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보여준 놀이의 쾌감에서 부족한 것은
2020-11-17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안전한 쾌감에 머물지 않기 위하여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근래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 여성 캐릭터를 비교적 다채롭게 구축하고 있는 편에 속한다. 수학 천재와 오지랖, 까칠한 현실주의자의 조합은 익숙하지만 여성의 몸으로 구현된 캐릭터를 스크린에서 만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아가, 세간의 평처럼 이 영화를 ‘여성 승리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평하기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지점이 있다. 굳이 여성영화에 관한 해묵은 정의를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나는 이 작품이 여성들을 통해 쾌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묘하게 기만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영화를 두고 여성의 승리를 언급해도 좋은가. 그 점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지탱하는 서사의 축은 상업 고등학교 출신의 말단 직원들이 삼진그룹 경영진의 흑막을 밝혀 회사를 지키는 과정이다. 그러나 중심 서사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지배적인 쾌감은 얼핏 약하게 보이는 여직원들이 ‘센 상대’인 남성 경영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과정에서 온다.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서사의 축에 의지한 채, 여성들이 성별과 계급을 전복하며 만들어내는 쾌감에 추동되며 영화는 진행된다. 물론 이 영화의 대립 구도를 남성/여성 혹은 말단 직원/경영진으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 영화는 ‘실력은 있으나 이를 발휘하지 못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쉽게 소모되는 젊은 여성’들을 하나의 무리로 묶어, 이들이 반대편에 있는 어떤 남성들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시도해온다. 우리는 전복의 순간에 찾아올 쾌감을 기다리며 영화를 따라가고,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들이 빌리박 사장(데이비드 맥기니스)에게 자신의 말을 영어로 또박또박 전달하는 과정에서 쾌감은 절정에 달한다. 이들의 승리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듯 보이고 우리는 무사히 극장을 빠져나오게 된다.

영어토익반 여자들의 성취가 가능했던 이유

그런데 이 영화가 이자영(고아성), 정유나(이솜), 심보람(박혜수)을 대하는 태도가 묘하다. 이들을 비롯한 영어토익반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회사 내 말단 직원들인데, 이들은 단순히 젊고 직급이 낮은 것을 넘어 어린 학생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영화의 마지막에 빌리박과 맞서는 상황에서도 일렬로 나란히 서서 마치 학생들처럼 복창을 하고, 진지한 대화를 할 때에도 꽈배기, 떡볶이 같은 간식을 쉴새 없이 먹는다.

감정표현에도 솔직한 이 여자들은 심보람과 봉현철 부장(김종수)이 그랬듯 연장자에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물론 이러한 설정의 이유를 장면마다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요소들이 연결되어 영어토익반의 여자들을 미성년의 여학생에 가까워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성장기를 그리는 명랑영화를 표방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주인공들은 나이뿐 아니라 관계의 측면에서 어리다는 인상을 준다. 이자영은 나중에 스스로 우리는 “tiny”(작은)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때 “tiny”하다는 설정은 어린 여성의 이미지와 결합한다. 이러한 설정만으로 어떠한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회사의 말단 직원들을 미성년 여자의 이미지와 결합시키고 고령의 남성들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이들을 별개의 집단으로 그룹핑(grouping)하며, 이들의 약자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 그녀들은 본격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돌진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서사의 허술함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무수한 (어설픈) 추적에도 들키지 않으며, 매번 사람들을 설득해 도움을 얻어내고, 약간의 좌충우돌로 주요한 증거를 손에 넣는다. 이러한 헐거움이 단순히 ‘명랑 판타지’의 형식을 취했다는 이유로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허술함을 두고 서사적 결함만을 언급하는 것은 절반의 지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 왜 이런 결함들이 생겨났는지를 묻는 일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시대상과 실제 사건을 차용했다고 알려졌다. 1990년대 대기업이 운영했다는 영어토익반과 1991년에 터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이 둘 사이를 여성 노동자들을 통해 이으려는 시도를 한다. 영화에는 그 시대의 여성들을 소환해 거대한 사건을 해결하게 만들어 큰 성취를 안겨 주겠다는 욕망이 너울거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사적 결함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말단 사원이라는 설정과 역사적 사건 사이의 간극은 쉬이 메워지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 지점을 특유의 발랄함으로 뛰어넘으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마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듯 여러 결함들을 가뿐히 넘기며 이 여자들을 성공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니까 영어토익반 여자들의 성취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녀들이 그것을 기어이 쟁취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가 마치 인심 좋은 심판처럼 중요한 순간마다 허들을 낮추며 그녀들의 성취를 너그럽게 용인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이지영을 비롯한 말단 직원들이 사장실에서 빌리박 일당의 계략을 무화시키는 순간에 온다. 비록 남자 직원들도 동참하긴 하지만 그녀들의 영어 스피치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순간은 영어토익반 여자들의승리로 그려진다. 그렇게 회사를 지키려는 어린 여자들이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빼앗으려는 강한 남자들을 물리치는 서사가 완성된다. 이것은 영어토익반 수강생들에게 어린 여자의 이미지를 입히고, 거친 남자들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선을 그은 다음, 그 선을 넘도록 도와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여성 승리의 서사로 읽을 수 있을까.

손쉬운 응원과 박수 이상의 것이 필요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시작부터 당대 여자들이 처했던 차별적인 상황들을 나열한다. 이 영화가 어떤 여자들 앞에 놓인 차별의 선을 인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영화는 “You can do it”(너는 할 수 있어)을 외치며 사회가 그은 선의 제약에 갇히지 말라고 응원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녀들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방식은 그녀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주변에 놓인 선을 지우며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그 선을 새롭게 색칠하고 이것을 슬그머니 낮추는 방식으로 여자들이 경계를 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녀들이 낮아진 선을 발랄하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안전한 쾌감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여성을 소재로 잘 유희화된 ‘경계 허물기 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놀이의 쾌감은 묵직하지는 않지만, 이 가벼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그러나 이 변칙적인 놀이를 두고 ‘여성 승리의 서사’라고 부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 이 순간의 쾌감을 여성의 승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면, 그 쾌감은 다분히 기만적이다.

차별받은 집단의 서사를 다루는 일에 영화는 좀더 민감해져도 좋을 것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전하려는 시도는 환영하지만 손쉬운 응원과 박수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법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를 마주하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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