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life]
8K로 찍고 8K로 보는 삼성 단편영화 '언택트'의 김지운 감독 인터뷰
2020-10-26
글 : 김소미
비대면 시대의 사랑, 8K로 만나다

8K로 찍고 8K로 보는 초고화질의 연인이 <언택트>에서 이별하고 또 재회한다. 삼성전자 8K 영화로 기획된 <언택트>는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고은, 김주헌이 주연한 팬데믹 시대의 사랑 이야기다. 유학 후 귀국한 성현(김주헌)이 자가격리 중에 헤어진 여자친구 수진(김고은)의 브이로그를 보게 되면서 두 사람의 추억이 소환된다. “유례없는 비대면 시대를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일하고 사랑하고 소통하고 있는지 다뤘다. 특히 IT기반 디바이스들에 대해 낙관하면서, 만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관점을 제안해보고 싶었다.”(김지운 감독)

이처럼 새로운 소통법을 향한 긍정적 소망이 그대로 녹아든 <언택트>에서 배우 김고은은 삼겹살 먹방, 요가 체험, 캠핑 중계에 열심인 밀레니얼 세대의 브이로거로 분해 특유의 말갛고 털털한 매력을 뽐낸다. 안타깝게 헤어졌던 상대를 조용히 지켜보는 배우 김주헌의 중후한 매력도 새롭게 각인된다. 지난 10월 16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연남동, 성수동 일대에서 오프라인 상영 행사를 통해 공개되었던 <언택트>는 삼성전자 유튜브 채널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만날수 있다. 방역이 일상화된 뉴노멀 사회는 감정까지 거리두게 만들 수 있을까. 김지운 감독의 <언택트>에 그 해답이 담겨 있다.

-크레딧까지 포함해 러닝타임 50분으로, 일반적인 단편영화보다 길게 제작됐다.

=인물들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다 보니 이야기가 좀 길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택트 시대에 디지털 기술과 디바이스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탐색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여서 감정의 흐름을 세심하게 다뤄야 했고, 그래서 이 정도의 분량이 꼭 필요했다.

-필름 촬영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서정성이 있다면 8K 촬영과 화면이 주는 고유한 생동감과 선명함도 따로 있는 것 같다.

=필름은 마치 바이닐로 듣는 음악 소리처럼 지직거리는 특유의 감성이 한겹 씌워진 느낌이라면, 8K로 촬영한 디지털 영상은 고성능 오디오처럼 거의 현실 그대로를 깨끗하게 재현한다.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업은 극중 회상 장면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화면 안에 빛을 넣은 플레어프레싱 기법을 도입해 필름 감성의 파스텔 톤의 빈티지한 느낌과 8K 디지털 영상의 생생함을 교차시키며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만들 수 있었다.

-특수촬영이 필요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 대부분을 갤럭시 S20, 노트20으로 촬영했다. 카메라 세팅이 빠르고 간소화되면서 현장 분위기도 기존의 영화 현장과 많이 달라졌으리라 예상되는데.

=장편 극영화 현장은 엄밀히 말하면 카메라의 컨디션에 집중되어 있다. 현장의 모든 권력이 카메라에 있다고 느낀 적도 있다. 이번엔 카메라가 작아 기동성도 빠르고 조작도 용이하다 보니 극영화 현장에서 카메라가 주는 권위나 위엄에서 한결 자유롭고 가벼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모니터쪽으로 배우가 오지 않아도 즉석에서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모든 프로세스가 간결해 상대적으로 시간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기 넘치는 김고은과 중후한 김주헌, 두 배우의 본연의 매력을 잘 파악한 캐릭터 빌딩이 돋보였다.

=우선 김고은 배우는 정말 스마트하다. 이해력이 뛰어나고 어떤 상황이든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은 하는 타입이라 소통이 시원시원했다. 들어보면 모두 정확한 말들이어서 똑똑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연기의 팔할은 호흡을 잘 다루는 것인데, 엄청난 집중력을 갖고 한순간도 표정이나 감정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자신의 연기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브이로그는 개인의 개성을 잘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수진의 캐릭터를 거의 배우에게 맡기다시피 했다. 김주헌 배우는 기본기가 탄탄해 상대배우와의 호흡 없이도 안정적으로 완주해냈다. 아마 평소에 바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실제 성격도 건실하고 예의 바른 데다 주변 사람들의 컨디션도 세심하게 잘 파악한다. 그런 세심함과 진중한 배려가 연기에 다 묻어나오더라.

-피사체가 되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8K 작업이 처음에는 언뜻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존 최고의 화질로 배우의 연기를 지켜본다는 것, 특히 클로즈업 장면 촬영에서 새롭게 느낀 점이 있을까.

=흔히들 ‘카메라가 못 담아낼 정도로 실물이 좋다’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엔 다소간의 체념이 담겨 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현재 기술로는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어느 정도는 포기하겠다는 체념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촬영본을 8K 화질로 다시 보면서 이 관용적인 표현이 머릿속에서 깨지는 것을 느꼈다. 포기할 것 하나 없이 내가 상상한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던 그대로를 카메라가 고스란히 담아내고, 또 TV가 다시 그대로 보여주는 경험은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미세한 표정 연기라든지, 인물의 감정 상태와 어우러지도록 연출한 하늘의 색감, 노을과 구름의 질감 같은 것들이 온전하게 살아나는 것을 보고 한동안 감탄한 기억이 있다.

-선명한 8K 화면에서 더욱 장점이 발휘된 장면이 있다면.

=극중 성현과 수진이 QLED 8K TV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장면이 있다. 성현이 TV로 수진의 브이로그를 시청하는 상황인데,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둘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함께 노래하고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TV라는 디바이스를 매개로 진솔하게 교감하는 모습을 생생한 8K 화질로 전달하고 싶었다.

-<언택트>는 일정 기간 삼성전자 유튜브 채널에서 상영되었다.

=사실 관객과 감독의 만남은 비대면 시대 이전에도 극장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이뤄졌다. 관객과의 대화 행사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관객은 각자 영화를 본 뒤 온라인으로 생각을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처럼 영화를 유튜브 등의 OTT 플랫폼으로 공개하는 것은, 그래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객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댓글을 통해 함께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온라인에 마련된 하나의 거대한 극장 안에 관객과 감독이 함께 앉아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인 셈이다. 온라인과 더불어 오프라인에서도 작은 극장 컨셉으로 마련된 ‘8K 시네마’라는 공간에서는 QLED 8K TV로 영화를 상영했다. 8K 영화인 만큼 8K 화질을 구현하는 TV로 보면 내가 원래 의도했던 연출의 느낌을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는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는 오프라인은 물론 OTT 플랫폼을 통해서도 영화를 공개하는 방식이 점점 일반화될 텐데, 창작자로서 이런 변화에 눈과 귀를 크게 열고 설레는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

사진제공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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