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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제로> 이대희 감독 - 떼 쓰는 아기 보며 ‘불괴물’ 떠올린 사연은
2021-01-28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횟집 생선의 시선을 그린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의 이대희 감독이 돌아왔다. 이번엔 물이 아닌 불이다. 사람들이 스트레스 해소 음료 ‘스트레스 킬러’를 마시며 살아가는 현대사회. 음료를 과잉 복용한 탓에 불괴물로 변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40대 평범한 가장인 짱돌은 불괴물을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고 ‘불괴물 잡는 히어로’가 된다. 퇴근길 횟집 수조를 보고 <파닥파닥>을 떠올렸던 이대희 감독은 주말에 아이들을 돌보다 막내딸이 떼쓰는 모습을 보고 <스트레스 제로>를 떠올렸다.

“떼를 쓸 때 아기들은 표정이 순간적으로 바뀌면서 어른이 짓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 버리지 않나. 그 순간 불을 확 태워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영감을 받은 이대희 감독은 그 자리에서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불괴물을 그렸다. 이렇게 탄생한 3D애니메이션 <스트레스 제로>는 <뽀로로> <코코몽> 시리즈를 제작한 302플래닛과 이대희 스튜디오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디즈니와 픽사처럼 공생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을 꾸린 이대희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9년 만의 신작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강철 아빠>란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레옹>의 로봇 버전 애니메이션영화이고, 딸과 아빠의 이야기다. <강철 아빠> 외에도 아이템 기획을 하면서 <스트레스 제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영화진흥위원회 본편 지원 사업에 먼저 선정됐다. <스트레스 제로>를 먼저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작품마다 운명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갈 놈들은 먼저 간다. (웃음)

-횟집에서 직접 일하며 시나리오를 썼던 <파닥파닥>과 달리 이번에는 연출만 맡았다.

=당시 내가 작가로서 안 먹히는 건가 생각했다. 내 정서가 대중적인 영화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걸까 싶었고 내가 가진 표현을 펼칠 시장이 없으니까 <파닥파닥>과 같은 작품을 또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하고 계속하고 싶은데…. 그래서 작가로서 나를 떼내 <파닥파닥>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그림책으로 풀고 있다. 생각날 때마다 그려둔 단편을 모아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본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야기인데 어디까지 관여했나.

=시놉시스와 컨셉까지 관여하고, 각본에는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스트레스 제로>는 기성의 전문가 집단인 302플래닛을 만나서 한 작업이다. 규모가 커졌고 퀄리티를 내려면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했다. 실사영화 속 배우 한명이 할 역할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 디자이너, 애니메이터, 성우로 나뉘어 있다. 거기다 한 캐릭터를 애니메이터 20명이 쪼개서 작업한다. 실사영화의 촬영감독이 할 일 역시 다 쪼개져 있는데, 카메라 레이아웃만 잡는 분이 있고 라이팅, 합성까지 역할들이 다 나뉘어 있다. 연출가가 준비가 돼 있어야 각자에게 디렉션을 줄 수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불괴물의 모양이 동그란데 빌런인 준수의 불괴물은 뾰족하다.

=모든 불괴물이 나쁜 마음을 갖고 괴물이 된 건 아니다. 살다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화난 아기가 된 것이다. 준수의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이들이 같이 보는 작품이기 때문에 따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연출자로서 준수는 자살했다고 생각했다. 준수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요구하던 대로 살았고, 커서는 회장이 시키는 대로 살았지만 잘 안됐다. 준수는 자기가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모든 걸 놔버리고 괴물이 된다. 준수의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직관적으로 느껴지도록 뾰족한 괴물로 만들었다. 영화에 뾰족한 괴물이 두개 나오는데, 준수와 실험용 쥐다. 자세히 보면 준수가 연구하는 방과 쥐가 갇힌 방이 모두 유리방이다.

-한강, 잠실, 용산, 상암 등 서울의 이곳저곳이 영화의 무대다.

=애니메이션 작업 들어가기 전에 실제 장소에 가본다. 실제 환경을 봐야 상상이 되는 것 같다. 강남 테헤란로, 한강 공원, 잠실 등에 가서 사진을 찍어서 작품에 담았다. 당시 사무실이 상암동 DMC 주변이었는데, 마지막 장면은 상암동 하늘공원쪽을 배경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조가 불괴물을 피해 오토바이를 타고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보광동인데, DMC로 옮기기 전 사무실이 보광동에 있었다. (웃음)

-우리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옷이나 털의 질감에 놀라지 않나. <스트레스 제로> 속옷의 질감 역시 놀라웠다.

=빛을 받아 질감이 표현되는 걸 애니메이션에서 셰이딩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가짜 세상이다. 실제와 같은 질감이 잘 나와줘야 설득력이 있다.

-기술적으로 가장 작업하기 어려웠던 장면은 무엇인가.

=큰 괴물이 된 준수가 나오는 신.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갔다. 일단 걔가 등장하면 도시들을 다 부수고 컴퓨터 렌더링 시간도 오래 걸린다. 수백배 크기로 불을 키우기 때문에 시간도 그만큼 오래 걸린다.

-연출자로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었나.

=준수가 괴물로 바뀌기 전에 눈물을 흘린다. 그때 흐르는 음악이 <날울게 하소서>다. 악당이 탄생하는 장면인데 슬프다. 준수는 괴물이 되지만 괴물이 되고 싶지 않고 영화의 음악도 함께 울고 있다.

-빌런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메인 캐릭터인 짱돌과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해냈나.

=세 캐릭터는 각자 다른 인물들이라기보다 한명의 인물인 것 같다. 짱돌은 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해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하고픈 걸 마음대로 하면 가족들이 위험해지는 것처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를 각성하고 나서도 뭔가를 해낸다는 건 그 자체로 히어로다. 고 박사는 뭔가를 만들어서 성공하고 싶지만 비주류에 속해 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인정을 못 받는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타조는 ‘돌싱’이다. 타조는 뭔가를 특별히 욕망하지 않고 지금 재밌는 걸 해보는 스타일이다. 어쩌면 세 인물의 욕망은 모두 내게서 출발한 것일지 모른다. 실제로 작업하는 40대 남성 팀장들도 많이들 공감했다. 반면 젊은 여성 직원들은 엄마 캐릭터를 두고 구시대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지적받은 장면은 많이 덜어냈다.

-안 그래도 묻고 싶었다. 짱돌의 가족 묘사가 성별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경을 많이 썼는데도 역할 분담을 하다보니 완벽할 수는 없었다.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 같다. <스트레스 제로>는 가족영화다. 가족은 남녀가 만나 어떤 역할 같은 게 생기다 보니 그런 종류의 이슈가 생길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많이 좋아했지만 편집한 장면도 있다. 불괴물을 피해 달리는 차 안에서 물병이 터지자 엄마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방에서 우산을 빠르게 꺼내 짠 하고 아이들에게 씌워준다. 어쩌면 주인공 세 친구는 세상을 구하는데, 엄마는 이와 상관없이 아이들만 챙기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은 편집했다.

-차기작인 <강철 아빠>는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나.

=영화진흥위원회 본편 지원을 받았고 시나리오 작업을 끝낸 뒤 스토리보드와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6월부터는 본작업에 들어갈 듯하다. 개봉까지 2년 정도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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