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도굴' 한국에서 그간 다뤄진 적이 없었던 도굴을 소재로 한 범죄 오락영화
2020-11-03
글 : 오진우 (평론가)

황영사. 여기 빗자루질을 하는 한 스님이 있다. 그는 위장 잠입한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다. 그의 목표는 황영사 9층 석탑 속 금동불상. 강동구가 금동불상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암시장에 퍼진다. 급기야 진 회장(송영창)도 이 소문을 듣는다. 그는 강동구와의 거래를 윤 실장(신혜선)에게 맡긴다. 윤 실장은 진 회장이 운영하는 스카이호텔 카지노로 강동구를 부른다. 그녀가 제시한 거래액은 2억원어치의 카지노 칩. 강동구는 룰렛 게임에 받은 칩을 올인하고 잃는다. 윤 실장은 그의 무모함에 끌린다. 하지만 강동구의 행동은 의도적이었다. 판돈을 묻고 더블로 간 셈이었다. 미끼를 문 윤 실장은 두 번째 거래를 강동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중국 지안에 위치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져오라는 것. 이 작업에 고분벽화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가 투입된다.

강동구는 도굴 과정에서 겪은 위기의 배후에 진회장이 있음을 직감한다. 강동구는 이제 역으로 진 회장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그 장소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선릉이다. 강동구는 선릉 안에 전설의 무언가가 있다고 진 회장을 유혹한다. 진 회장의 승인에 따라 강동구는 최고의 도굴팀을 꾸린다. 그 마지막 퍼즐인 인간 굴삭기로 불리는 전설의 삽질 전문가 삽다리(임원희)가 섭외된다. 강동구의 도굴팀은 선릉을 향해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도굴>은 한국에서 그간 다뤄진 적이 없었던 도굴을 소재로 한 범죄 오락영화로, 박정배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그는 그간 <청연>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 다양한 작품에서 조감독을 맡으며 쌓은 실력을 이 영화에서 가감 없이 선보인다. 영화는 범죄영화의 하위 장르인 ‘케이퍼 무비’를 표방한다. 이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훔치는 과정에서 담보되는 리얼리티다. <도굴>은 리얼리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도굴의 핵심은 훔치려는 유물과 그것이 있는 장소다. 이것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작진은 실제 유물을 토대로 심혈을 기울여 소품을 제작했다. 그것이 배치되는 장소 역시 실제 크기에 버금가는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예외적으로 가상의 고대 사찰인 황영사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이기에 세트보다는 로케이션을 택했다. 황영사는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첫 관문이기에 가장 중요한 장소다. 이외에도 중국 지안과 선릉 장면은 실제 크기에 달하는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제작진은 중국 지안을 사전 답사해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새만금 간척지에 고분 세트를 완성했다. 선릉은 실제 크기의 80%에 달하는 세트장을 지어 대체했다. 또한 선릉에 도달하기 위해 팠던 땅굴 역시 상당한 양의 흙을 투입해 완성했다.

하지만 영화는 시각적인 고증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도굴>은 오락영화의 장점을 잃지 않기 위해 말맛을 살린 대사를 선보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도굴 작업에 앞서 브리핑을 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 장면은 배우들의 개성 있는 대사 처리를 통해 일타 강사의 인강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영화는 대사를 통해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잡아낸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이다. 이제훈은 능글맞고 유쾌하고 동시에 진지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한다. 조우진 역시 그간 진중했던 캐릭터에서 벗어나 재기 발랄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런 의미에서 <도굴>은 <타짜>를 연상시킨다. 두 영화는 장편 상업영화라는 카테고리에서 비교 선상에 놓인다. <타짜>라는 거대한 산에 준하는 완성도를 선보인 <도굴>의 아쉬운 점은 신혜선이 맡은 윤 실장에 있다. 정 마담과 비슷한 인상을 주는 윤 실장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 부족하다. 이로 인해 영화의 후반부에 선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도굴>은 그간 장편 상업영화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희망을 다시 발견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CHECK POINT

선릉역의 그 ‘선릉’을?

<도굴>은 마지막 도굴 장소로 선릉을 택했다. 관객은 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박정배 감독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선릉에서 도굴이 행해진다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장소를 선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장기를 발휘한 배우 이제훈

배우 이제훈은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났다. 그가 맡은 강동구는 능청스럽고 유쾌하며 때론 진지한 면모를 지닌 캐릭터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박열> <아이 캔 스피크>에서 보여준 장점들을 <도굴>에서 맘껏 펼친다.

최동훈 감독이 연상되는 연출

<도굴>은 영화 소재 덕분에 K-<인디아나 존스>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타짜>와 <도둑들>을 연상시킨다. 케이퍼 무비 장르를 따르고 대사의 말맛을 살리는 박정배 감독의 연출에서 제2의 최동훈 감독이 엿보인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