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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X-월드' 한태의 감독 -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덕분에 찍을 수 있었다”
2020-11-05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힘든 결혼 생활을 보냈는데도 딸에게 꼭 결혼하라고 말하는 사람. 한태의 감독의 눈에 비친 엄마 미경은 도통 이해하기 힘든 여자다. 어렸을 때 ‘엄마의 기대주’였다가 숭실대학교 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웬수’가 된 한태의 감독이 카메라를 든 것도 엄마의 ‘입체적인 캐릭터’에 매료돼서다.

단편 <할머니와 팔씨름>을 연출하고, <메기>(감독 이옥섭)의 인물 조감독을 맡았던 한태의 감독이 얼떨결에 연출한 <웰컴 투 X-월드>는 어느 날 할아버지가 며느리 미경과 그의 딸 태의에게 집을 나가라고 통보하면서 두 여성이 독립하는 과정을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 모녀가 새 출발을 하는 모습은 보는 내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한태의 감독은 자신의 영화처럼 유쾌하고, 밝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나보다. (웃음)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신기했다. 늘 자신보다 가족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런 엄마를 보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 바엔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엄마는 늘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까지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보면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같은 보수적인 말을 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집에 일찍 들어오면 ‘네 나이 때는 늦게까지 놀아야 한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엄마는 보수적이면서도 개방적이라 되게 입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동의를 구한 뒤 카메라를 들었나.

=그렇진 않았다. 마침 휴학을 하고 있어 시간이 남아돌았고, 좋은 캠코더를 샀던 차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틈틈이 찍었을 뿐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엄마를 찍었던 촬영 소스를 보니 엄마에게 반복적으로 했던 질문들이 대체로 결혼과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궁금해하는 것이구나 싶어 편집하면 단편 다큐멘터리는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카메라를 친숙하게 생각하던가.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엄마가 연예인인 줄 안다. (웃음) 카메라가 계속 따라다니니까. 그래서 엄마가 무척 창피해했다. ‘꼭 찍어야겠니?’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엄마한테 ‘진짜 재미있는 거’라고 안심시켰고, 촬영을 거듭하다보니 어느새 직접 카메라를 들고 몰입하시더라.

-사소하게 출발했다가 장편다큐멘터리로 발전될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가 엄마와 감독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통보하면서인가.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저 푸티지 영상으로 남았을 텐데 좋은 시기에 좋은 사건이 일어났던 거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라고 했으니 엄마가 이사를 준비하고, 새 출발을 하는 과정을 더 찍을 수 있겠다 싶었다.

-엄마가 이사 갈 집을 찾는 과정에서 가진 예산에 비해 턱없이 비싼 집들을 마주할 때마다 상심하는 모습은 공감이 많이 됐다.

=엄마와 둘이서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옥상이나 지하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동산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방 세개짜리 집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 그 조건에 맞는 집을 보여주면 되는데 부동산은 늘 가족이 몇명인지, 아빠는 왜 없는지 같은 사생활을 물었다. 엄마는 말하기 꺼려 하면서도 꾸역꾸역 대답했고, 그걸 지켜보는 나 또한 불편했다.

-카메라에 담긴 엄마와 자신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약속한 대로 촬영하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는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인물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되지 않아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이런 말도 하는구나, 고작 27년 산 내가 시나리오에 절대 쓸 수 없는 대사다. (웃음) 다큐멘터리에선 명언으로 길이 남을 말들이 나오는 게 가능하더라. 그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매력적이고, 신기한 장르였다.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수시로 끼어들어 말을 시키는 모습이 긍정적이고, 유쾌했다. 감독의 말 한마디가 엄마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데 동력 같은 역할을 하던데.

=카메라에 담긴 내가 꼴 보기 싫을 때가 많았다. 가만히 대상을 관찰해야 하는데 다큐멘터리를 찍은 경험이 없었던 탓에 슬퍼하는 엄마에게 장난을 치고, 말을 시키는 등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를 좀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어서 항상 ‘엄마 같은 사람 없다’라든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 같은 표현을 적극적으로 했던 것 같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모녀가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엄마가 결혼 생활로 얻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고, 늘 시가에 주는 쪽이었으며, 친척 결혼식에 갈 때마다 시가의 대표여야 한다는 데 자식으로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친가쪽 친척들이 엄마를 오랜만에 볼 때마다 자기 자식처럼 예뻐하고 환영해주었고, 엄마 또한 놀이공원에 놀러 간 아기마냥 좋아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그들만의 시간이 있구나 싶었다. 그게 아마도 힘들었던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고, 엄마를 좀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모녀가 새집을 구해 새 출발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감동적이었다.

=이사간 뒤 엄마가 새로 도전하는 일은 원래 이야기에 없었다. 개봉을 앞두고 다시 편집하면서 엄마가 앞으로 하게 되는 일들을 8분가량 추가했다. 엄마와 나가서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새 출발을 한 뒤로 새로운 고민과 문제가 생겼다. 앞으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지 보여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변으로부터 받고 추가한 것이다.

-얼떨결에 첫 장편다큐멘터리를 완성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우리 가족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친밀한 가족이 담긴 작품을 보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이 영화는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덕분에 찍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경험이 지금 쓰는 시나리오나 이후 만들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나.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입체적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할아버지도 우리 모녀보고 나가라고 해놓고, 막상 떠나는 날 라면 한 봉지 더 챙겨주려고 하지 않았나. 용감한 사람도 위축될 때가 있고, 이같은 의외의 면모를 묘사할 때 인간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매번 내 인생의 영화가 바뀌는데 최근 내 인생의 영화는 에드거 라이트 감독이 연출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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