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영화제가 새롭게 태어났다. 중구문화재단과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손잡고 새롭게 막을 연 제5회 충무로영화제는 ‘디렉터스 위크’를 표방하며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감독의 영화제로 탈바꿈한다. 이번 영화제는 12월 1일부터 5일까지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여러 장·단편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감독들의 이야기를 듣는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영화의 메카 충무로에서 다시금 영화 문화의 꽃을 피울 것”이란 안상훈 감독의 말처럼 이번 영화제는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대거 참여해 영화의 현주소를 묻는다. 제5회 충무로영화제의 공동 집행위원장 겸 기술감독을 맡은 문시현·안상훈 감독을 만나 달라진 영화제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5회를 맞이한 충무로영화제가 올해는 완전히 새로운 포맷으로 바뀌었다.
안상훈 지난 4회까지는 뮤지컬영화제 컨셉으로 진행됐는데 올해부터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손잡고 ‘충무로영화제-디렉터스 위크’로 거듭났다. 제목 그대로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감독의 영화제’를 해보고자 한다. 칸국제영화제의 감독주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여러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보다는 감독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에 공을 들였다.
문시현 또 하나 새로운 시도는 세로 시네마다. 올해 슬로건이 ‘충무로, 새(세)로 보다’이다. 기존 영화나 영화제가 얽매였던 전통적인 스크린의 전형성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제시하고자 한다. 뉴미디어 시대에 맞게 세로형 스크린으로 찍은 영화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막작 <The CMR>은 충무로의 영문 약자인 CMR을 타이틀로 디렉터스 위크의 출발을 알리는 옴니버스 프로젝트다.
-두분이 올해 맡은 역할은 뭔가.
문시현 집행위원장 겸 기술감독이다. 직함이 있긴 한데 조합 소속의 많은 감독님이 함께 업무를 분담하고 있어서 의미는 없다. 편의상 구분하는 정도다. 민규동 감독님이 조직위원장, 임필성 감독님이 프로그램팀을 맡았다. 프로그램부터 현장까지 가내수공업의 마음가짐으로 하나하나 공들여 준비 중이다.
안상훈 인력이나 재정적인 부분 모두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에 다들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 중이다. 영상 하나를 만들 때도 촬영, 편집, 조명 등 모든 분야를 감독님들이 나눠서 하고 있다. 영화과 다니던 시절로 돌아가 열정으로 넘쳐났던 영화학도가 된 기분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손을 거쳐 만들어나간다는 실감이 있어 고되지만 즐겁다.
-개막작 <The CMR>에는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 감독 15명이 참여해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컨셉과 형식, 공개 방식마저 독특하다고.
문시현 권호영, 김영남, 박진순, 봉만대, 신아가, 심찬양, 안상훈, 오점균, 이서, 이옥섭, 이종훈, 임선애, 정용주, 진승현, 황욱 등 15명의 감독이 참여했다. 각 감독들이 회현동, 신당동, 장충동, 필동 등 중구 일대의 15개 행정동에 가서 공간에 맞춘 단편영화를 찍었다. 세로 시네마는 새로 찍는 시네마이기도 하다. 각 영화에 주어진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해당 공간에서 찍을 것, 그리고 3분45초라는 러닝타임을 맞출 것. 한국영화 문화의 산실이었던 충무로 일대의 정취를 다시 복원하고 기억하자는 의미다. 주어진 시간도 촉박하고 지원 예산도 적어서 얼마나 많이 응모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경쟁률이 무려 4 대 1이었다. 여기 안상훈 감독님도 승자 중 한명이다.
안상훈 워낙 많이 지원했다고 해서 되겠냐 싶은 마음으로 넣었는데 운 좋게 기회를 얻었다. 어떤 행정구역을 배당받을지는 제비뽑기로 정했는데, 나는 운 좋게도 필동을 뽑았다. 내가 다녔던 동국대 인근이라 개인적인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한옥마을 인근에서 <파동 인식>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사진을 세로로만 찍는 사진작가가 한옥마을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궁금하면 꼭 영화를 봐주시라. (웃음) 개막작은 12월 1일(화) 네이버TV 영화제 공식 채널을 통해 상영 예정이다. 개막작 상영 후에는 3분 길이로 재편집한 개별 작품들을 틱톡(TikTok)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주제로 감독들의 경험담을 풀어내는 ‘충무로 클라쓰’, <The CMR>에 참여한 감독들의 제작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한숨 토-크’ 등 올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문시현 감독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등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이다. 창작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이면의 여러 가지이야기를 가깝게 들려주고자 한다. 충무로 클라쓰는 그런 의지가 반영된 마스터클래스다. 우선 ‘극장을 탈출한 감독들’에서 이경미 감독을 모시고 OTT 플랫폼에 대한 이모저모와 극장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감독과 배우를 겸하는 분들이 늘고 있는데 ‘감독이 된 배우들’에서는 류덕환, 김도영, 이종필 감독을 모시고 경험을 입체적으로 전할 예정이다.
안상훈 예비 창작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걸 들려주고자 한다. 충무로 클라쓰의 마지막 섹션 ‘흥행하는 글쓰기’는 오기환 감독과 함께 그야말로 잘 먹히는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노하우를 나눈다. 한숨 토-크로 진행하는 ‘세로 시네마 제작 분투기’는 일종의 개막식 성격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참여감독 15명이 모두 줌으로 참가하고, 봉만대, 장항준 감독이 사회를 맡아 현장 상황을 조율할 예정이다.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들은 꼭 12월 1일 라이브로 들어달라.
-기본적으로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한다. 다들 코로나19로 영화산업의 위축을 말하지만 한국 영화인들은 항상 돌파구를 찾아왔다. 어쩌면 이번 충무로영화제의 변화처럼, 코로나19로 강제적으로 여러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것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안상훈 위기는 기회라고 하면 식상하겠지만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번 디렉터스 위크는 철저하게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행사다. 영화제를 표방하지만 기존 영화제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영화감독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을초대하고, 예비 창작자들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려고 한다. 이런 인식이 쌓인다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충무로를 영화의 메카로 다시 살리는 길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시대가 되어 영화 문화란 무엇인지 새롭게 질문을 받고 있다. 어쩌면 뤼미에르의 방식이 아니라 무시되고 잊힌 에디슨의 방식이 부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잊고 있었던 쌍둥이 형제가 나타난 것 같은 상황이랄까. 이번 영화제를 단발성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을 롤모델로 해서 나중에는 결연을 맺고 해외 감독들과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도록 노력하겠다.
문시현 솔직히 말하면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코로나19 이전에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번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 심적으로 창작을 계속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가는 기분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함께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민을 나누면서 서로의 필요와 쓸모를 발견해나가는 자리다. 영화에, 창작에 관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참여하시라. 영화제의 관객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준 분들, 미래의 창작자들이 언젠가 동료로서 우리와 함께 축제의 장을 넓혀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