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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A.I. 가라사대
2021-01-12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드라마 속에서 인공지능(AI)의 오류는 종종 로맨틱한 계시로 쓰였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서 벗어난 곳을 안내해 운명의 상대 앞으로 이끌거나, AI 스피커가 엉뚱한 대답을 하며 앞으로 일어날 만남과 사건을 예언하기도 했다. 한데 MBC every1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의 냉장고 AI ‘장고’는 맛이 간 인간을 귀신같이 골라낸다. 펠리컨 전자 ‘음성인식 스마트 가전 유비쿼터스 혁신개발팀’ 과장 대행 서지성(송하윤)은 말한다. “음식물이 어떤지를 말해 달랬더니 인간이 어떤 상태인지 감별하고 있는 미친 냉장고”라고.

사용자가 전날 무엇을 먹었는지 알려주면 보관 중인 식재료를 바탕으로 다음날 메뉴를 추천해주는 간단한 기능도 자꾸 실패해 지성의 애를 먹이던 장고는 기판 합선 이후, 허용되지 않은 데이터를 긁어와 인간을 판별하기 시작한다. 개개인의 카드사용 내역과 은행 잔고, 사적인 메신저, SNS 기록, CCTV 영상까지 뚫고 분석한다. 장고는 지성과 결혼을 앞둔 치과 의사 방정한(이시훈)이 지성의 집에 설치한 홈캠 영상을 캡처해 속옷만 입은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고 성적인 화젯거리로 삼았던 것까지 낱낱이 밝혔다. 당연히 파혼. 장고에 관해 알지 못하는 선배 탁기현(공민정)은 결혼 전에 헤어졌으니 ‘조상신이 도왔다’고 할 정도였다.

장고는 이 밖에도 법인카드를 호텔 사우나와 바에서 사적으로 이용하는 직장 상사, 악성 루머가 모이는 사내 익명 게시판 관리자 등을 특정해낸다. 인간을 사찰하는 냉장고의 위력을 경험한 지성이 장고를 어떻게 대할지가 궁금했다. 인공지능의 오작동을 알 수 없는 조화 혹은 신비한 마법의 자리에 두는 이야기도 더는 신선하지 않다. 장고가 분석한 결과물은 부정할 수 없어도 그 과정은 파악해야 하는 오류로 보는 지성이 장고를 마냥 천진하게 의지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발자답게 냉장고에 깃든 조상신의 정체, 그 진실에 가닿을 거란 믿음이 있다.

VIEWPOINT

AI 세탁기라면?

만나선 안될 상대를 분별하는 스마트 가전이 세탁기로 만들어졌다면, 이름은 ‘탁기’가 되었을까? 전날 입은 옷을 알려주면 인간이 어떤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며 오염되었는지, 빨아서 다시 쓸 수 있는 인간인지 알려주는 기능을 상상해본다. 무엇이 되었든 작가진은 어설픈 반성에 ‘취급 주의’를 달게 분명하다. 지성이 속옷만 입은 사진을 치과 의사 단톡방에 공유했던 방정한은 “나도 너희들도 쓰레기”라고 후회한다. 그리고 곧장 지성의 집에 무단침입해 반성하는 자신을 어필하고 “너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를 봐달”라고 한다. 화장실 창틀에 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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