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기왕이면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얽히고 설키며 서로의 능력을 뽐내는 이야기가 좋다. 그냥 초능력만 뽐내도 될 것을, 요즘 영화 속 친구들은 왜들 그렇게 서로에게 유치한 별명을 붙이고 이상한 쫄쫄이를 입어대는지. 나는 슈퍼히어로 장르가 유행하는 세태에 불만이 많은 편이다.
사실 이야기 노동자에게 초능력은 손쉽게 스펙터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치트키 중 하나다. 주인공들에게 뻔하디뻔한 능력 몇개만 쥐여줘도 사람들이 금세 ‘우와’ 하며 빠져들게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대개 초능력을 좋아한다. 이건 지겹도록 오래된 전통이다. 4천년 전 <길가메시 서사시>부터가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의 이야기였고, 그리스신화 속 신들도 초능력을 하나씩 가졌다. 심지어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지 않던가. 기원전에 쓰여진 힌두 경전에서조차 신도들이 기나긴 설법을 지루해할까 봐 초인들의 전쟁 이야기를 도입부에 삽입하곤 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초능력 이야기에 끌린다. 누구나 한번쯤 초능력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했었고, 혹시 내게 그런 능력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착각해본 경험이 있다.
그런 탓에 제대로 된 초능력 이야기를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흔한 도구인 만큼 능숙하게 다루기 어려우며, 남발된 탓에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게다가 워낙 반복되어온 소재이기에 써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이미 고갈된 상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참신한 초능력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폴 맥기건 감독의 <푸시> 역시 이런 뻔하디뻔한 초능력 영화 중 하나다. 염력, 예지력, 텔레파시,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자를 감시하는 비밀 조직, 새하얀 병동에서 이루어지는 불법 실험, 기억상실, 뭔가 있어 보이는 과묵한 선글라스 악당, 초능력을 강화하는 위험한 약물…. 아이고, 나열된 단어만 읽어도 벌써 극장에서 열번은 보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줄거리도 딱히 특별하진 않다. 지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자주인공이 신비로운 소꿉친구(사실 소꿉친구인지 명확지 않다)와 재회해 자신의 혈통과 힘을 깨닫고 거대한 적을 무찌른다는 왕도적 스토리. 영화는 하이틴 판타지 소설과 소년 만화에서 지겹도록 반복된 원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그만큼 좋지 않은 클리셰를 다 갖춘 작품이기도 한데, 대책 없이 뻔한 실수를 반복하는 주인공이나 그런 주인공에게 순순히 죽어주는 편리한 악역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부터 저 사람들이 대체 왜 저러나 싶어지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주연배우인 크리스 에반스가 이런 지질이 주인공 역할을 정말 끔찍하게 못한다는 거다. 그가 캡틴 아메리카가 된 이후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물론 <푸시>가 <어벤져스>보다 먼저 촬영된 영화지만 이제 우리는 그를 캡틴과 분리해서 생각할 방도가 없다. 크리스 에반스는 이 영화에서 지질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정말이지 절묘하게 어정쩡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겠다만.
한껏 욕을 늘어놓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뭐라든 내 마음속 최고의 작품이 하나씩은 있지 않던가? 내게는 <푸시>가 그런 작품이다.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석 같은 영화. 언젠가 초능력 소설을 쓰게 된다면 <푸시> 같은 작품을 쓰리라 매번 다짐할 정도다.
비록 깔끔하게 엮어내진 못했지만, 이 영화에는 너무나 흥미롭고 매력적인 재료들이 가득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지점은 이 작품이 초능력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90년대 로큰롤 뮤직비디오처럼 감각적이고 호사스러운, 시각 매체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시도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SF 작가로서 이런 자극은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언’과 ‘기억’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는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자인 ‘와쳐’와 기억을 조작해 타인을 조종하는 초능력자 ‘푸셔’가 서사의 거대한 두축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와쳐의 예언에 의해 미래를 속박당하고, 푸셔의 조작에 의해 자신의 과거를 의심하는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더해, 다수의 예언가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미래는 점차 복잡하게 뒤엉켜간다.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주인공과 타인의 미래를 훔쳐보는 악역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 서로의 기억을 편집하고 조작하는 두 진영의 치열한 정보전. 그리고 후반부의 참신한 트릭까지 합쳐지면 꽤나 매력적인 두뇌 싸움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왔냐고 묻는다면 글쎄…. 각본이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좋았을 텐데.
매력적인 초능력자들 중에서도 특히 다코타 패닝이 연기한 예언가 ‘캐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열세살 소녀에게 주위 사람들은 상영시간 내내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캐시는 꿋꿋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을 그려 미래를 예언하지만 정작 그림 실력이 완전 꽝이라는 설정도 재미있다.
이처럼 과거도 미래도 엉망으로 조작된 이들에게 과연 자유의지는 존재할까? 꽤 심오하고 흥미로운 주제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설정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거대한 대의도 개인적인 동기도 상실한 채 누군가가 깔아놓은 계획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때문에 관객인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작정하고 이 주제를 깊게 파고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 영화의 또 한 가지 사랑스러운 요소는 홍콩이라는 독특한 무대다. 로케이션과 세트의 구분이 어렵지만 꽤 그럴싸하게 촬영된 홍콩의 골목골목은 정말 아름답고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많은 초능력자들이 그 좁은 도시 안에 숨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정말이지 홍콩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아닐까.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방문하기 어려워진 탓에 예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기껏 홍콩을 무대로 삼았으면서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건 온통 서양인이고 그나마 등장하는 홍콩 사람들은 전부 무식한 범죄자뿐이라든지. 그나마 인상 깊게 등장하는 여성 인물마저도 뻔한 눈화장에 뻔한 일자 앞머리를 하고 있다든지.
<푸시>는 보석처럼 훌륭한 재료를 한껏 채워넣은 영화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의 재료를 그러모은 탓에 무엇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펑 터져버린 안타까운 작품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최고로 흥미로운 영화겠지만 누군가에겐 최악의 시간 낭비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이런 저런 머릿속 의심을 깨끗이 놓아버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초능력 영화도 드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