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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5월의 고해' 김태영 감독 - 32년 만의 해후, 믿을 수 없다
2020-10-22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1989년 상영 금지 조치가 내려진 비운의 ‘5·18 영화’는 김태영 감독의 마음속에 오랜 빚으로 남았다. 빼앗긴 필름을 가슴에 품은 채, 그는 역사와 판타지를 결합한 블록버스터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제작하고, <세계영화기행> <백 투더 북스>와 같은 굵직한 방송 다큐멘터리로 시상대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뇌병변과 생활고를 버티며 지속해온 자신의 영화 인생을 몽상적으로 비춘 다큐멘터리 <딜쿠샤>(2015)도 남달랐다. 그리고 그 끝에, <황무지 5월의 고해>가 10월 28일 개봉한다. 단편영화 <칸트씨의 발표회>(1987)와 <황무지>를 엮고, 올해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은 감독 자신과 조선묵 배우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푸티지까지 더한 새로운 버전이다. 첫 장편영화 제작 후 32년 만에, 김태영 감독의 원년은 이제 다시 시작되려 한다.

-공식적으로는 1989년 상영 불가 처분을 받았던 <황무지>가 31년 만에 다시 호출받은 셈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전화를 받고 뛸 듯이 기뻤는데 겉으로는 짐짓 웃으면서 그랬다. “정부에서 다 압수해가서 내게는 필름이 없다”고. 결국 방송용 카피를 디지털 복원해 상영하기로 하고,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와 짝을 지어달라고 조건을 걸었다. <황무지>가 진압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원의 이야기, 그러니까 가해자의 시점이라면 그 짝인 <칸트씨의 발표회>는 시민군이었던 주인공이 행방불명자가 되어가는 피해자 시점의 이야기다. 지난 5월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도 상영했는데, 이 두 영화로 소수지만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1989년 5월 광주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필름이 빛도 못 보고 사라졌다.

=1989년 5월 5일 광주 소극장 드라마스튜디오에 영화사 우진필름 직원을 비롯해 용역 직원 등이 들이닥쳐서 필름이 녹으라고 아세톤을 뿌려댔다. 우진필름은 공동 제작사였는데 영화의 시나리오를 정확히 읽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를 했다가 정부의 압박이 있자 어떻게든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며칠 뒤 서울 혜화동 예술공간 금강에서 상영했는데 이번엔 문화공보부 직원들과 경찰, 형사, 구청 직원까지 7~8명이 나타나 필름을 압수해갔다. 복사한 테이프로 상영을 했는데 비디오 상영은 불법이라는 명목이었다.

-기지촌에서 미군들의 폭력을 목도하며 광주 진압 당시의 자신을 성찰하는 주인공 김의기(조선묵)가 <황무지>의 주인공이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세요”라고 말하는 성당 신부와의 대화가 극의 전환점이 되어 그는 결국 망월동 묘지에서 분신자살한다.

=벌써 40주년, 당시 공수특전단으로 투입된 사람이 3천명 정도다. 어쩔 수 없는 명령이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지났으면 한 사람이라도 죄책감이나 괴로움, 사과의 뜻을 밝힐 수도 있을 텐데 양심 고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히려 명령을 내린 장교라든지, 주변부 인물들은 사후에 고백하거나 재조명받기도 했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라도 반드시 나와주어야 한다고, 미완의 과제를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감독의 제작사 인디컴에서 <광화문>(가제)이라는 신작을 준비 중이다. 이번엔 ‘촛불과 태극기 속의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내걸었다.

=2018년 촛불 시위를 거치면서 기획했다. 안성기 배우가 태극기 부대의 장인 아버지를 연기하고, 촛불 세대인 아들이 등장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내년 8월쯤 크랭크인해서 2022년 개봉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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