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스파이더맨이 여기 있었다니!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 잡는 4명의 카운터들 가운데 소문(조병규)이 타이틀롤을 맡은 것은 누구나 응원할 수밖에 없는 그의 짠내 나는 서사 때문일 것이다.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소년이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 되고 자신과 친구들을 괴롭히던 일진들을 제압하게 된다든지, 카운터로서 능력치를 ‘레벨 업’ 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다.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소문이 죽마고우 주연(이지원, <SKY 캐슬>의 예빈이었다는 사실!)과 웅민(김은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때 눈물까지 흘리며 몰입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아, 맞다. 나 소문이 몇 개월 전에 인터뷰 했었는데….” (기자들에겐 이런 일이 자주 있다. 일로 만나는 배우들을 TV에서 볼 때 왜 이리도 생경하게 느껴지는지….) 매번 개인적으로만 인터뷰 당시 기억을 곱씹으며 반추하는 게 아쉬워서, 미처 지면에 담지 못했던 내용을 탈탈 털어 독자들에게 공유하기로 했다. <씨네21>은 앞으로도 인터뷰 후일담을 담은 기사를 종종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2020년 7월, 조병규는 영화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제작비 2천만원, 총 3회차, 도합 47시간 만에 촬영을 마친 SF 장편영화였다. “그냥 친한 배우와 스탭들과 함께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최은종 감독)는 목표는 소박하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엄청난 집중력과 순발력을 요하는 현장이었다. 외계인 침공을 피해 벙커에 갇힌 8명의 사람들이 자신들 안에 숨어 있는 ‘외계인’을 색출해 간다는 간단한 내러티브 안에서, 배우들의 말싸움만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코미디도 살려야 한다. 필요한 정보만 들어가 있으면 대사도 배우가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는 문장으로 유연하게 바꾸는 등 배우들의 아이디어도 많이 반영됐다.
드라마 <SKY 캐슬>이 끝난 후 조병규는 모바일 영화 <독고 리와인드>를 함께 했던 최은종 감독의 작품을 차기작으로 선택했는데, 두 사람은 “정말 질긴 인연”이라고 할 만큼 사적으로 가깝다. 의리를 지킨 것이냐는 기자의 말에 조병규는 “상부상조다. 내 쪽에서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전했다. “<SKY 캐슬>이 끝난 후 드라마나 상업영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렇게 감독님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며 갈증을 해소하다가 이 작품에 대한 트리트먼트가 나온 거다. 처음엔 외계인이 아니라 어떤 범인을 찾는 내용이었는데, 한 공간에서 다양한 인물이 모여 마피아 게임 하듯 외계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발전됐다.”
무엇보다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는 “배우가 연기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이기에 “원래 도전적인 성향”이라는 배우에게 욕심났던 작품이다. “상업 작품에서 정확한 기능을 해줘야 하는 클래식한 연기도 좋아하고, 감독님에게 내 의견을 좀더 제시하면서 도전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독립 영화도 좋아한다. 마음가짐의 차이인지 메커니즘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언가를 채워나가며 만들어야하는 작품을 할 때는 준비 과정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이나 제작비가 부족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진 한도 내에서 좋은 작품을 뽑아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순간적으로 작품에 들어와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팀이 꾸려졌다.” 밀실 배경으로 79분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이 악물고 촬영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서로 말이 오가는 시퀀스가 빠른 스피드로 전개되어야만 했고, 코미디도 놓치고 갈 수 없었다. 때문에 연극하는 것처럼 촬영 들어가기 전에 리허설을 많이 진행했고, 애드립도 다 그 때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스태프들도 모두 <독고 리와인드>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고 감독님은 연출, 나는 오로지 연기만 하면 된다는 신뢰가 있어서 되게 거침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좀 거창한 소리일 수 있지만 내가 살아있음을 많이 느꼈다.”
당시 인터뷰를 함께한 김규종에게는 “되게 캐릭터가 다양한 형이다. 촬영하면서도 형의 어떤 행동에 좋은 의미로 모두가 놀랄 때가 많았다. 자기만의 개성이 정말 강하다”며 틈나는 대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연기하다가 ‘백마탄’ 캐릭터가 자꾸 산으로 갔다”는 말에 “그래야 하는 캐릭터”라고 말을 덧붙이고, “난 개성이 없다”는 말에 “그것이 바로 개성”이라고 맞받아치며 동료를 치켜세우곤 했다. 김규종 역시 “TV로만 보던 병규가 첫 리딩에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줘서 배운 게 많다. 되게 자유로운 연기자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동생에 대한 인상을 전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대학로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정말 얼굴도 안 가리고 편하게 온 거다. 이 친구가 정말 매력이 있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구나….” 조병규는 ‘프리한’ 모습이 매력으로 포장되는 게 민망했는지 “회사에서는 뭐라고 한다. 좀 가리고 다니라고. 오늘도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나왔는데 샵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한테 욕 엄청 먹었다. <나 혼자 산다>는 오히려 미화된 거다.(웃음)”며 너스레를 떨었다. “촬영 현장에서도 로션만 바르고 거울도 안 보고 면도를 하고 정말 자유롭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외모에 대한 건 남에게 맡기는 구나” 생각했다는 김규종의 증언에도 “그런 분들을 보고 배워서 그렇다. 정말 잘못된 이상을…. (웃음)” 이라고 반박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당시 <경이로운 소문>으로 첫 드라마 주연 데뷔를 앞둔 조병규는 “상업작품을 할 때는 아무래도 부담이 많다. 걱정이 많다”는 심정을 전했는데, 지금 드라마에서 이견없이 호평이 잇따를 만큼 근사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 같은 프로젝트에 기획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SKY 캐슬> 이후에 자신에게 필요한 작품이 이러한 독립영화라고 판단했으며, 현장에서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작품에 몰입했던 배우이기에 지금의 소문을 연기할 수 있던 게 아닐까. 내년 2월 개봉 예정인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를 보면 지금 그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이유를, 그 원천을 거슬러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경이로운 소문>의 소문이 보여주는 넉살은 원래 배우가 갖고 있는 모습과 꽤 겹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로 인터뷰하는 자리라는 것을 곱씹더니 ‘판타스틱 인터뷰’라는 코너명을 즉석에서 짓고, ‘부천’ 이행시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아이디어를 내더니 나중엔 기자에게도 이행시를 시키며 흥을 돋웠다. 정말이지 전문 방송인 뺨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이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갔다가 관객과의 대화(GV)를 하러 온 배우를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기자가 매고 있던 프레스 가방을 보고 “어디서 받을 수 있는 것이냐” “이건 기자들만 수령할 수 있냐”면서 호기심을 잔뜩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인터뷰 녹취 파일과 취재 노트를 아낌없이 털어 기사를 쓰고 나니 <경이로운 소문> 5회를 보러 갈 시간이 됐다. 주말이 끝나가는 건 아쉽지만 스트레스 없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를 만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카운터들이 어떤 악귀를 혼내주러 갈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