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베를린 각본상 수상한 홍상수 신작 <인트로덕션>은 어떤 영화?
2021-03-05
글 : 송경원
영화라는 미지, 홍상수라는 미지를 향한 서곡

“김민희와 산책을 하다가 작은 달팽이를 발견했다. 이 작은 달팽이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전하고 싶다.” 홍상수 감독의 수상소감은 늘 예상 밖의 기대감을 안기는 그다운 방식이었다. 3월5일 낮12시(현지시간) 진행된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발표에서 홍상수 감독의 신작 <인트로덕션>이 은곰상 각본상을 차지했다. 이로써 홍상수 감독은 앞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의 여우주연상, <도망친 여자>(2020)의 감독상에 이어 세 번째로 베를린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각 수상자들의 소감은 온라인 영상으로 소개되었는데, 홍상수 감독은 직접 찍은 달팽이 영상과 함께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영상에는 김민희 배우가 직접 부른 도리스 데이의 ‘케 세라세라’ 노래가 은은히 깔려 한층 분위기를 더했다.

수상 분위기는 지난 3월1일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 전 세계 최초로 영화가 공개된 직후부터 어느 정도 점쳐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트로덕션>은 홍 감독의 여러 영화들이 그렇듯이 엉뚱함과 시적인 것, 비일관성과 에피파니, 경량과 빛 사이의 섬세한 중간 지점을 차지한다. 이 영화엔 틀림없는 성숙한 영화 제작 언어가 깃들어 있다”라고 평했다. <인트로덕션>은 스크린데일리 평점에서 마리아 스피스 감독의 <Mr. Bachmann and His Class>와 함께 4점 만점에 평점 3.3점으로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도망친 여자>에 이어 1년 만에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작품을 올린 <인트로덕션>은 홍상수 감독의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다섯 번째 출품작이다. 씨네21의 한주연 베를린통신원은 “<인트로덕션>은 러닝 타임이 66분에다 배우들의 수수한 차림새, 여백 있는 흑백 화면, 길지 않은 대화로 짜여있다. 66분 러닝 타임 내 시공간 비약이 많아서 여러 버전으로 상상할 여지가 많다.”며 “현지 언론 중 그의 영화를 ‘미니멀리즘’이라고 일컫는 리뷰가 많았다”고 전해왔다.

<인트로덕션>은 청년 영호(신석호)가 아버지, 연인, 어머니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세 단락으로 그린다. 66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결코 소품이라 부를 수 없는, 간결하고도 깊은 홍상수의 미니멀리즘을 확인할 수 있다. 늘 그렇듯 이야기 자체는 간결하다. 1부는 한의사인 아버지(김영호)와 아버지가 불러서 한의원을 방문한 아들(신석호)의 이야기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부자 관계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제공한다. 아마도 아들은 아버지가 불러서 오랜만에 한의원을 방문한 것 같고, 아들과 아버지는 한참을 만나지 못해 서먹한 사이인 듯 보인다. 사실 이 모든 건 불분명하다. 두 사람은 기어이 만나지 않으며(혹은 못하며) 카메라는 아들이 기다리고, 아버지가 상황을 지연시키는 모습들만 차례로 늘어놓는다.

2부는 딸(박미소)과 어머니(서영화)의 이야기다. 1부의 젊은 남자와 헤어졌던 여인은 이번엔 패션디자인 공부를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간다. 어머니는 딸이 머물 곳을 마련하고자 옛 친구(김민희)의 집을 함께 방문한다. 어딘지 주눅 들어 보이는 딸은 한참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머니, 그리고 함께 살게 된 어머니의 지인의 기분을 수시로 살핀다. 잠시 뒤 딸은 독일에 온 자신을 만나러 따라온 남자친구를 만나러 시내로 나간다. 1부와 마찬가지로 2부의 상황들은 직접 설명되지 않는다. 한참 지나서야 파편적인 정보가 제공되고 조립해 유추해나갈 뿐이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이들이 처한 정황이나 사건이 아니다. 대개 서사영화들이 사건과 사건을 인과로 연결시키는 데 반해 <인트로덕션>은 수시로 상황을 생략하고 점프시킨다.

등장인물들은 수시로 담배를 피우고, 서로 포옹하고, 머뭇거리고 말을 삼킨다.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잉여의 시간들, 대개의 영화가 흘려보내는 것들을 도리어 정성스럽게 모아 행간을 추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추리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대신 영화가 제시하는 것은 상태의 목격이다. 인물들은 소통하지 못하고 상황은 늘 유예된다.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순간, 그 침묵들이 시간으로 거듭나 때론 계속해서 피는 담배로, 때론 술 한 잔을 통해 시종일관 반복되는 셈이다. 영화 산업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은 “홍 감독은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서로 껴안을 때도 두 사람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내적 의미로 진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섬세한 예술가이자 효율성의 대가”라고 평가했다. 요컨대 <인트로덕션>은 본격적인 무언가, 우리가 흔히 사건이라고 믿는 그것이 시작되기 전 앞에 고인 망설임에 머물고 침묵을 찍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도한 3부, 아들은 이번엔 어머니가 불러서 동해안의 횟집으로 간다. 어머니는 지인인 연극배우와 함께 있고, 아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한다. 1부에서 아버지를 찾아왔던 그 배우다. 아들은 친구를 데리고 횟집으로 가고 이들은 함께 술을 마신다. 그리고 드디어 어쩌면 처음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 이후 펼쳐지는 장면들은 서사의 결과라기보다는 (홍상수 영화가 늘 그렇듯) 내면의 고백이고, 감독의 자전적인 모습이며, 동시에 격정에 휩싸인 우리의 초상이다. 어쩌면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어 완전히 자유로운 이미지들. 어떤 경로로든 접근할 수 있는 장면들은 서사의 결박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훨씬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이것은 설명이 아닌 질문이다. 매우 시적으로 압축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는 직설적인 묘사이기도 한, 영화의 언어. 주변의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단순해질수록 영화언어가 품은 진동의 폭은 형용할 수 없이 증폭되어 나간다. 마치 해변으로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지는 파도처럼.

사실 이번 영화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적지 않은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흑백영화으로 찍은 <인트로덕션>에서는 꽤 오랜만에 배우 김민희가 주연이 아닌 짧은 역할을 맡았다. 점점 스탭 숫자를 줄여가던 그의 작업은 이번에 한층 더 간결해져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김민희가 프로덕션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재미있는 점은 홍상수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했다는 점이다.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음악까지 직접 맡아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1인 작업의 결과물처럼 보일 정도다. 특히 두 번째 챕터, 엄마와 딸의 에피소드는 베를린에서 진행되는데 이것은 작년 베를린영화제 참석 때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홍 감독을 ‘효율성의 대가 (스크린인터내셔널)’로 칭하기도 했다. 한주연 베를린통신원에 따르면 현지 언론 대부분이 <인트로덕션>이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독일 일간 <베를리너모르겐포스트>는 ”이 영화 특징이 순전한 절제라고 하는 것은 과소평가다. 물론 색, 길이, 대화가 절제되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야기하려고 할 때, 자녀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 그렇듯이 말이다.“라고 했다. 또 <가디언>은 ”홍 감독에겐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에둘러 돌려 말하려는 게 아니라, 짧은 형식의 예술이 중요하다. 소소하지만 분명 이상한 장면들을 보여주며 서로 절대 할 말이 없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 불가를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베를린의 트로피를 세 번이나 거머쥔 것은 비할 데 없이 놀라운 성취다. 하지만 굳이 수상이 아니더라도 홍상수의 신작은 늘 그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설렘을 안겨주었으며 <인트로덕션> 역시 여지없이 이를 증명한다. 홍상수 감독은 이미 비할 바 없는 작가의 자리에 섰지만 단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늘도 여전히 가보지 않은 영화를 향해 전진 중이다.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변화를 겪는 연인들, 그리고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은 어떤 마음. 홍상수는 당연한 듯 또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데뷔 25년이 넘은 감독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하고,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만, 홍상수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서곡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홍상수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인트로덕션>은 2021년 상반기 국내개봉예정이다. <인트로덕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씨네21 1296호 기획기사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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