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경은 강해졌다. <소셜포비아>의 ‘관종 악플러’ 레나로 데뷔해 특유의 불안하고 날 선 기운으로 주목받았지만, <고백>에서는 어느덧 다부진 경찰이 되어 주변 여성들에게 손을 뻗는다. 국민 1인당 1천원씩 모금해 1억원을 마련하라는 유괴범의 등장에 대중이 동요할 무렵에도 그가 연기한 지원은 차분하고 명민하게 사건의 진위를 의심한다. 유괴 사건에 얽힌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과 학대 피해아동인 10살 소녀 보라(감소현)의 특별한 관계도 곧잘 알아본 지원은 이윽고 뚝심 있는 해결사가 되어 관객이 영화속에서나마 시름을 덜게 만든다.
<고백>에서의 활약이 있기까지, 스크린에서는 <울보> <타클라마칸> <박화영>이, 안방에서는 드라마 <최고의 이혼>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었다. 찬찬히 크레딧에 이름을 보탠 끝에 대중의 기호 속 하윤경이라는 이름을 새긴 그는 올해 더욱 견고해진 마음가짐으로 30대를 맞이했다.
-<고백>은 어떤 점에서 끌렸나. 유괴와 아동학대에 관한 사회적 메시지가 바탕이 되는 동시에 범죄 추리극으로서 장르적 긴장감도 분명한 작품이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시나리오의 대사 하나, 지문 하나에 감독님이 정말 진심으로 접근하시는구나 하고 느꼈다. 또 보통 촬영을 하다보면 감독님들이 어쩔 수 없이 가혹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서은영 감독님은 결코 그런 순간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배우가 먼저 테이크를 더 가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로 많이 배려해주셨다.
-가진 열의에 비해 현실적으로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면에서 지원은 관객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까.
=그래서 감정을 어느 수위까지 표현해야 할지 참 어려웠다. 지원 자신도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인물이기에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앞장서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디테일은 있다. 다만 정의감만 앞서서 해결하지도 못할 일을 벌여놓는 사람처럼 보이면 관객과 자칫 멀어질 수 있겠다는 우려도 컸다. 해결해주고 싶은데 무언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 그 무력한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소셜포비아>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던 악플러 레나, <울보>의 반항적 10대 하윤처럼 초창기에 맡았던 역할들을 떠올려보면, <고백>에서 아동학대 가해자들을 향한 증오에 사로잡힌 사회복지사 오순에 캐스팅되었어도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오순 역이 박하선 선배라는 소식을 듣고 감독님에게 일부러 비슷한 분위기를 염두에 두신 거냐고 물었다. 내가 봐도 나와 박하선 선배는 분위기가 비슷한 데가 있다. (웃음) 오순과 지원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둘의 접점이 딱 보였으면 한다는 게 감독님의 답이었다. 여성 두 명이 나오면, 마치 그 둘이 서로 대비되는 페르소나처럼 보여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반성한 경험이기도 했다.
-미스터리의 주체로서 오순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지만, 사건을 종합적으로 관찰하는 지원도 거의 대등한 균형감을 이룬다.
=부드럽게 있는 듯 없는 듯, 결코 도드라지지 않으려고 했다. 어디까지나 오순의 영화로 보였으면 했다.
-분량이나 매력에 욕심을 낼 법도 한데. 정확한 텍스트 해석을 중시하는 편인가.
=원맨쇼가 아닌 이상 전체 그림에서 행여나 내가 흠이 될까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배우로서는 단점에 가까운 성격이려나. (웃음) 텍스트에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내게는 대본에 있는 인물의 정보 한줄 한줄이 가장 소중하다. 평소 일상에서도 누군가의 말투, 주로 하는 말, 작은 뉘앙스를 나도 모르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 디테일을 느낀다.
-올해 서른이 됐다. 2021년의 하윤경은 어떤 미래를 꿈꾸나.
=지금까지 그랬듯 지치지 않고 계속 건강을 유지하는 것. 배우의 마음이 건강해야 연기도 명료할 거라 확신한다. 어릴 때는 훌륭한 예술가란 무릇 어딘가 불안정하고 거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오해란 걸 잘 안다. (웃음) 정신이 깨끗해야 연기도 예리하고 명료하게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대사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않는 초심을 유지하고 싶다.
영화 2020 <고백> 2017 <박화영> 2017 <타클라마칸> 2015 <울보> 2014 <소셜포비아>
드라마 2021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2020 <슬기로운 의사생활> 2018 <최고의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