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Music] 음악의 스토리텔링 - 영화 '걸후드' O.S.T
2020-12-10
글 : 최다은 (SBS 라디오 PD)

“이미 너무 늦은 것 같구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마리엠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를 대신해 가사를 도맡은 그는 악조건 속에서도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끌어가고 싶지만 좌절만 거듭한다. 이런 마리엠의 삶에 변화가 싹트기 시작한 건 비슷한 처지의 또래 친구들인 레이디, 필리, 아디아투를 만나면서다. 넷이서 하는 일이란 그저 시내를 쏘다니고 옷 구경을 하는 정도이지만 ‘함께 있다’는 이유로 용기가 생긴 마리엠은 지하철에서 내키는 대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혼자라면 참았을 불쾌한 대우에 맞서기도 한다.

그렇게 해방감과 자신감을 얻은 날 저녁에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하던 마리엠은 씻던 칼을 바라보다 문득 결심이라도 한 듯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는데, 그 순간 우리 귀에 꽂히는 건 바로 대사가 아닌 음악이다.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는 화면 속에서 침울한 공기에 균열을 내듯 날카롭게 파고드는 스코어 한곡은 마리엠의 결심이 무엇이고 앞으로 그가 무엇을 바꿔나갈 것인지 직관적으로 짐작게 한다.

<걸후드>에서 음악이 하는 역할은 영상과 대사로 표현하지 않은 그러나 가장 격정적이었을 주인공의 상태를 응축하는 것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마리엠의 성장에 있어 기점이 되는 곳에서 블랙아웃을 하고 새 챕터를 여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때마다 흐르는 메인 테마는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눈에 띄게 달라진 그가 겪었을 변화 과정을 음악적 텍스트로 암시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코어의 대부분은 같은 음을 짧게 쪼개듯 빠르게 반복하는 음형과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갖고 있으면서도 요란하지 않게 자신의 삶을 주도해가는 주인공의 성격에 어울리도록 드럼과 베이스는 쓰지 않았다. 이렇게 세심하게 작곡된 음악들은 결과적으로 영화에서 스코어가 얼마나 훌륭한 스토리텔러로 기능할 수 있는지 새롭게 증명했다. 셀린 시아마의 오랜 파트너이자 프랑스의 대표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파라 원의 작품이다.

PLAYLIST+ +

리한나 <Diamonds>

<걸후드>의 4인방이 호텔방을 빌려 자기들만의 세상을 누리듯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흐르는 음악. 영화에서 삽입곡은 곡의 일부만 사용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셀린 시아마 감독은 삽입곡의 수는 극소화하되 곡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이 곡이 등장하는 3분45초는 영화 전체에서도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꼽힌다.

파라 원, 셀린 시아마 <F.U.D.G.E.>

2006년에 발매한 파라 원의 솔로 앨범 《Épiphanie》의 수록곡. 빠른 비트 위에서 취한 듯 흥얼거리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둘은 2000년 영화학교에서 만난 이후 각자의 작품에 깊이 개입하며 든든한 조력자로 지내오고 있다. 이 곡의 경우 시아마의 모든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파라 원의 음악에 시아마가 도움을 준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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