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표지의 주인공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의 미노루, 이사무 형제다. 그토록 갖고 싶은 TV를 사주지 않는 부모님에게 단식과 침묵 투쟁을 일삼는 이 작은 악동들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사랑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표지를 고르는 내내 편집부의 모든 기자들이 눈에 하트를 담고 있었다는 점도 여담으로 전한다). 오즈 야스지로가 <안녕하세요>를 만든 시기가 1959년이니, 두 형제를 연기한 시타라 고지(미노루 역)와 시마즈 마사히코(이사무 역) 배우는 지금쯤 아버지로 나왔던 류 지슈의 극중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번호를 만들며 문득 두 사람의 근황이 궁금해져 검색해보니 시타라 고지는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고, 시마즈 마사히코는 1970년대에 영화계에서 은퇴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즈의 영화 속에서 두 배우는 언제나 ‘안녕하세요’ 같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밥통과 주전자를 들고 가출을 하고, 등하굣길마다 친구의 이마를 누르고 방귀를 뀌는 장난을 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을 모습으로 남아 있는 유쾌하고 맑은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받게 되는 위안이 있다. 내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는 그런 위안을 주는 존재다.
이미 널리 알려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표지로 다룬 건 <씨네21>을 만드는 잡지 구성원들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26주년을 앞둔 영화 주간지 역사상 처음으로 고전영화가 표지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개봉을 앞둔 화제의 신작 영화가 드물기 때문이지 않겠냐고 짐작하는 독자들도 있을 법하지만, <안녕하세요>를 표지로 선정한 데에는 그보다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에드워드 양 감독 특별전과 올해의 왕가위 감독 특별전에 대한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경험하며 동시대 관객과 고전영화의 접점에 대한,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에 따른 영화 매체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갓 만든 신작 영화를 소비하듯 과거의 영화를 마주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자극과 활력을 발견하는 독자들과, 이미 애정을 쏟을 만큼 쏟은 한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영화 잡지는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오즈 야스지로에 관한 여덟편의 글로 구성된 이번호 특집은 그 고민의 결과다. 우리는 오즈의 이름 위에 드리워진 정전의 무게를 걷어내고 영화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 각자의 오즈에 대해 물었다. 세계의 모든 미식가 감독을 존경한다는 영화 제작자 이주익, 오즈 야스지로의 에세이와 일기, 편지를 엮은 책을 번역한 작사가 박창학, <남매의 여름밤>의 촬영감독 김기현과 <안녕하세요>를 통해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소설가 이종산, “크리스토퍼 놀란에서 출발해서 오즈 야스지로로 가는 중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영화평론가 오진우, 그리고 <씨네21> 임수연·배동미·김소미 기자가 보내온 여덟편의 글은, 좋은 영화가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미치는 영향과 영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번호 특집이 오즈를 사랑하는, 또는 오즈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다정한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