세진, 송희준, 심달기는 앞으로 한국영화에서 더 자주 보고 싶은 매력의 신진 배우들이다. 네 배우 모두 <보건교사 안은영> 공개 이후 가진 첫 매체 인터뷰라고 하니(박혜은 배우의 경우 생애 최초 인터뷰라고 한다) 이들의 사연에도 귀 기울여주시길 바란다. 우리의 오감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K-콘텐츠를 앞으로 더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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