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담보' 제작한 길영민 JK필름 대표, "전통적인 극장 산업은 변화를 피할 수 없다"
2020-10-23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구관이 명관이다. 코로나19도 ‘JK표 신파 최루탄’을 막을 수 없었다. JK필름이 제작한 영화 <담보>(감독 강대규, 배급 CJ엔터테인먼트)가 9월 29일 개봉해 추석 연휴 닷새 동안 75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했고, 10월 13일 오후 현재 126만여명을 불러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극장가가 한껏 움츠러든 상황에서 그 어렵다던 손익분기점 돌파를 코앞에 둔, 흔치 않은 상업영화다.

이 영화를 제작한 길영민 JK필름 대표도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개봉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운에 맡기는 심정”이었다니,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다. 윤제균 감독과 함께 오랫동안 JK필름을 이끌어오며 <해운대>(2009), <하모니>(2009), <퀵>(2011), <국제시장>(2014), <히말라야>(2015) 등 많은 흥행작을 제작해온 그에겐 “합리적이고 부지런한 제작자”라는 평가가 충무로 안팎에서 자자하다. 뉴노멀 시대, JK필름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오랜만에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담보>가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말, 12월 초 개봉할 계획이었다가 코로나19로 이제야 개봉했으니까. 정상적으로 개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지금은 볼 영화가 없어서 관객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신파라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받았다는 평들이 많더라. 코로나19 상황에서 장르영화들이 많았지만 <담보>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저예산 상업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족영화라는 점도 추석 시장에서 주효했던 것 같다.

-<담보>는 공동 제작한 손주연 레드로버 대표와의 인연 때문에 출발한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손주연 대표가 영화홍보사 이손기획을 운영하던 시절 윤 감독의 데뷔작인 <두사부일체>(2001)를 홍보했었다. 윤 감독이 영화감독이 되기 전 LG애드에서 일할 때 상사의 여동생이기도 한 특별한 인연이다. 윤 감독이 손주연 대표를 돕고 싶어 수차례 공동 제작을 시도하다가, 손 대표가 직접 써서 가지고 온 아이템이 <담보>였다.

-그 아이템의 어떤 점에 끌렸나.

=친부모가 아닌 남자 둘이 아이와 교감하며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이 인간적이었고, 리얼리티가 있었으며 짠했다. 강대규 감독의 전작인 <하모니>도 그런 감동을 가진 영화이지 않았나. 관객에게 따뜻한 감동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신파라 직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던데. (웃음)

=반대가 많았다. 시대물인데 엣지 있는 레트로도, 아주 복고도 아니어서 좀 애매해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가진 감정이 좋아서 가족 관객이나 40, 50대 중장년층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영화와 설정이 다른 점이 있었다고 들었다. 가령 승이(박소이)가 중국으로 가는 설정이었다고.

=시나리오를 모니터링하면서 아이가 납치되는 과정 같은 주요 사건이 개연성이 있는지 유심히 따졌다. 그렇다고 설정이 많이 바뀐 건 아니고 이야기의 큰 줄기는 그대로다.

-윤제균 감독이 직접 각색에 참여했는데 어떤 부분을 매만진 건가.

=캐스팅된 배우들을 고려하면서 캐릭터의 세세한 설정들을 수정했다. 코미디나 신파가 들어간 장면도 매만졌다. 강대규 감독이 디테일을 많이 설정했는데 그걸 윤 감독이 수정해 넘기면, 강 감독이 다시 연출하는 데 적합하게 손보는 식으로 각색 작업이 진행됐다.

-<담보>의 흥행은 관객, 특히 가족 관객이 언제라도 극장으로 움직일 준비가 됐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대작들이 나오면 관객이 움직일 것 같은데 지금은 극장을 찾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라…. 수익의 상당수가 극장 매출에 의존하는 구조인 까닭에 제작비가 100억원이 넘는 영화들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까봐 개봉을 우려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공조>(2016)의 781만여명, <그것만이 내 세상>(2017)의 342만여명, <담보> 등 최근 JK필름이 제작한 영화의 대부분이 흥행하거나 손해를 보지 않았다. 웬만해선 손해를 보지 않고 꾸준한 성적을 올린 점이 지난 2017년 CJ엔터테인먼트가 JK필름을 인수 합병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CJ엔터테인먼트와 손잡은 이유가 무엇인가. 여느 제작사처럼 거대 자본을 투자받아 회사의 몸집을 불리거나 상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거대 자본을 투자받아 회사 가치를 높이거나 인수 합병을 한 사례가 과거 여러 차례 있지 않았나. 그들 나름대로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윤 감독이나 나는 그런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리 같은 제작사는 제작한 영화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게 중요한데 영화산업 특성상 흥행 성적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고정비를 최대한 줄이고, 회사를 작은 규모로 운영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을 작게 운영하면 글로벌 시장 같은 다른 역량을 키우기가 제한적이다. 운좋게 하는 영화마다 잘돼서 어느 순간 자본을 투자받아 회사를 키운 뒤 기획팀을 따로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여의치가 않았다. 투자·배급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내부적으로 하던 차에 스튜디오드래곤이 CJ에 인수 합병되는 시점에 ‘영화쪽도 그렇게 가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CJ 내부에서 나왔고, 그 제안이 우리에게 온 거다.

-글로벌 프로젝트 진행은 CJ 같은 크고 체계적인 조직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윤 감독이 미국쪽과 함께 <템플스테이>라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고, 한국과 중국의 합작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해외 프로젝트를 하려면 해외쪽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윤 감독이나 나나 둘이서는 죽었다 깨어도 못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CJ는 그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버틸 수 있는 안정적인 조직이 절실했고, CJ 같은 대기업이 파트너면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CJ엔터테인먼트의 안정적인 배급력 또한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끼쳤나.

=우리가 만드는 영화를 CJ가 무조건 잘 배급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수 합병을 하더라도, 그들의 지배력이 51%를 넘어 우리의 재무제표를 공개하더라도 매 작품 서로 설득하고, 설득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같은 식구라도 서로에게 너무 기대면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안된다. 다만, 기획개발비를 포함해 기획에 필요한 지원은 받는다.

-그럼에도 한국에만 있는 6:4 수익 배분(극장 수익이 나면 극장과 배급사가 5:5로 나눈 뒤, 배급사와 제작사가 6:4로 배분한다.-편집자)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물론 수익이 났을 경우 들어오는 돈은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그보다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했다. 영화를 제작하다보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런 순간을 맞았을 때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몰빵’하게 되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균형감을 갖춘 기획을 할 수 있는가가 오래 갈 수 있는 관건이라고 보았다.

-수익 지분을 포기하고 프로덕션 비용만으로 제작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닌데. (웃음)

=6:4 수익구조는 너무 뻔하지 않나. 많은 제작사들이 그 4를 보고 로또를 기대하는데…. 수익을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더 큰 힘이 생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을 지켜보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전통적인 극장 산업은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윤 감독과 얘기를 나누는 게 앞으로 극장에서 볼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 같다는 거다. 스타 감독이 연출하고 톱 배우들이 출연하며 제작비가 200억~300억원 규모의 영화들만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만큼 타깃 관객 또한 세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극장이 위기에 처했고, 당장은 OTT 플랫폼이 강세지만 변화가 안정돼 힘의 균형이 바뀌면 달라진 환경 변화에 맞게 콘텐츠의 성격 또한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또한 달라진 플랫폼 환경에 맞게 OTT용 시리즈를 제작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자면, 윤제균 감독과는 중학교 동창이고, 대학 시절 함께 자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그와 함께 영화를 제작하게 됐나.

=윤 감독이 <낭만자객>(2003)을 찍고 난 뒤 회사를 운영해달라고 제안해왔다. 그때 JK필름은 윤제균 감독 중심의 1인 회사였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잃을게 별로 없는 데다가 친구와 함께 일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큰 고민 없이 JK필름에 합류했다.

-창작자인 윤 감독이 결정을 내릴 때마다 옆에서 균형을 잡고, 외부와 의견을 잘 조율하는 제작자라는 평가가 충무로 안에서 많다. 윤제균 감독을 잘 컨트롤하는 비결이 뭔가.

=윤 감독은 나와 성향이 다른데 잘 맞더라. 오래된 친구 사이라 서로 신뢰하고 편하게 의논하고 판단하며 결정한다.

-윤제균 감독이 “영화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물어봐달라”고 했다. (웃음)

=흥행이 되면 좋았지만 감독이나 배우처럼 스포트 라이트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서 늘 무던했다. 힘든 적은 많았는데 구체적으로는 글쎄…. (웃음)

-일식 요리를 처음 배웠을 때가 아닌가. (웃음)

=<해운대>가 흥행한 뒤 공사가 다망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다. 그때쯤 회사 근처에 이자카야 요리학원(나카무라 아카데미)이 있었는데, 통유리를 통해 사람들이 요리를 열심히 하는 광경을 보고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요리에 관심도 많아 덜컥 등록했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요리 학교가 서울에 분점을 차린 학교였는데 일주일에 두번 나가서 요리를 배웠다. 소질이 있었던 것 같고, 얼마 전에도 자연산 광어를 잡아와 비늘 벗기고, 내장 딴 뒤 숙성해서 스시 초밥과 사시미를 만들어서 사람들 불러다가 같이 먹었다.

-테니스와 복싱도 열심히 했다고.

=테니스와 복싱은 각각 4년, 2년 동안 했다. 누가 복싱이 재미있다고 해서 집 앞에 있는 복싱 체육관에 들러서 배웠다. 지금은 무릎이 아파서….

-배움에 대한 욕구가 커서 중앙대 대학원에서 제작을 전공하고, 졸업작품을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업 제작자가 왜 학교로 갔나.

=많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영화 제작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렁설렁 다니다가 학위만 따면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행동이라 2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열심히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 마치면 동기들과 술도 마시고, 영화도 함께 찍었다.

-그때 연출했던 단편 <첫 눈 내리는 날>(출연 정성화, 김인권)은 2016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국제시장>을 함께한 이상직 프로듀서에게 제작을 진행해달라고 부탁했고, 정성화, 김인권 등 친한 배우들에게 출연을 요청해 2회차 촬영했다. 영화를 직접 연출하면서 감독이 현장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많이 알게 됐다.

-윤제균 감독의 신작 <영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후반작업은 다 끝났고,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연말 개봉을 생각하고 있지만 현재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너무 많아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 같다. 그 외에도 이석훈 감독과 신작도 준비하고, 윤 감독의 다음 영화도 기획하고, <영웅> 조감독의 입봉작도 준비하고 있다. 또, 신인감독의 저예산 장르영화도 있다.

-앞으로 내놓을 작품들이 많은데 요즘은 행복한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영웅>은 후반작업에 더 공을 들일 수 있었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담보> 또한 손익분기점을 코앞에 두고 있어 아직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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