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영(김향기)과 영채(류현경), 두 여성의 자립과 동행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다. 보호종료아동이자 아동학과 졸업반인 아영과 젖도 덜 마른 상태에서 일 나가야 하는 싱글맘 영채. 그리고 영채가 일하는 술집의 사장 미자(염혜란)까지,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체화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육아, 복지, 가족에 관한 큰 논의를 품고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건드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점에 <아이>의 성취가 있다. 첫 영화 <아이>를 만든 김현탁 감독을 만나, 그가 이 영화에 얼마나 진심을 담으려 했는지 들었다.
-설을 앞둔 2월 10일 영화가 개봉했다. 설 연휴는 어떤 마음으로 보냈나.
=개봉 전까지도 후반작업하느라 설 연휴라는 생각도 못했다. 영화를 완성하자마자 덜컥 사람들에게 선보인 기분이다. 영화와 계속 밀착해 지냈고 거리두기하며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아직은 영화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은 것 같다.
-<아이>는 어떻게 구상하고 쓴 이야기인가.
=2014, 2015년쯤 초고를 썼다. 처음엔 그냥 썼다.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고, 뭔가를 쓰고 싶었고, 그렇게 쓴 나의 첫 장편 시나리오다. 처음엔 주인공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고 베이비시터에게 그 일을 뒤집어씌우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영화와 비교하면 세상 어두운 비극과 파국이었다. (웃음) 한창 영화를 공부할 때라 영화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몰두해 있었다. ‘이런 영화를 찍고 싶어’가 아니라 ‘영화는 이래야 해’ 하고 접근했던 것 같다. 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썼지?’ ‘난 왜 이 인물들을 탄생시켰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길었다. 영화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는 걸 두려워했다. 그런데 결국 아영과 영채라는 캐릭터는 나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걸 인지했다. 나도 <아이>와 함께 공부하며 커온 것 같다.
-보호종료아동 아영과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미혼모 영채.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두 세계 모두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세계는 아닌데, 어떻게 두 캐릭터가 탄생했을까 궁금하더라.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고 어머니가 혼자 날 길렀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강박이 있었다. ‘엄마가 욕먹을 짓하면 안된다, 사람들에게 버릇없다는 소리 들으면 안된다, 어긋나면 안된다’는 강박. 아영이 부모 없이 컸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아영에게 투영된 것 같다. 어머니가 시내에서 장사를 했고, 그때 유흥업소 직원들이 가게에 자주 왔다. 영채는 어릴적 어머니 가게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봤던 여성들의 모습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거칠어 보이지만 여리기도 하고, 잘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들. 이들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의 큰 매력은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거나 소외된 인물들이 주인공인데, 이들의 삶에 밀착해 상투성을 피한다. 그런 대목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의 진심이 느껴졌는데, 캐릭터를 그릴 땐 어떤 원칙을 세워두었나.
=카메라의 시선이 관조적이어선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인물들의 얼굴을 많이 찍었다. 부담스러워도 많이 담자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서 인물들에게 다가갔고, 가까이서 호흡하고 같이 움직였다. 또 (술집의) 룸 안으로는 카메라가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아영이 지쳐서 힘들어하는 순간은 많이 덜어냈다. 힘들어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제 뭘 할 건데?’ 그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한 행동을 보여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캐릭터를 다룰 땐 좌절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인물을 멈춰 세우기 싫었다.
-보호종료아동의 죽음을 다루는 장면도 그렇고 결말도 그렇고 ‘가족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가족에 대해서도 계속 얘기하고 있다. 서브플롯으로 아영의 보육원 친구들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부모를 찾아가는 시퀀스가 나올 법도 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는 쓰기 싫었다. 대신 ‘이들에게 가족은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영채의 이야기에서 미자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지금 현재 영채에게 가족 같은 존재가 미자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 중 하나는 이들의 자살률이 다른 10대, 20대의 그것보다 몇배나 높다는 거였다.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그것을 외면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김향기, 류현경, 염혜란 세 배우 덕에 든든한 순간도 많았겠다.
=영채는 잘못하면 식상한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류현경 배우가 지금의 영채를 완벽하게 만들어줬다. 보디랭귀지가 정말 풍부한 배우고, 디테일한 손짓, 발짓으로 평범한 대화 신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김향기 배우는 내가 ‘선생님’이라 부를 정도로 든든했다.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가 “언니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인데, 이 대사도 향기 배우가 만들었다. 염혜란 선배님이야 워낙 엄청나게 연구하고 고민하는 분이라 내가 말을 더 보탤 것도 없었다.
-영화에 아이와 동물이 나오면 고생한다고 하는데 영채의 6개월 된 아들 혁이를 연기한 아기와는 어떻게 작업했나.
=혁이를 연기한 쌍둥이(탁지안, 탁지온)가 외부의 신호나 자극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낯도 많이 가리지 않아서 ‘그럼 됐다’ 하고 느낌이 왔다. 쌍둥이가 번갈아가며 촬영했고, 아이들의 생활리듬을 고려해 촬영 일정을 짰다. 아이들이 밥 먹을 시간에 밥 먹는 장면 찍고, 잘시간에 자는 장면 찍고. 까르르 웃는 장면을 찍어야 할 때 아이가 자면 얼른 세팅을 바꿔서 자는 장면부터 찍기도 하고. 스탭들이 고생 많았다. 또 향기 배우는 사진만 보고도 쌍둥이를 구분해내더라. 우리는 몽고점의 유무로 쌍둥이를 구분했는데. (웃음)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대학 땐 영화가 하고 싶어 단편영화 스탭으로 일했다. 그러다 다큐멘터리 회사에서 조연출 생활을 했고, 암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회사를 그만두고 대구에 내려갔다. 그때 시간이 생겨 단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게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단편영화를 찍게 됐고, 제대로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 2014년에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창작자로서 계속해서 관심이 가는 주제나 이야기가 있다면.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는 뭐지?’ 그런 생각을 매번 한다. <아이>를 첫 영화로 선보였지만 ‘이게 제 스타일입니다’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가족이라는 테마, 가족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계속 내 주변을 맴돌고 있을 것 같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인물,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인물, 그런 인물들이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이야기에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