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나 ‘영드’와 달리 ‘프드’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다. 거센소리에 같은 모음이 중복되어 발음하기 매끄럽지 않다는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라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 팬들에게 그만큼 영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프랑스인들도 자국 드라마나 시리즈물에 그다지 높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감독과 제작사, 배우들도 드라마/텔레비전에 대해서는 장편/극장보다 ‘쉬운 차선책’, 좀더 막말로 하자면 ‘변절’과 연관지어왔다. 단적인 예로 2015년 넷플릭스가 제작한 첫 프랑스 드라마 <마르세유>(출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찬반이 엇갈린 애매한 시청자들의 반응과 달리 “산업 재난”(<르몽드>), “경이롭기까지 한 놀라운 실패작”(<텔레라마>) 등 평단의 일관적인 비판을 받고 결국 시즌3 방영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이 영화를 극장 개봉하지 않겠다는 넷플릭스의 정책에 프랑스 영화인들이 일제히 반발했고, 이에 영화제측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은 프랑스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딥 프레임을 건드리면 행동은 바뀌는 법.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으로 2020년 프랑스영화 극장 관객수는 전년 비교 70% 하락했고, 지난해 10월 30일 이후 극장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그러는 사이 굵직굵직한 영화계 인사들이 OTT 서비스와 TV드라마에 본격 투입됐다.
특히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인물 2위로 뽑힌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의 주연배우 오마 사이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드라마 <뤼팽>에서 음식 배달원, 청소 노동자, 백만장자를 넘나드는 천의 얼굴을 가진 괴도 신사 뤼팽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작품의 연출은 <인크레더블 헐크>(2008), <타이탄>(2010),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루이 르테리에가 맡았고, 총지휘는 고몽사의 책임자 시도니 도마스와 부책임자 크리스토퍼 리안데가 맡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참여진의 이름과 타이틀만으로도 영화 개봉 전부터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월 8일 처음 방영된 <뤼팽>은 4주 만에 세계적으로 7천만 플랫폼 가입자를 유혹했고, 넷플릭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시청률 1위를 차지한 프랑스 드라마가 되면서(참고로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에서 넷플릭스 톱10 리스트에 오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숨겨뒀던 ‘프드’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제작진은 현재 시즌2의 여름 개봉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뤼팽>이 한번의 지나가는 파도가 아니라 ‘프드’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