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힐빌리의 노래' 미국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이 가난과 폭력의 고리에 갇혀 버텨온 시간을 담아낸 영화
2020-11-17
글 : 송경원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주변 환경, 경제적 조건,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처음엔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동시에 내 주변에 드리운 벽이자 족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울타리의 또 다른 이름은 가족이라고도 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이 가난과 폭력의 고리에 갇혀 버텨온 시간을 담아낸다.

‘힐빌리’는 미국 남부의 백인 저소득층, 낮은 교육수준과 보수적 성향을 띤 이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가난한 백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변호사 J. D. 밴스의 동명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트럼프 시대 미국의 현실을 내비친다. 예일대 학비를 위해 로펌의 인턴 자리를 구하고 있는 밴스(가브리엘 바소)의 시점에서 수시로 과거의 기억들이 교차되며 밴스 가족의 역사를 훑는 형식이다. 약물중독인 엄마 베브(에이미 애덤스)와 엄마 대신 자신을 보살피는 할머니 마모(글렌 클로스), 각자 살기 바빴던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까지 힐빌리들의 출구 없는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시대의 주름을 꼼꼼히 반영한 원작에 비해 좀더 개인적인 가족사, 주인공의 성장담에 초점을 맞춘 무난한 드라마에 집중한다. 장면을 장악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놀랍지만 전반적으로 연출은 평이하고 이야기는 산만하며 종종 결과에 이르는 방식이 다소 손쉽게 느껴진다. 부분적으로 만족스러운 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리한 통찰이나 사회를 조망하는 깊이에는 다다르지 못하는 인상이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가족 드라마이자 심심하고 보편적인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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