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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엄마의 미친봉고' 백승환 감독 "평생 제사 지내는 어머니 생각하며 만들었다"
2021-02-04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여자들이 들고일어났다. 1월 21일 극장 개봉한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는 명절 때마다 전을 부치고 제사를 준비하던 여성들이 부엌을 박차고 나가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소동을 그려내는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반란을 주도하는 이는 큰엄마(정영주)다. 예상치 못한 큰엄마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여자들과,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자들의 우스꽝스러움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속이 시원하고 통쾌하다. 이 영화는 <창간호>(2018), <첫잔처럼>(2019) 그리고 개봉을 앞둔 <더블 패티>를 연출한 백승환 감독의 신작이다.

-명절 때 큰엄마가 전을 부치다 말고 여자들만 데리고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설정이 통쾌하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네티즌의 사연을 바탕으로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써서 보여주셨는데 여성들이 명절 때 소소한 반란을 일으키는 설정과 글이 무척 재미있었다. 평소 여성 서사에 관심이 많았고,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가는 이야기라 도전하고 싶었다. 여성 해방 같은 큰 주제보다는 평생 제사를 지내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나.

=누나, 남동생과 함께 삼남매다. 우리 집이 큰집이라 어머니가 매년 명절 때 두번, 제사 한번 다 챙기셨다. 우리 삼남매도 어머니와 함께 제사를 준비했다. 시나리오를 처음읽었을 때 각색을 직접 해보고 싶었다.

-각색할 때 신경 쓴 부분은 뭔가.

=크게 두 가지였다. 제작진끼리 현장에서 ‘팀봉고’와 ‘팀본가’로 구분해 불렀는데 전자는 큰엄마를 따라나선 여자들이고, 후자는 집에 남겨진 남자들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팀봉고’ 사이에서 갈등 요소가 많았다. 그런데 그것까지 다루기엔 러닝타임이 넉넉지 않았고, ‘여(자의)적(은)여(자)’ 상황은 재미가 없더라. 그보다는 여성끼리 연대하는데 더 공을 들이고 싶었다. 두 번째는 <델마와 루이스>가 그랬듯이 여성들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길 바랐는데 여러 이유 때문에 마음처럼 결말을 맺지 못해 아쉽다. ‘팀본가’의 경우 모두가 집에서 술을 마신 뒤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길 바랐다. 여성들은 멋지게, 남성들은 지질하게 보여주는 것이 각색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다.

-여자들이 봉고차를 타고 향한 곳이 군산이다. 왜 군산인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를 공동 제작하면서 장률 감독님에게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장률 감독님이 세트보다 사연이나 역사가 있는 공간에서 촬영하는 걸 선호하시지 않나. 제작부가 예쁜 장소들을 많이 찾아왔는데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잘 아는 군산에 가자고 제안했다. 장률 감독님이 <삼포 가는 길>에 오마주를 바치면서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찍었듯이 나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 오마주를 바치고 싶었다. 군산의 두 군데에서 찍었는데 하나는 동국사고, 또 하나는 군산역 근처 칼국숫집이다. 두곳 모두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박해일, 문소리 선배가 찾은 공간이다. 동국사는 일본 사람이 지은 절로, 일제의 조선 침략을 참회하는 글과 소녀상이 있다. 칼국숫집에서 찍을 때 문소리 선배를 모시고 싶었는데 여러 일정 때문에 모시지 못한 건 아쉽다.

-명절에 모인 가족만 13명에 달할 만큼 등장인물이 많은데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부담스럽진 않았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캐릭터가 너무 많아 누군지 헷갈렸다. 배역 이름을 바꾼 것도 그래서다.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역할을 골고루 배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큰엄마를 연기한 정영주 배우가 서사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고, 예비 며느리 은서(김가은)가 관찰자 시점으로 리액션을 주로 하기로 했다. 본가에서는 유성주 배우가 맡은 큰아버지가 가장 많이 ‘버럭’하고, 나중에 반성하는 인물이다. 다만 시어머니의 경우 황석정 배우가 푼수기 있는 모습과 지역 구분이 어려운 사투리 등을 준비해왔는데 신경 쓰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캐릭터를 다 만들어준 황석정 배우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

-정영주, 김가은, 황석정, 유성주, 이지현, 조달환 등 이 많은 배우를 어떻게 모았나.

=상대방이 먼저 이별하자고 얘기하지 않는 한 먼저 이별하자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오랜 인연인 배우들이 많다. 37살이던 지난 2017년, 처음으로 단편영화 <대리 드라이버>를 연출했는데 조달환 배우가 출연했다. 그 뒤로 <창간호> <첫잔처럼> <큰엄마의 미친봉고>까지 장편 세편 모두 조달환 배우가 나왔다. 정영주 배우는 <창간호> 때 인연을 맺은 뒤로 연달아 세편을 함께했고, 황석정 배우는 정영주 배우의 추천을 받았다. 유성주, 이지현 배우는 공연을 보고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함께하게 됐다.

-여자들이 큰아버지의 신용카드를 긁으면서 돌아다니고, 휴대폰으로 결제 문자를 확인할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큰아버지의 상반된 모습이 재미있더라.

=그 시퀀스를 통해 가사 노동의 현금화를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 전, 정영주 배우가 써온 대사가 있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여성 노동시간이었다. 어머니들의 가사 노동에 대한 보상이현금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큰아버지가 문중 땅을 판 돈의 일부를 큰엄마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여자들이 옷을 살 때마다 큰아버지의 휴대폰에 결제 문자가 가는 게 더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CJ엔터테인먼트 배급팀, 쇼박스 투자팀 등 대기업 투자배급사 출신인데 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어렸을 때 감독과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영화감독이 되는 정식 방법이 없어 방송사 3사 드라마 PD 시험을 쳤지만 연달아 낙방했다. 인디스토리를 너무 가고 싶어 면접을 봤는데 또 떨어졌다.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님이 “이 바닥에 있으면 계속 볼 거니까 파이팅”이라는 응원을 이메일로 보내주셨다. 그래서 CJ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다. 보통 투자사 직원들은 투자팀을 가고 싶어 하는데 나는 배급팀 업무를 즐겼다. 투자배급사 생활도 즐거웠지만 연출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기 위해 회사를 나와 제작사 백그림을 차렸다. 창립작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2016)를 제작한 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찍기 전 첫 단편영화 <대리 드라이버>를 만들었다. 그 영화가 미쟝센단편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재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아 여기까지 오게 됐다.

-차기작은 2월 개봉하는 <더블 패티>인데.

=<더블 패티>를 <큰엄마의 미친봉고>보다 먼저 찍었는데 개봉 순서가 바뀌었다. <더블 패티>는 꽃미남 씨름 선수(신승호)와 앵커 지망생(배주현), 각기 다른 궤도로 살아온 두 청춘이 서로의 궤적을 잠시 공유하면서 세상을 향해 나서는 이야기다.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많다고 들었다.

=연출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열심히 쓰고 있다. 임신, 출산, 육아, 캠핑만 안 해도 시나리오 쓸 시간은 많다. 지금 완성된 시나리오만 3개 정도 있고, 앞으로 더 열심히 쓰고,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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