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 '퍼스트 러브' 선혈 낭자한 액션 속 '심쿵'의 정서를 간직한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2020-12-15
글 : 김철홍 (평론가)

‘첫사랑’의 풋풋함 혹은 설렘과는 정반대에 있는 인물들이 도쿄의 밤거리를 누빈다. 먼저 권투 선수 레오(구보타 마사타카)가 있다. 장래가 촉망되는 복서인 그는 의문의 케이오 패를 당한 후 방문한 병원으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어릴 때부터 가족도 없이 홀로 살아가던 레오가 뜻밖의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중년의 남성으로부터 쫓기고 있는 모니카(고니시 사쿠라코)가 그런 레오에게 달려와 도움을 청한다. 레오는 펀치 한방으로 남자를 제압하는데, 남자가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엉겁결에 도망치게 된다.

사연은 이렇다. 이 모든 것은 야쿠자 조직원 카세(소메타니 쇼타)의 계획으로부터 시작됐다. 조직의 앞날이 밝지 않음을 예감한 카세는 부패 경찰 오토모(오모리 나오)와 함께 조직의 뒷돈을 빼돌리기 위해 모니카를 이용하려고 한다. 조직에서 공급하는 마약을 가로챈 뒤약에 중독되어 있는 모니카가 벌인 일처럼 꾸미려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 예상치 못한 레오의 등장은 이 소동의 시작에 불과하다. 금단증상으로 계속해서 환각을 보는 모니카의 다음 행동은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구역의 라이벌 조직인 중국 세력까지 가세하기에 이른다. 카세가 처음 세운 계획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워진 순간, 모니카는 갑자기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린다.

<오디션>(1999), <착신아리>(2003), <쓰리, 몬스터>(2004)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국내외에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103번째 작품이다. 매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지난해 국내 개봉한 <라플라스의 마녀>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하나의 살인 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무언가의 진실엔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액션에 힘을 쏟아붓는다. 영화 전반부, 앞으로 액션을 선보일 다양한 인물들의 소개와 상황 설정 등의 시퀀스들만 버텨내면 그 뒤부터는 그저 이 쇼를 구경하는 일만 남는다.

그러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이 쇼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들지는 않은 것 같다. <퍼스트 러브>는 시작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잘려나간 사람의 머리가 굴러다니는 장면이 나올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영화다. 마치 앞으로 이런 장면들이 수없이 이어질 테니 버틸 수 없다면 미리 영화관을 떠나라고 경고하는 것 같기도, 또는 너무 놀라지 않도록 일종의 심장 마사지를 해주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퍼스트 러브>의 독특한 지점은 영화에 기존의 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소위 말하는 ‘심쿵’의 정서가 선혈이 낭자하고 신체 부위가 왔다 갔다 하는 액션들 사이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도 모르는 곳에 사랑과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감독의 말은 액션영화에 불균질하게 섞여 있는 로맨스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퍼스트 러브>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정서가 다름 아닌 코미디이기에, 평소 잔혹한 것들을 선호하지 않았던 관객 또한 영화를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개성 있는 캐릭터가 대거 등장하는 만큼 이는 배우의 공이 크다. 이미 감독과 여러 번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구보타 마사타카는 다른 인물들과는 상대적으로 덤덤한 복서 레오 역을 맡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극의 균형을 잡아주고, <기생수> 시리즈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등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소메타니 쇼타의 코믹 연기는 그의 커리어에서 또 하나의 특이점으로 기억될 만하다. 일본에서 한때 가장 인기 있는 예능인 중 한명이었던 벡키가 복수에 눈이 먼 주리를 연기해 극에 광기를 불어넣는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이며, 국내에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CHECK POINT

고니시 사쿠라코

로맨스영화인지 액션영화인지 종잡을 수 없는 영화의 중심엔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모니카가 있는데, 이를 연기한 고니시 사쿠라코는 <퍼스트 러브>가 첫 작품이다. 오디션에서 3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가부키초(歌舞伎町)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위치한 가부키초를 배경으로 했다. 일본의 유명한 번화가인 이곳에서 실제 촬영을 한 감독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이 거리를 배경으로 설정해 영화를 준비했다고 한다.

일본의 타란티노

가학적 미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미이케 다카시는 종종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교되기도 한다. 사실 타란티노는 미이케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이케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2007)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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