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들이 만든 곡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괴물>의 이병우, <태극기 휘날리며>의 이동준, <올드보이>의 이지수, <1987>의 김태성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감독 네명이 제2회 대한민국 영화음악 페스티벌(주최 <씨네21>,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예술단,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12월 4일 오후 7시30분, 12월 9일 오후 7시30분 두 차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예술단과 함께 주옥같은 영화음악을 선보인다. 함께 작업한 영화감독도 무대에 올라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줄 예정이다. 영상에 정서를 불어넣는 영화음악으로만 채운 무대는 어디서도 만나기 쉽지 않다. 공연을 한달여 앞둔 지난 10월 19일, 음악감독 네명을 만났다.
-네분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나.
이동준 처음이다.
김태성 이병우 음악감독님이 작업했던 <관상>(2013)이 개봉할 때 감독님이 교수로 재직 중이신 성신여대에 놀러 가서 마지막으로 뵌 것 같다. 다른 감독님들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뵙기도 했고.
이동준 따로 만난 적은 많았지.
-영화음악을 무대에 올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어떻게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됐나.
이병우 거창한 이유는 없고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을 마치고 잠시 귀국했다가 임종재 감독의 <그들만의 세상>(1996)과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1996)를 통해 우연히 영화음악에 발을 들이게 된 뒤로 지금까지 매편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보니 함께 모인 세명의 선배가 되었다. 동료 영화음악감독과 함께 모이는 게 쉽지 않은데 이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이동준 영화음악은 영화를 보면서 듣는 매체라 영화음악을 따로 듣는 건 쉽지 않다. 생각보다 대중이 많이 모르는 것도 그래서다. 그게 아쉽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번 라이브 무대를 통해 영화음악이 주는 감동을 관객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음악의 매력을 좀더 알리고 싶다.
김태성 다른 영화음악감독님들과 함께 서는 무대고, 또 그 무대가 예술의전당이라 가슴이 벅차다. 한편으로는 공연 경험이 많지 않아 부담스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참여하기로 했다.
이지수 쉽게 모일 수 있는 구성원이 아닌 데다, 평소 좋아하는 영화음악을 만드셨던 감독님들이라 묻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웃음)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고,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무대라 기대가 크다.
-이번 무대에 어떤 영화음악을 선보일 계획인가.
이병우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연애의 목적> <괴물> <국제시장> 등 그간 작업한 영화의 주제곡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오케스트라, 합창단과 함께할 수 있는 게 많아 기대가 크다. 기타를 치는 사람으로서 기타 연주를 많이 들려줄 것 같다. 기타와 오케스트라가 어떤 방식으로 협연할지는 계속 상의해야 한다. 사람마다 달라 곡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 거고, 연주곡을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주지 않을까 싶다.
이동준 최근 중국영화에서 음악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 작업들을 포함해 국내에서 선보인 적 없는 음악들을 이번 기회에 많이 들려줄 생각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한국영화 음악들도 선보일 계획이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커서 편곡을 거치는 곡도 있고, 원곡 그대로 가는 곡도 있을 것 같다.
김태성 <최종병기 활> <명량> <검은 사제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1987> <강철비> <사바하> <극한직업>, 아직 공개되지 않은 <승리호>의 테마곡을 선보이고, <크로싱> <가루지기> <도리화가> <백만장자의 첫사랑> 같은 흥행하지 못했거나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영화의 주제곡 메들리를 들려줄 계획이다.
이지수 <올드보이> <실미도> <마당을 나온 암탉> <건축학개론> 등을 들려줄 생각이다.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할 만한 곡들을 골랐다. 원곡 길이 그대로 연주하기엔 짧아서 곡 당 최소한 3, 4분 길이로 재구성해 긴 테마곡을 들려줄 것 같다.
-다른 음악감독이 작업한 곡 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지수 이병우 음악감독님이 작업한 <장화, 홍련>은 이야기 배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곡들이 매력적이다. 이동준 감독님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울림이 커서 곡의 도입부만 들어도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그때 다른 영화에서 따뜻한 테마곡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 음악이 생각보다 되게 어렵더라. 김태성 감독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훈련소에서 영화 <크로싱>을 보면서였는데, 음악이 너무 좋았다. 이후, 집에서 케이블TV를 보다가 김태성 음악감독님이 작업한 <가루지기>를 봤는데 음악이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김태성 이번 무대에 <가루지기>(김태성 음악감독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스탭들과 함께 100인조 오케스트라로 작업한 O.S.T.-편집자)를 선보일 거다. (웃음)
이지수 정말 재미있는 스코어였다. 그래서 나중에 앨범을 따로 찾아 들었다.
김태성 이지수 감독님의 <올드보이>는 만들기 쉽지 않다. 보통 영화음악은 스토리를 따라가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음악을 만들기 어렵다. 이동준 감독님이 작업한 <은행나무 침대>는 당시 한국에서 동양적인 악기를 동원해 스코어를 만들어내는 시도가 흔치 않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병우 감독님이 작업한 곡들은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작품은 <괴물>이었다. <괴물>개봉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병우 감독님의 단독 콘서트에 갔는데 <괴물>의 곡이 공연 2부 엔딩곡으로 나왔다. 집에 돌아가면서 ‘와, 나라면 절대 저렇게 해석하지 못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뽕짝’은 보통 자신감이 아니면 구사하기 힘든데 충격적이었다.
이동준 세분이 작업한 곡들 모두 좋아한다. 영화음악감독은 감독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이병우 감독님이 작업한 곡들을 들으면 대체 감독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했을까 궁금하다. 김태성 음악감독이 작업한 <극한직업>은 스코어가 정말 다양하고, 양이 많아서 곡 작업이 ‘극한 직업’이었겠다 싶었다. (웃음) 이지수 감독이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한 <아리랑랩소디>를 좋아한다. <밀양아리랑>을 변형한 곡인데 클래식한 스타일이다.
이병우 동료들이 작업한 곡들을 다 좋아한다. 보통 영화음악감독들은 마감을 코앞에 두고 곡을 만든다. 그 고생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동료들의 작업물이 너무나 대단한 것 같다.
-이번 행사가 어떤 무대가 될 것 같나.
김태성 내 공연은 영상과 음악이 어떻게 화학작용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봐주면 좋을 것 같다.
이동준 콘서트처럼 퍼포먼스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밴드도 편성하고, 국악기도 투입될 것 같고, 그래서 무대가 꽉 찰 것 같다.
이지수 이동준 감독님의 말처럼 콘서트처럼 폭발력 있는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
이병우 일단 관객들에게 꼭 식사를 하고 예술의전당에 오길 권한다. (일동 웃음) 배가 고프면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음악이 잘 안 들린다. 무대 규모가 커서 기타와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이동준 밴드나 오케스트라를 안 쓰면 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