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지키기 위해 ZOOM으로 모인 강유가람·김경묵·김보람·박문칠·이길보라 감독
2020-12-25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상상마당 사람들’ 잃은 영화계, 감독들의 메아리만…

“KT&G라는 이름이 중요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안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믿고 함께해온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12월 23일 늦은 저녁, ZOOM으로 모인 강유가람(<이태원>), 김경묵(<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김보람(<피의 연대기>), 박문칠(<마이 플레이스>), 이길보라(<반짝이는 박수소리>) 감독이 모두 한 마음으로 발언했다. 13년간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자리잡아 독립예술영화의 자양분이 되어준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의 철수는 상상마당과 판권 계약을 맺은 감독이자 오랜 관객으로서 이들을 결집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10월, KT&G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 폐관 및 영화사업팀 철수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18인의 감독들(우문기·이소현·강유가람·이길보라·연상호·이광국·김경묵·이유빈·서은영·김소연·이승문·라야·안주영·김보람·박문칠·신연식·강진아·김종관)은 10월 27일 SNS를 통해 성명서 발표와 폐지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고, 같은 날 KT&G 사회공헌실은 ‘상상마당 시네마는 문을 닫지 않습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공간 유지, 그리고 ‘재정비’에 초점을 둔 입장문으로 여론을 잠시 무마시킨 KT&G는 이후 상상마당 운영 대행사인 컴퍼니에스에스를 통해 영화사업팀에 권고사직 조치를 내렸고, 권고사직을 거부한 직원 2명을 논산 캠핑장, 디자인 소품을 판매하는 디자인스퀘어 등 기존 업무와 전혀 무관한 부서로 발령했다. 이중엔 상상마당에서 13년을 함께한 김신형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장도 포함돼 있다.

감독들이 말하는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의 가치

‘#상상마당시네마를지켜주세요’ 해시태그 운동 이후 모인 3137명의 연명서를 KT&G 사회공헌실로 보낸 감독들은 최근 날아든 황당한 소식 앞에서 저마다 난색을 표했다. 이길보라 감독은 “배급 계약을 맺을 때 많은 감독들이 그 회사의 라인업을 중요하게 본다. 지난 시간 동안 헌식적으로 일한 영화사업팀 직원, 배급작 감독들, 홍보사 인력들이 다 함께 상상마당의 브랜드를 만들어온 것인데, 그들과의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지난 1년여간 신작 <우리는 매일매일>의 계약을 조율하다가 KT&G로부터 졸지에 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강유가람 감독은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이 독립영화 생태계에 끼친 조류를 긍정적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배급 지원을 받지 않으면 개봉의 기회를 얻기가 사실상 어려울 정도로 배급 비용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상상마당은 자체 사업비로 배급 지원을 해주는 유일한 곳이었다. <이태원>도 상상마당의 지원에 힘입어 개봉했다.” 박문칠 감독 또한 “사회공헌 목적이라는 명분 아래 영화사업팀 내부에서 독립영화감독들을 위해 수익 배분에 있어서도 많은 배려를 해줬다. KT&G가 수익성을 이유로 기존 운영 방식을 점검하거나 사업을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오랜 시간 일한 인력들을 이런 식으로 배제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보탰다. 김경묵 감독은 “상상마당 영화사업팀 내부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감독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공익적 측면에서 절차상의 문제 제기를 하는 것과 더불어 상상마당과 판권 계약을 맺은 감독으로서는 향후 배급 문제 역시 고민되는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부당함과 난처함 사이

ZOOM 회의에 참가한 김경묵, 이길보라, 강유가람, 김보람, 박문칠 감독(왼쪽부터 시계방향).

현재 KT&G측은 기존에 계약된 판권 관리 업무를 지속할 1인만 남겨두고 영화사업팀 전원의 권고사직 수락 혹은 타 부서 발령을 낸 상태다. 혹은 타 부서로 발령낸 상태다. 이길보라 감독은 “감독들의 성명서 발표 이후 본보기식으로 판권 관리직 1인만을 남겨둔 것 또한 졸속에 가까운 처리”라고 답했다. 영화사업팀의 전원 해고 위기 이후 계약 해지를 결심했던 김보람 감독은 사업팀 내부에 직원 1인이 남게 되자 “해당 직원이 불이익을 당할까 계약 해지를 마음대로 논의할 수도 없는” 난처함을 토로했다. “이미 계약한 영화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내부적으로 한 사람이 희생해 마지막 차선책을 선택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함께했던 동료로서 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책감도 든다”는 게 김보람 감독의 말이다. 대담에 모인 감독들은 만약 KT&G를 향한 보이콧의표명으로 계약 해지를 원하는 의견들이 모일 경우 추후 공동 대응할 계획도 있음을 밝혔다.

24일 전화 통화를 통해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김신형 영화사업팀장은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이 이전과 같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판권자의 요청이 있으면 계약 변경이나 해지 등에 대해서 수용하겠다는 사측의 의사를 확인했다”면서 계약 관계인 감독 및 제작사의 부담을 덜겠다는 의지도 들려줬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김신형 팀장은 통화 끝에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전 영화사업팀 팀장이었던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는 “문화사업으로 1년씩 예산이 배정되어서 사실상 장기 비전을 세우기 힘든 구조 속에서도 모두 애정을 갖고 독립예술영화를 지원·발굴하기 위해 애써온 곳”이라고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을 설명하면서, “사회 공헌을 취지로 설립되었으나 운영 과정에서는 윗선에서 수익에 대한 압박이 꾸준히 있었다. 그럼에도 제작-배급사의 수익 분배율을 8:2까지 조정할 정도로 내부 직원들이 모두 순수한 열정으로 일했음을 KT&G가 일체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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