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혜인은 <에듀케이션>의 성희가 되기 위해 두권의 노트를 채웠다. 각각 보랏빛에 가까워지는 붉은 톤, 푸른 톤의 표지 너머에는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나 이제 스페인에 가고 싶어 장애인 활동지원 아르바이트에 나선 성희의 시간이 새겨져 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여성(송영숙)을 보조하게 된 후 그의 아들이자 보호자인 고등학생 현목(김준형)과 마찰을 일으키는 성희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어쩌면 괴로움과 불안 속에 빠진 성희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문혜인 배우가 공책에 적은 단상으로부터 3년 전 그의 바람이 떠올랐다. 2017년, <씨네21>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여성배우 7인’ 중 한명으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각박한 현실에서도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듀케이션>은 그 소망이 실현된, 배우 문혜인의 첫 장편 주연작이다.
-고야,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좋아해 스페인행을 꿈꿨었다고.
=내게도 성희와 같은, 취업준비생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에 한창 스페인행을 꿈꿨었다. 원래 성희의 목표는 노량진에 있는 고시원 방을 얻는 것이었는데, 감독님께 스페인 얘기를 들려줬더니 소재로 덥석 취해주셨다. (웃음)
-2017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다방면의 예술을 잔뜩 채집하듯” 그림, 사진, 무용, 번역 등을 직접 한다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는 어떤 활동으로부터 영감을 얻나.
=비트 메이킹에 몰입하고 있다. 직접 만든 비트 위에 랩을 얹는 것을 목표로 작업한다. 비트 메이킹을 할 때는 ‘숲’, 랩을 할 때는 ‘숲혜인’이라는 이름을 써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다.
-반면 <에듀케이션>의 성희는 다양한 문화적 경험에 젖어들 심적 여유가 모자라 보였다. 인물에게 어떻게 다가가려 했나.
=나 또한 성희처럼 하루하루가 빡빡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늘 병행했다. 연극 동아리가 그나마 숨구멍이었는데,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쫓기듯 살았다. 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성희 또한 그랬을 것이다. ‘세상이 나에게 불친절한데 내가 왜 친절해야 돼?’라고 생각하는 성희지만, 마냥 무감각하지만은 않다고 설득하고 싶었다.
-성희가 보라색 옷을 즐겨 입은 이유가 있을까.
=보라색은 빨간색과 파란색 중 어느 색을 더 섞느냐에 따라 자주색이 되기도, 청남색이 되기도 한다. 그 성질이 아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르는, 그래서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성희와 비슷하다. 성희가 좀더 의욕적인 상태에서는 붉은 계열의, 무기력할 때는 푸른 계열의 보라색 옷을 입었다.
-성희가 앓는 허리 디스크를 표현하기 위해 자세나 걸음걸이도 신경 써야 했다.
=가장 어려운 연기였다. 병원에 머물면서 허리가 불편하신 분들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그분들의 표정을 보며 통증의 정도를 짐작해보곤 했다. 꼬리뼈쪽에 다른 감각이 느껴진다고 상상하며 움직였다.
-<에듀케이션> 크랭크업 후 2년이 지났다. 성희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현실에 발을 디디지 못한 상상은 행동으로 이어지는 힘을 갖기 어렵더라. 내가 스페인으로 떠나기보다 연기 활동에 집중했듯, 성희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지 않았을까. 또 다른 가능성도 이야기하고픈데, 얼마 전 이사 간 동네에서 ‘성희포차’, ‘성희분식’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나란히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간판에 안경을 쓰고 머리를 묶은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더라. 성희의 근성과 생명력이라면 그런 모습으로 가게를 차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문혜인 배우의 계획도 궁금하다.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퀴어 웹드라마에 참여했다. 내년에 장편영화도 계획되어 있다. 순하되 치열한 과정을 거쳐 만든 작품이 결과도 아름다운 듯하다. 앞으로도 이런 지향을 갖고 작업하고 싶다.
영화 2020 <에듀케이션>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영화로운 나날> 2018 <해몽(解夢)> 2018 <증언> 2018 <너와 극장에서> 2017 <감독님 연출하지 마세요> 2016 <한낮의 우리> 2016 <나가요: ながよ> 2016 <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