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0시33분부터 34분까지 딱 1분간. 2020년 9월에 사는 남자와 한달 전인 8월에 사는 여자의 핸드폰이 연결된다. 유중건설 최연소 이사 김서진(신성록)은 회사 창립기념 파티날 딸 다빈(심혜연)이 실종되고, 아이가 사망했다고 여긴 아내 강현채(남규리)까지 한강에 투신하면서 삶이 무너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애리(이세영)는 심장수술을 앞둔 엄마 곽송자(황정민)가 별안간 자취를 감추고 친구 임건욱(강승윤)에게 엄마 수술비 통장을 털린 암담한 상황이다.
‘타임 크로싱’ 스릴러를 표방하는 <카이로스>는 두 주인공의 위기를 핸드폰을 매개로 한 시간차 비대면 공조로 풀어간다. 9월의 서진은 이미 일어난 일을 한달 전의 시간대에 사는 애리의 힘을 빌려 되돌리려 하고, 8월의 애리는 앞으로 닥칠 위기를 한달 후 시점의 서진을 통해 알게 된다.
한정된 지면을 줄거리에 할애하는 게 아까울 정도로 <카이로스>는 뜯어보고 싶은 장면이 넘친다. 한달 간격으로 같은 사건 현장에 도착한 두 주인공의 동선을 연결하는 연출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정보량의 차이를 계산하고, 인물이 프레임 안팎으로 들고 날 때의 압박과 쾌감을 컨트롤하는 연출이 스릴러 장르를 다루면 이렇게 짜릿하다고 외치고 싶다. 여기에 배경음악이라 하면 죄송할 정도로 각 신의 호흡과 컷의 리듬을 틀어쥔 스코어가 긴장을 쥐락펴락하고, 매회 화면을 꽉 채우는 오프닝 타이틀 위에 얹힌 효과음은 시청하는 쪽의 감각을 한껏 고양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현채가 서진이 먹지 않은 죽 그릇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닫힌 문밖으로 변기에 죽이 후두둑 떨어지는 질척한 소리가 울리고 그 위를 ‘카이로스’ 타이틀이 뒤덮은 후,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이어지는데, 내 생전 죽 버리고 물 내리는 효과음에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다. <카이로스>는 보고, 들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드라마다.
VIEWPOINT
배우의 디테일
<카이로스>의 한애리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사라진 엄마와 수술비를 찾아야 하며, 여기에 김서진을 찾아가 딸의 유괴를 경고하는 등 할 일도 많고 보여줘야 하는 감정의 폭도 큰 역할이다. 배우 이세영에게 반하게 된 순간은 사소한 디테일 때문이었다.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 정리를 하던 중에 손님이 버리고 간 팩 음료를 가볍게 흔들어보고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 손동작 없이 그냥 버렸어도 무리가 없을 테지만, 한애리라는 사람은 음료가 남았으면 그걸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는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겠구나 싶어서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