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iew]
'스트레인저', Hello 아니 Hell No
2020-12-01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길티 플레저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일정 이상 존재한다. NQQ와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에서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인 <스트레인저>는, 2014년 한 출연자의 사망으로 종영된 SBS <짝>을 연출했던 남규홍 PD의 신작이다. 출연자들은 ‘SV(스트레인지 빌리지) 133’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숙소, 즉 애정촌에 모여 며칠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남자 1호’, ‘여자 3호’ 대신 ‘미스터 염’, ‘미스 김’ 등의 성으로 칭한다.

기이한 상황을 차분하면서도 매혹적인 저음으로 전달하는 <짝> 특유의 내레이션도 그대로다. 감자를 80kg에 가깝게 담는 미션에서 혼자 격앙되어 규칙을 깨고 무작정 많은 감자를 모은 남성의 의아한 행동 위로 우아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투우사와 소는 존재만으로도 경기장을 압도한다. 인정한다. 오늘 감자와 미스터 윤의 만남도 그랬다는 것을….”

인정하자. <스트레인저>는 낯선 이들이 만나 로맨스를 꽃피우고 서로에게 ‘클로저’가 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남의 연애에 대신 설레하기 1등인 박미선과 유재석이 와도 소용없다. 이 프로그램의 존재 목적은 “결혼 상대자를 찾는 일”이고, ‘연애’하러 여기 온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는 출연자들은 목적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던진다. 특히 여성출연자보다 외적인 매력이 떨어지고 캐릭터가 예사롭지 않은 남성 출연자들의 천태만상을 멀.리.서. 구경하는 것이 재미의 핵심이다. “(여자가) 저보다 말수가 적으면 좋겠다”라는 소망, “(팔씨름에서 진 뒤) 사실은 왼손잡이”라는 허세, 데이트 도중 갑자기 터뜨리는 분노와 오열에 혈압이 마구 요동친다. 그래서 처음엔 이것이 출산율 제고를 위해 여성의 하향 선택 결혼을 유도하려는 문화 콘텐츠 개발 아이디어의 연장선에 있는지 의심했지만, 좀더 지켜본 결과 비혼 유도 프로그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때마침 <스트레인저>를 보던 친구가 말했다. “서기 2870년쯤 ‘동아시아는 왜 멸망했는가’라는 주제로 논문 쓸 사람은 이 레퍼런스를 보라.”

VIEWPOINT

그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

<스트레인저> 제작진은 출연자가 금세 걸려들 덫을 놓는 재주가 있다. 단 한 커플만 성사된 1기에 이어 지금 방송 중인 2기에서 여성 출연자들은 무거운 가방을 끌고 비탈길을 올라와 높은 계단 위에 마련된 자리까지 끙끙대며 올라간다. 먼저 도착한 남성 출연자들은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볼 뿐“시대가 변했다”라며 도와주지 않는다. 한 남성 출연자는 밝게 웃으며 “남녀평등인데 같이 힘들어야죠”라고 인터뷰한다. 어김없이 친절한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그녀를 놓고 남자들은 곧 전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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