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후드>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슬픈 이야기다. 동시에 가장 흥겨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 리한나의 <Diamonds>에 맞춰 춤을 추는 여자아이들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자유로운 시선과 몸짓, 그리고 웃음소리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 덕분에 나는 십대 시절의 어떤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별일도 아닌 일에 큰 소리로 웃었던 일,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던 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또 보냈던 일. 물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미 지나온 시간이고, 무엇보다 그런 격렬한 감정 상태를 경험하는 건 인생에서 한번으로 충분하다.
어쨌든 리한나의 음악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기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조금 더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나는 노래가 끝나갈수록 불안해졌다. 음악이 멈추는 시간은, 마음껏 웃고 떠들던 작은 호텔방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성장영화 3부작 중 하나로 불리는 <걸후드>는 16살짜리 여자아이들이 느끼는 감정과 우정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지만, 동시에 그 나이에 겪을 필요가 없는 고난 역시 지독히도 냉정하게 보여준다. 어린아이들이 고초를 겪는 영화에 유독 알레르기가 있는 탓인지, 나는 주인공 마리엠을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그러니까 학교를 그만두고, 설거지하다 칼을 챙기고, 다른 패거리에 싸움을 걸고, 동네 보스의 밑에 들어가 약을 팔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정말로 성장담일까? 마리엠의 이 모든 선택을,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만일 마리엠이 현실과의 사투 끝에 자신의 정체성을 쟁취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성장담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면, <걸후드>는 그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 마리엠은 힘이 없다. 세상과 싸우기에 이 아이는 너무 어리고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매번 어떤 선택을 하긴 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서, ‘꿈’이라는 걸 찾기 위해서,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길을 나름대로 선택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꽤 많은 선택을 했다. 사실 산다는 건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인 것 같다. 언젠가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과거에 저지른 일들을 잠시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이다. 친구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주 평범한 대답이었고, 누구나 하는 생각이며, 무엇보다 나 역시 종종 떠올리는 문장인데, 이상하게도 계속 기억이 났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알게 됐다. 나라는 인간은,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 순간이 다시 와도 똑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것. 머리가 터지게 고민하고, 내 감정에 솔직하려 노력하고, 일이 꼬였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열심히 수습하려 노력한 모든 일들. 나는 아마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이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결과, 나는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난 적도 있고, 반대로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안도와 후회는 늘 번갈아 찾아왔고, 안타깝게도 어두운 마음이 나를 조금 더 오래 지배하곤 했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또다시 선택을 했다. 그늘에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자고. 그냥 좀 걸어가자고. 그리고 그 결과는… 아, 정말이지 사는 건 징글징글하게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그중 어떤 것도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그런 평가는 불가능하다. 그냥 내가 살아온 날들일 뿐이다. 셀린 시아마 역시 마리엠의 선택에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 이 아이가 누구랑 어울리든, 어디로 가든, 카메라는 그 일상의 평범함을 있는 그대로 담을 뿐이다. 그 삶은 때로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고, 때로는 지루함으로 가득하며, 때로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그걸 지켜보는 건 어쨌든 아찔한 일이었다. 마리엠은 겨우 16살이다. 겨우 그 나이에 마리엠은 교육과 사회, 부모의 보호에서 밀려나 있다. 가장 마음이 아픈 장면은 마리엠이 인문계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선생님은 대답한다. 마리엠, 인문계에 가기에 네 성적은 너무 부족해. 직업학교가 어떠니. 그러나 마리엠은 거부한다. 유급을 해서라도 인문계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마 그게 마리엠이 생각하는 ‘괜찮은 삶’에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엄마처럼) 평생 청소부를 하고, 오빠에게 창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때문에 마리엠의 판단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하면 분명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마리엠은 공부를 못한다. 아니, 이 아이는 공부하는 방법을 모른다.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까.
동네 보스의 밑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친구들은 말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냐고. 그 일을 하지 말라고. 마리엠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아이는 다른 방법을 모른다. 이것 역시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오빠의 폭력과 집 안의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 무시무시한 곳으로 발을 딛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때문에 친구들도 마리엠을 더는 말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들 그녀와 같은 처지니까. 때문에 그들이 한 침대에 엉겨붙어 잠든 모습을 보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아마 마리엠은 저 추억 덕분에 계속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들에게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추억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남은 것은 내가 선택한 길에 다이아몬드가 펼쳐져 있다고 믿는 것.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내리는 이야기.
역시 의문이 든다. 과연 이걸 성장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투쟁 끝에 더 암담한 미래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결말을 말이다. 사투가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암시로 가득한 눈빛을 보면서 성장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셀린 시아마는 어떤 기대를 충족시켜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보고 싶은 이야기.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걸 확인해주는 이야기. 역경 끝에 자기 인생을 찾는 결말. 주제와 소재가 어우러지며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하여 내 마음이 편해지는 이야기.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진짜 삶은… 징글징글하게 어렵다. 하긴 셀린 시아마는 늘 이런 식이었다. 지나치게 낙담한 적도, 비관한 적도 없다. 하지만 길 구석에 반짝거리는 돌을 놓아두기는 한다. 어둠 속이라 할지라도, 그 빛을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끝에 동화의 집이 있을지,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세상이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